몽골 유목국가들이 그저 '야만족'이었다고? 중앙박물관 특별전 '칸의 제국, 몽골'을 보다

2018.05.20 14:18

돌궐 시대의 ‘카간의 금관’(8세기). 돌궐제국의 최고 지도자(카간)였던 빌게 카간의 제사유적에서 1000여점의 유물들과 함께 발굴된 금관이다. 몽골국립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돌궐 시대의 ‘카간의 금관’(8세기). 돌궐제국의 최고 지도자(카간)였던 빌게 카간의 제사유적에서 1000여점의 유물들과 함께 발굴된 금관이다. 몽골국립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거란, 칭기스 칸의 몽골제국(원)….

북방의 드넓은 몽골 초원에서 역사적 흥망을 거듭한 나라들이다. 동쪽으로는 다싱안링산맥, 서쪽의 알타이산맥, 남쪽의 고비사막을 지나 만리장성, 북쪽의 바이칼호수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지대는 80만년 전부터 인류 삶의 터전이었다. 몽골인들은 예로부터 이 땅을 ‘몽골리아’, 즉 ‘몽골인의 땅’이라 인식했다.

몽골리아 자연환경은 유목민을 낳았다.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정착하기 보다 말을 타고 대초원을 내달리며 삶을 꾸려가는 게 몽골리아 환경에 맞았다. 정보화 사회에 들어 새삼 주목받는 ‘노마드적 삶’이다. 몽골리아 유목국가들도 그 특성을 바탕으로 인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동서문명의 다리’로 문화교류를 이끈 것이다.

흉노제국 시대의 ‘해와 달 모양의 금제 목관 장식’(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몽골 초원에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흉노의 지배자 무덤 안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흉노제국 시대의 ‘해와 달 모양의 금제 목관 장식’(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몽골 초원에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흉노의 지배자 무덤 안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사실 몽골리아 유목국가들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 인식은 편견에 갇혔다고 할 만큼 좁다. 역사적으로 북방의 ‘오랑캐’ ‘야만족’이란 인식이 이어져 그들의 어엿한 역사와 문화를 깔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중국, 중화문명의 자부심을 가진 한족의 시각에서 유래됐는데, 아직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저 ‘흉노족’ ‘돌궐족’ ‘거란족’이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지금의 내몽골, 외몽골이란 지역구분도 17세기 몽골을 장악한 청나라가 먼저 복속한 땅을 내몽골, 그 북쪽의 땅을 외몽골이라 부른 것이다.

여기에 고조선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교류보다는 대결적 상황이 많은 점도 영향을 끼쳤다. 또 유목민 국가 특성상 정착민 국가와 달리 유적·유물이 적은 이유 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 문화를 편견을 갖고, 중국적 시각에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몽골리아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유목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돌궐시대 ‘퀼 테긴의 두상’(8세기). 돌궐 제2제국의 유력한 장군이자 자신의 형을 빌게 카간으로 즉위시킨 퀼 테긴의 제사유적에서 나온 유물로 조각수준이 빼어나다.

돌궐시대 ‘퀼 테긴의 두상’(8세기). 돌궐 제2제국의 유력한 장군이자 자신의 형을 빌게 카간으로 즉위시킨 퀼 테긴의 제사유적에서 나온 유물로 조각수준이 빼어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칸의 제국, 몽골’을 통해서다. 몽골의 주요 역사문화 기관과 중앙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까지 몽골리아 유목국가들의 역사·문화를 대변하는 문화재 500여점으로 구성됐다. 출품 유물 중 16건 90점이 몽골의 국가지정 문화재다. 배기동 중앙박물관장은 “한·몽 공동학술조사 20년을 기념하며 그동안 서로 쌓은 신뢰로 가능한 전시회”라며 “아마 몽골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대거 해외에 선보이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양 모양의 칼자루 끝 장식’(기원전 7~3세기). 몽골초원의 선사시대 청동유물들에는 특히 여러 동물들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다.

‘산양 모양의 칼자루 끝 장식’(기원전 7~3세기). 몽골초원의 선사시대 청동유물들에는 특히 여러 동물들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다.

전시장은 선사시대~흉노와 돌궐의 고대 유목제국~칭기스 칸의 몽골제국~근현대 등 시대순으로 구성됐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75~80만년 전 구석기·신석기인들의 손때가 묻은 석기들, 기원전 1000년경에 널리 사용된 청동기와 이후 철기시대의 다양한 무기류·생활과 의식 용품·장신구류 등이 있다. 청동기·철기에는 여러 동물들이 많이 표현돼 있어 눈길을 끈다. 산양 2마리를 장식한 ‘산양모양 칼자루 끝 장식’(기원전 7~3세기)이 대표적인데, 동물을 새긴 장식 칼자루는 당시 유목민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다. 유목민 특성을 드러내듯 동물 문양은 토기에도 많이 나타난다.

선사시대 이후 몽골리아에는 잇달아 고대 유목국가들이 세워진다. 흉노가 기원전 3세기 경 첫 국가를 세워 기원후 1세기까지 유지됐으며, 이후 선비(2~4세기), 유연(5~6세기), 돌궐(투르크·6~8세기), 위구르(8~9세기), 거란(10~12세기)이 등장한다. 특히 흉노와 돌궐은 중국과 맞설만큼 강력했으며, 선비나 유연 등도 중국 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흉노시대의 ‘인물을 수놓은 직물’(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직물임에도 2000여년 동안 보존돼 주목을 받는 유물이다. 색실로 인물들을 수놓았는데, 직물의 원산지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지역으로 확인돼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잘 보여준다.

