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푹 빠져있는데, TV 꺼버리면 어른들은 어떻게 변할까

2018.05.20 21:37 입력 2018.05.21 08:33 수정

청소년 게임 이용 ‘셧다운제’

한 방송사 실험 “PC방 전체 전원 꺼버리자, 게임하던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드라마에 푹 빠져있는데, TV 꺼버리면 어른들은 어떻게 변할까

내 사춘기는 한심했다. 우선 현실이 진창 같았다. 학교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그대로였고, 집은 또 다른 말죽거리였다. 머릿속은 더 엉망이었다. 반항을 분출했다면 이야깃거리라도 남았겠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학교나 집 어디에도 안식이 없었고, 귀갓길에 딴 데로 샌 건 필연이었던 것 같다. 내가 몰래 중독되어간 건 소위 ‘전자오락’이었다.

그 시절 ‘전자오락’은 학교에서 단속 대상이었고, 걸리면 기본이 정학이었다. 하지만 하교시간이 가까워 오면 벌써 오락기 버튼을 누를 생각에 손가락 끝이 덜덜 떨리곤 했다. 하루도 하지 않고 지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자오락이라는 조그만 위안조차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떡볶이집 김부선 아줌마도 없었고, 한가인 같은 첫사랑도 없었으니까.

선생님들은 전자오락을 당연한 ‘악’으로 규정했다. 불만이었다. 전자오락으로 괴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얻는데, 그건 왜 아무도 값을 쳐주지 않는 걸까. 영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사처럼 즐거움 자체를 악으로 본 것일까.

우리 사회엔 쾌락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어떤 것이 재미있다면 수준이 낮거나 위험하다는 의심을 산다.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곳이 게임일 것이다. 즐거움을 주지만 존중받지는 못한다. 마약 취급을 받는가 하면, 범죄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재미는 무엇에 쓸모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다. 게임의 목적은 재미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게임을 때려잡자는 사람들, 정말 게임을 해보기나 한 걸까? 그게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얘길까? 사춘기 소년의 손가락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던 그것들의 정체를?

헌법재판소는 2014년,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했다. 나는 게임 규제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이고, 셧다운제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위헌이라고 핏대를 올리지는 못하겠다. 나쁜 정책을 만든 쪽이 애당초 잘못했다. 그 정책이 ‘좋은지 나쁜지’의 판단과 ‘위헌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기준이 다르다. ‘좋은 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위헌까지는 아니다’라고 한 헌재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헌재 결정문 안에 셧다운제를 만든 측의 논리가 인용되어 있기에 이해를 위해 참고해보려 한다.

전혀 입증 안된 가설들을
입법에 이용해서는 곤란해

셧다운제의 도입 배경은 ‘인터넷게임에 과몰입되거나 중독되어 청소년이 자살하거나 모친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범죄가 일어나면 영화나 만화, 게임을 탓하는 사고방식은 실로 끈질기다. 어떤 수치가 제시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추측 내지 연상인 것 같다. 게임 안에서 총 쏘고 칼로 찌르다가 현실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말이다. 언론은 범죄자의 집에서 <공공의 적> 비디오를 찾아냈다든가 <맨헌트> 게임이 발견되었다든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이런 시선에 편승해 범죄를 게임 탓으로 돌리며 면피하려는 범죄자의 혀끝에 여론이 놀아나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깃거리로는 더 재밌으니까. 하지만 입증 안 된 가설이 법 만드는 데까지 힘을 발휘해서야 곤란하다.

게임이 범죄를 낳는다는 게 증명이 되었을까? 우리나라의 한 방송사는 학생들이 들어찬 PC방 전체의 전원을 일시에 꺼버리고는 아이들이 우왕좌왕하자 ‘봐라, 게임하는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이 전설의 실험은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미국은 이 연구에 오랜 기간 매진했다. 아무래도 비디오게임이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유발하지 않을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연구실적을 모아 연방대법원이 내린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연구도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미성년자의 공격적 행동을 야기한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하찮은 상관관계, 그것도 게임을 한 직후 몇 분 동안 더 큰 소음을 낸다든가 좀 더 공격적인 느낌을 갖는다는 상관관계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 인정된 것은 ‘하찮은 상관관계’였다.

게임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안 해봐서 그런 것 같다. 해봤다면 겨우 게임 화면 때문에 살의를 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 같다. 그건 타인을 너무 얕보는 일이기도 하다. 본인은 안 그럴 거면서 ‘어리석은 남들’은 그럴 수 있다고 걱정하는 태도는 조금 오만한 것 아닐까. 범죄라는 수지 안 맞는 선택을 하기까지에는 많은 인과와 복잡한 내면이 작용한다. 게임이 거기에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게임이 범죄자를 만든 게 아니라 범죄자가 게임을 했을 뿐이다.

