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카리아트 예술인에게 기본소득을

2018.08.16 20:36 입력 2018.08.16 20:44 수정

전 세계 문화연구자들이 2년마다 모여 동시대 문화의 주요 이슈들을 토론하는 ‘크로스로드 콘퍼런스’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기조연설에서 런던 소아스대학의 가이 스탠딩 교수는 ‘약탈자본주의하에서 프레카리아트: 왜 기본소득이 필수적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이 시대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노동자들이 처한 곤란을 말하면서 임시직 노동 양산에 따른 소득 불안정으로 인해 삶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 전 지구적 착취의 상황을 기본소득의 구현을 통해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기본소득의 재원은 임시직 하층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축적한 불로소득을 환수함으로써 충분히 가능하다. 노동의 정의, 분배의 정당성, 삶의 가치를 위한 기본소득 운동은 새로운 시대의 진보와 그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문화연구자들에게도 필수적인 논쟁거리다.

[세상읽기]프레카리아트 예술인에게 기본소득을

기조연설이 끝난 직후 ‘예술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발표해야 하는 나에게 가이 스탠딩 교수의 기조연설은 프레카리아트 예술인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예술과 젠트리피케이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예술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촉매자이자 희생양이 되는 역설이다. 이런 현상들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반적인 폐해 중의 하나이다. 쇠락한 도시의 한 지역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것은 대체로 그곳이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벌인 소박한 작품 활동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카페가 생기면 가난한 예술인들은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그곳을 더 이상 사수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술인은 도시공간 고급화의 촉매자이자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인이 고급화와 양극화의 해당 주체가 되는 것이다. 예술 젠트리피케이션은 예술인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문화자본은 예술의 미적 취향을 고급화시켜 예술시장 자체를 양극화시켜버린다. 돈이 되는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 돈이 되는 예술은 소수의 예술인들에게 집중한다. 뮤지컬에서 주인공과 단역 무명 배우들의 출연료 차이는 작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백배가 난다. 출연진 100명 중 주연급 3~4명의 총 출연료는 나머지 배우들의 출연료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한국에는 가난한 예술인이 많다. 2016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형 예술인 희망플랜’ 보고서를 보면, 청년예술인 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수입이 50만원 미만이 경우가 무려 86%이다. 예술인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오히려 그들은 창작을 위해 이러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면도 있다. 어떤 청년예술인은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안정적인 직장과 고소득의 레슨을 포기하고 창작, 제작, 기획 같은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들의 통장 잔액은 늘 마이너스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프레카리아트 예술인들에게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본 생계 조건만 국가가 보장해준다면, 한국에서 예술하기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는 프레카리아트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예술인을 고용보험에 의무가입시키기로 했다. 서울시는 예술인의 주거를 안정되게 만드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창작지원 이전에 생계지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자유와 삶의 행복을 위한 기본소득의 실현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소득의 확보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존재를 높이는 창작의 권리이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precario, 불안정한)’와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무산 노동자 계급)’를 합성한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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