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히혼의 수치'와 일본의 '스포츠할복’

2018.06.29 17:06 입력 2018.06.29 19:31 수정
이기환 논설위원

1982년 6월25일 스페인 히혼에서 벌어진 1982 스페인 월드컵 서독-오스트리아전. 서독이 오스트리아에 2골차 이하로만 이기면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동반으로 1차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서독은 전반 10분 흐루베슈가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리드했다. 이후 양팀은 80분동안 공만 빙빙 돌렸고, 결국 서독의 1-0승으로 끝났다. 개막전에서 서독을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킨 알제리는 서독과 오스트리아와 동률을 이뤘지만 득실에서 뒤져 탈락했다.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 혹은 ‘히혼의 불가침조약’으로 일컬어진다.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추악한 담합경기로 기록됐다.

1982년 6월25일 스페인 히혼에서 벌어진 1982 스페인 월드컵 서독-오스트리아전. 서독이 오스트리아에 2골차 이하로만 이기면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동반으로 1차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서독은 전반 10분 흐루베슈가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리드했다. 이후 양팀은 80분동안 공만 빙빙 돌렸고, 결국 서독의 1-0승으로 끝났다. 개막전에서 서독을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킨 알제리는 서독과 오스트리아와 동률을 이뤘지만 득실에서 뒤져 탈락했다.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 혹은 ‘히혼의 불가침조약’으로 일컬어진다.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추악한 담합경기로 기록됐다.

월드컵 역사에서 독일어로 ‘히혼의 불가침 조약’(Nichtangriffspakt von Gijon) 혹은 ‘히혼의 수치’(Schande von Gijon)로 이름붙은 경기가 있다. 1982년 6월25일 스페인 히혼에서 열린 월드컵 1차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인 서독-오스트리아전을 일컫는 독일어 용어다. 하루 앞서 벌어진 칠레전에서 3-2승을 거둔 알제리는 2승1패(득실차 0)를 기록중이었다. 만약 서독(1승1패)-오스트리아(2승)전에서 서독이 오스트리아에 2골차 이하의 점수차로 이기면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알제리를 득실차로 밀어내고 사이좋게 2라운드에 동반진출 할 수 있었다. 게르만 민족끼리 담합하지 않을까 찜찜했지만 스포츠맨십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서독이 전반 10분 호르스트 흐루베슈의 골로 리드를 잡았다. 이후 경기가 엉망이 된다. 양팀 선수들은 남은 80분을 공만 돌리며 보냈다.

4만 관중은 오물을 투척하면서 양팀 선수들에게 “나가라”는 야유를 보냈다. 양국 중계진은 한때 해설을 거부하기도 했고, “시청자들이여! 차라리 TV를 꺼라!”고 소리쳤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 감독인 미셀 이달고는 “올해 노벨평화상을 저들에게 줘야 한다”고 비아냥 댔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최악의 흑역사’로 인구에 회자되는 경기다. 이 경기 때문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예선리그 최종전 2경기가 같은 시간에 열리는 전통이 생겼다.

물론 동시에 열리는 다른 경기의 진행에 따라 전술 운영을 달리하는 것까지는 뭐라 탓할 수 없다.

29일 볼고그라드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일본-폴란드전에서 일본은 좀체 납득할 수 없는 ‘자체 담합 경기’를 펼쳤다. 0-1로 뒤져 자칫 탈락위기에 놓인 일본이 같은 시간 벌어지던 콜롬비아-세네갈전에서 세네갈이 0-1로 지고 있다는 소식에 ‘도박’을 감행했다. 경기가 그대로 끝나면 일본과 세네갈은 승점에 골득실차까지 같게 된다. 그러나 경고숫자(일본 4개, 세네갈 6개)가 적은 일본이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

일본의 니시노 아키라(西野朗) 감독은 남은 시간 공을 돌리라고 지시했다. 신체접촉이 불가피한 축구경기에서 경고 숫자로 페어플레이 팀을 가리는 것도 우습다. 세네갈의 알리우 시세 감독은 “규정은 알고 있었지만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옐로카드를 받지말라고 지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축구가 아닌 시간죽이기로 공을 돌린 이런 비신사적인 팀에게 ‘페어플레이했다’며 손을 들어주는 이 어이없는 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국체축구연맹의 규정 자체가 어설프다. 니시노 감독은 “(시간죽이기도) 전략의 한 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들도 “16강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냐”면서 오히려 ‘니시노의 담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치이며 다른 경기결과에 운명을 맡긴 형편없는 팀”이며, “일본이 수준 낮은 경기를 했으며, 16강에서 후련하게 졌으면 좋겠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의 표현이 자극적이다. 인터넷판에 ‘완전히 엿먹인(f*** up)’이라는 원색적 표현과 함께 “니시노는 ‘스포츠 할복(hara kiri)’을 자행할 뻔 했다”고 비판했다. 세네갈의 동점골이 터졌다면 어찌됐겠는가. 명분과 실리를 다 잃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니시노는 스포츠가 아니라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16강 진출이 목표였으니 니시노의 성공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도박은 성공했지만 스포츠는 패배했다. 무엇보다 전세계 축구팬들의 인심을 잃었다. 일본이 더 선전해서 16강에 이어 8강 이상 진출한다면 불명예의 색은 옅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일본의 시간죽이기 축구는 ‘볼고그라드의 수치’로 월드컵 흑역사에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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