이쯤에서 전가의 보도, ‘청소년 보호’가 등장할 것 같다. 성인들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은 게임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우려다. 하지만 앞서 든 미국에서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걱정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헌재 결정문에서는 이런 논리가 소개된다. ‘청소년의 적절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적 규제는 필요하다. 게임에 중독되면 건강 악화, 생활 파괴, 우울증 등 성격 변화, 현실과 가상공간의 혼동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교우관계, 학교 수업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

‘수면시간 확보 위해 규제 필요’?
학습권·수면권을 이유로
동등한 또 다른 권리 빼앗는 것

국가가 나서서 청소년의 취침시간까지 결정해야 하는 걸까? 공부에 너무 방해되니까? 그럴 거라면 연애도 금지시켜야 한다. 청춘의 고뇌만큼 잠을 방해하는 건 없으니까. 청소년의 학습권, 수면권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표현의 모순이다. 너의 학습할 권리를 위해 너의 게임할 권리를 빼앗겠다는 건데, 이런 건 권리가 아니다. 그 실체는 부모의 학습시킬 권리, 수면시킬 권리에 불과하다(심지어는 부모에게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하겠다는 거니까).

만약 부모가 자녀의 게임 이용을 내버려두겠다면 어쨌든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가정 안에서 부모의 손에 맡기는 게 우선이다. 성향에 따라서는 자녀가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도록 내버려두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살다보면 그 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근데 왜 법이 나서서 전국의 불을 일시에 끄려 들까? 통행금지나 등화관제의 향수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청소년들을 보호와 관리의 객체로만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들도 엄연히 한 개체로서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원치 않은 시기에 게임을 중단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참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누가 톡 꺼버린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미 연방 대법원 판결문 보면
“게임 직후 몇 분 동안은
공격적인 느낌을 갖는다는
‘하찮은 상관관계’만 보였다”

GTA(Grand Theft Auto)는 전 세계적으로 메가히트한 비디오게임이다. 게이머는 도시를 누비며 차를 도둑질하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치기도 한다. 이 게임은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를 파괴했다. 그동안 모든 게임 주인공은 정의의 편에 있었다.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복수라든가 하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GTA 주인공은 마음 내키는 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해칠 수 있었다. 이 게임에서 묘사된 폭력성과 비윤리성은 게임 규제 움직임을 촉발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05년,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등급이 매겨진 게임의 판매나 대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아마 우리 사회의 상식은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일 것 같다. 하지만 이 법은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게임물에도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고,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미성년자들의 폭력 성향을 유발한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규제의 수단이 과도하다는 이유였다. 양국의 태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니야?’ 하는 의혹이 있을 때, 한국은 의혹이 있으니 규제하자고 하고, 미국은 의혹만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양키 센스로 가득한 이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겐 재미없고, 취향이 달라서다. 그렇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 윤리를 초월해버린 아이디어의 과감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발상의 전환은 거대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게임의 창조자에 비하면 규제를 만든 캘리포니아 주의회 몇몇 의원들은 그저 낡은 인물로 보인다(실제로 GTA 개발자는 2009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지만 주의회 의원들은 아니다). 인생 폭이 좁은 ‘범생이들’이 힘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한다.

게임의 가치·목적은 재미 그 자체
청소년도 즐거움 추구권 있어
보호·관리 객체로만 인식하는
어른들의 시각이 근본적 문제

‘좁은 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는 인생길도 무척 좁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람직한 길이란 게 있는데, 장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죽여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는 만화, 음악, 게임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시간 자고 열심히 공부하며 나쁜 건 보지도 않고 건전한 생각만 하는 청소년을 법으로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바람직한 청소년이 갖춰야 할 리스트에 ‘놀이’는 없다). ‘재미없는 천국’이 그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설계도인 듯하다. 자신들은 ‘나쁜 것’들과 거리가 멀게 살아왔고 그래서 대체로 규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통제당하는 입장의 스트레스를 잘 모른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다더라는 소문만 있으면 바로 규제하고 처벌한다는 발상을 떠올리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GTA의 창시자가 이런 ‘무균 모델’하에서 컸다면 GTA는 못 만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GTA가 있는 세상이 없는 세상보다 더 재미있다.

글을 쓰고 보니 오늘은 너무 ‘척’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실은 나 역시 인생 폭이 좁은 ‘범생이’에 불과하다. 다만, 스스로 뭘 모른다는 걸 알기에, 무언가를 규제하고 만들어보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어도 무해하다고는 자평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전지적 참견시점’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센 사람들에게 좀 가만히 있으라고 말리는 일이다. 창조는 어렵고, 규제는 쉽다. 만드는 게 어렵지,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게임 중독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내겐 이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규제 중독이 더 심각해 보인다.

■필자 도진기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드라마에 푹 빠져있는데, TV 꺼버리면 어른들은 어떻게 변할까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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