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값 이제 올릴 때 됐다

2018.06.20 21:02 입력 2018.06.20 21:15 수정

“그것은 네가 택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代價)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대부3>의 명대사다. 주인공인 알 파치노가 자신의 후계자를 자청하는 앤디 가르시아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라며 주문했던 말이다. 개인은 물론 조직과 정부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경구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할 값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변화와 개선의 시발점이다.

[경제와 세상]경유값 이제 올릴 때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국민이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경기침체, 실업, 고령화를 뛰어넘어 미세먼지가 꼽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집과 직장 주변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수치가 낮으면 안도하고, 높으면 불안하고 짜증스럽다. 미세먼지가 심혈관계 및 폐 질환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는 차고 넘친다. 미세먼지 농도가 시험성적과 학업, 업무와 노동 등 생산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세먼지 원인을 중국으로 돌리는 시각이 있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사에는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강경한 어조의 댓글이 연이어 달린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요인이 존재하고, 비중 또한 적지 않다. 나 역시 외교 노력과 압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경성 오염 문제’ 해결은 구소련과 핀란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해국가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억울하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미세먼지 피해가 워낙 심각하기에 강도 높은 미세먼지 저감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2018년 환경부 문건에 의하면 미세먼지 국내 발생량 기여도는 전국적으로는 공장 등 사업장이 1위, 대도시에서는 경유차가 1위로 나타났다. 화물차나 RV 등 통상적인 경유차에,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굴착기나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 차량까지 더하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경유차 비중은 압도적으로 커진다. 한국은 휘발유차에서 어느 순간 너도 나도 경유차를 타는 나라로 바뀌었다. 2017년 12월 현재 휘발유차와 경유차 비중은 각각 46%와 43%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연간 경유 소비량은 210억ℓ에 달해 휘발유 122억ℓ의 1.7배에 이른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RV가 배출하는 초미세먼지(PM2.5) 총량은 소형과 중형 화물차를 합친 배출량에 근접하고 있다. 경유차 중 대형트럭과 건설기계의 미세먼지 비중이 높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가랑비에 옷 젖듯이 가정에서 타고 다니는 경유 RV 차량이 내뿜는 미세먼지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경유 승용차 선호 현상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동종 휘발유차와 경유차의 구매가격 차이는 100 대 85로 맞춰져 있는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 차이로 인해 상쇄된다. 차량 구입 후 5년 정도 타면 초기 비용을 회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인만 생각하면 경유차를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유 승용차 판매 허용과 이명박 정부의 클린디젤 정책도 한몫했다. 경유차는 ‘깨끗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 100 대 84의 연료비 차이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경유차를 찾아보기 힘든 일본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요 요인임을 확인한 이상, 정책과 소비행태 모두 변해야 할 때가 왔다.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이 90%를 넘은 상황에서 경유차를 도외시하고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ℓ당 70원 올리는 정책을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휘발유와 경유 상대가격이 OECD 평균 수준인 100 대 93에 가까워진다. 한꺼번에 올릴 필요 없다. 정부가 정책을 제시하고 수년에 걸쳐 조금씩 올리면 된다. 경유차 이용자가 당장 차를 폐차하지는 않겠지만 소비자의 신차 구입에는 분명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과거부터 경유차 정책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정부가 진솔한 자세로 국민 이해를 구해야 한다. 둘째, 연간 2조원 넘게 경유 화물차 등에 지급하는 유가보조금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친환경 화물차로의 교체비용 및 화물운전자 소득 보조 등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추가 세수는 미세먼지 저감과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과 기술개발에 사용해야 한다.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비용 없이 원하는 것만 얻겠다면 무책임한 심보다. 이것이 영화 <대부>가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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