흉노시대의 ‘인물을 수놓은 직물’(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직물임에도 2000여년 동안 보존돼 주목을 받는 유물이다. 색실로 인물들을 수놓았는데, 직물의 원산지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지역으로 확인돼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잘 보여준다.

흉노제국 관련 유물로는 ‘해와 달 모양의 금제 목관장식’(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이 돋보인다. 지배자 무덤 목관에서 나온 유물은 무덤 주인이 저승에 잘 이르기를 기원하는 장례의례품, 또는 흉노제국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흉노제국의 상징으로 보는 근거는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선우(흉노 최고 지도자)는 매일 아침 해를 보고 절하고 저녁에는 달을 보고 절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흉노시대의 ‘그리스 신이 있는 은제 장식’(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그리스 여신이 호랑이 가죽에 앉아 있는 남성 악마를 밀어내는 모습으로 그리스 헬레니즘미술의 특성을 보인다. 당시 수입품으로 흉노가 서역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잘 보여준다.

흉노시대의 ‘그리스 신이 있는 은제 장식’(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그리스 여신이 호랑이 가죽에 앉아 있는 남성 악마를 밀어내는 모습으로 그리스 헬레니즘미술의 특성을 보인다. 당시 수입품으로 흉노가 서역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 신이 새겨진 은제장식’과 ‘인물을 수놓은 직물’도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유물인데, 흉노의 서역과의 활발한 교역을 보여준다. 그리스 여신이 새겨진 은제장식물은 그리스 헬레니즘미술 특성이 엿보여 수입품으로 추정된다. 인물들을 색실로 수놓은 직물은 2000년 넘게 보존돼 큰 주목을 받았다. 자수품인 이 직물의 원산지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이밖에 말과 관련한 각종 유물과 마차 부속품, 금동·청동·옥·칠기류 유물도 나와 흉노의 다양한 문화를 드러낸다.

돌궐 시대의 ‘카간의 금관’(8세기) 정면에는 금실을 입에 문 작은 새가 장식돼 있다.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새와 같이 날아다닌다는 당시 돌궐인들의 믿음이 표현된 것이다.

돌궐 시대의 ‘카간의 금관’(8세기) 정면에는 금실을 입에 문 작은 새가 장식돼 있다.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새와 같이 날아다닌다는 당시 돌궐인들의 믿음이 표현된 것이다.

돌궐은 금·은 유물, 돌궐문자로 그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카간(돌궐의 최고 지도자)의 금관’(8세기)은 빌게 카간(재위 716~734)을 기리는 제사유적에서 100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굴됐다. 하늘을 숭배한 돌궐인들은 카간과 귀족들을 ‘하늘의 아들’로 여겼고, 그들이 죽으면 제단을 만들고 문자를 새긴 비석을 세웠다. 금관은 정면에 금실을 문 작은 새가 장식됐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와 같이 날아다닌다는 돌궐인들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퀼 테긴의 두상’은 자신의 형을 빌게 카간으로 즉위시킨 퀼 테긴 장군의 조각상이다.

몽골제국 시기의 ‘말 안장’과 각종 무기류, 신발 등이 전시된 모습.

몽골제국 시기의 ‘말 안장’과 각종 무기류, 신발 등이 전시된 모습.

전시는 몽골제국과 근현대 몽골인들의 생활상으로 이어진다. 칭기스 칸이 초원을 통일해 1206년 세운 몽골제국은 세계사상 최대 제국이었다. 동으로는 한반도, 서로는 지금의 비엔나, 남으로는 서북인도, 북으로는 시베리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쿠빌라이(세조)가 원(元)나라로 국호를 변경(1271년)한 제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장악하며 세계사를 장식했다. 전시장에는 당시 말 안장을 비롯해 칼과 활 같은 각종 무기류, 금·은 장식품이 나와 있다. 또 고려시대에 영향을 끼친 불상 등 불교 유물들도 선보인다.

몽골 초원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말, 말안장 등 말과 관련된 각종 부속품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진은 19~20세기 말 안장과 발을 놓는 등자.

몽골 초원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말, 말안장 등 말과 관련된 각종 부속품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진은 19~20세기 말 안장과 발을 놓는 등자.

‘사슴과 산양을 돋을새김한 토기’(기원전 7~5세기). 몽골 초기철기시대의 무덤 유적인 찬드마니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로 긴 뿔을 가진 사슴과 산야 등 동물 세마리가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

‘사슴과 산양을 돋을새김한 토기’(기원전 7~5세기). 몽골 초기철기시대의 무덤 유적인 찬드마니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로 긴 뿔을 가진 사슴과 산야 등 동물 세마리가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

전시장 끝에는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나온 가야시대 ‘청동솥’, 고려시대의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보물 1376호)과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872호), 조선시대 몽골어 학습서인 ‘몽어노걸대’ 등이 있어 한국사와의 관계를 간략하게나마 드러낸다.

박물관 열린마당에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가 설치돼 몽골인들의 의식주 생활상을 체험할 수도 있다. 또 전시와 연계한 강연회와 설명회 등도 준비됐다. 관람료는 2000~6000원, 전시는 7월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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