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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각을 여는 ‘질문’

2018.05.28 20:44 입력 2018.05.28 20:45 수정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송민령의 뇌과학이야기]세상을 보는 시각을 여는 ‘질문’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질문은 기존의 지식과 인식틀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어 “의식에 중요한 뇌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식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뇌 영역들은 저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그래서 뭔가를 배우고 나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보다는 질문 자체가 바뀌곤 한다.

■ 분야마다 다른 질문

[송민령의 뇌과학이야기]세상을 보는 시각을 여는 ‘질문’

내가 학부 과정을 다니던 때는 대학에 뇌과학과가 없었다. 뇌는 궁금한데 학과가 없으니 필요할 법한 수업을 찾아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수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하고 전자공학과 수업을 조금 들었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이고, 뇌는 생명 현상의 일부이며, 신경세포는 전기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학과마다 인식틀과 질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물학과 교수님은 “외우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인터넷에 자료가 많아도 ‘무엇을, 왜 검색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서 교수님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생리학처럼 조금 다른 과목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생물학 과목은 유전자가 복제되고 단백질로 발현되고, 단백질들이 상호작용하는 구체적인 과정과 그 변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편, 수학과 교수님은 학생들이 지난 학기에 배운 것을 잘 대답하지 못할 때 “이 녀석들, 이해를 안 하고 외우니까 잊어버리지”라고 하셨다. 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변수 ‘x’는 무한히 다채로운 뭔가가 될 수 있었고, 똑같은 명제도 과목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되고 서술될 수 있었다. 나는 수학 시험 전날에는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을 잤고, 생물학 시험 전날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외웠다.

수학이나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과 공학인 전자공학은 또 달랐다. 수학에서는 0.00001처럼 작은 숫자도 0이 아니었지만 전자공학에서는 그냥 0이었다. 교수님은 기업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30분 동안 계산해서 알려줄 거냐. 바로 근사해서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0.1이면 0이라고 써도 될지, 0.01 정도는 되어야 0이라고 쓸 수 있을지 매번 고민했다. 수업시간에는 뉴스에도 나오는 최신 기술이 자주 언급됐고, 나는 교실에서도 빠른 변화를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공 분야마다 관심 대상과 접근 방식이 다르고, 질문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저 탐험을 다룬 영상을 함께 보고도 ‘저 잠수함을 어떻게 만들까’에 눈이 반짝이는 공학자와, ‘심해에는 빛이 없는데 왜 알록달록한 심해어가 있는가’를 고민하는 자연과학자로 나뉘는 것이다. 결국 전공 지식이란, 어떤 분야의 맥락과 역사에 따라 그 분야의 시각에서 질문을 만들고,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얻어진 지식이었다.

■ 뇌과학 안의 다양성

뇌과학은 대단히 학제적인 분야여서, 뇌과학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 뇌과학 학과가 생기기 전에는 심리학과에 뇌에 관심있는 교수님 두어 분, 컴퓨터과학과에서 언어와 시각을 연구하는 교수님 두어 분, 생물학과에서 신경계를 연구하는 교수님 두어 분 이렇게 흩어져 있었다. 뇌를 연구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고, 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교수님들을 모으고 추가 임용을 거쳐 뇌과학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때로는 뇌과학 학과로 발전했다.

그래서 같은 뇌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들도, 주된 저자의 전공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 방법, 질문이 모두 다르다. 심리학 쪽 배경이 강한 사람은 뇌영상 기술로 사람을 연구할 때가 많다. 컴퓨터과학 기반을 가진 사람은 심리 활동의 일부를 변수로 단순화시켜 컴퓨터 모델로 만들 때가 많고, 동물 실험을 하면서 온갖 다양함을 경험한 생물학자들은 이런 단순화를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질문을,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여길 만하고, 현재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가면서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는 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 배우면 배울수록 질문이 바뀐다. 처음으로 뇌과학 연구실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장래에 연구하고 싶은 질문을 노트에 정리했다. 아직도 그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기억은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가? 감정과 관련된 뇌 기전은 무엇인가?”처럼 일상적이고 포괄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만이 기억이 아니고, 신경계의 구조 변화를 유발하는 모든 것이 기억에 포괄됨을 알게 되었다. 또 뇌 속에서 이성과 감정이 분명하게 나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안다’고 믿는 것에는 조심스러워지고, 질문은 구체화되어 갔다. ‘확률적인 보상의 확률이 변할 때 도파민은 어떻게 활동하며, 이 활동은 학습 추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처럼. 질문이 먼저고, 지식이 따라오면 지식을 딛고 질문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식이었다.

■ 변화를 시작하고 초대하는 과정: 질문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들 하지만, 강한 주장에는 의외로 설득력이 없다.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상대는 입을 다물고 생각도 굳힐 것이다. 반면에 질문은 상대방을 초대하고 함께 변해가는 과정이다. “진짜 그래? 왜 그래? 어떻게 그래?”라는 질문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아는 지식, 남들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질문 이상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질문,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질문이 중요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며칠 사이에 일어난 지난 한 주를 돌이켜보면서 나도 물었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들은, 정말 불가능한 일들이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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