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회·외무성 기록 봤더니, 지금과 말 달랐다

2018.11.10 13:38 입력 2018.11.10 13:46 수정
이하늬 기자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준헌 기자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배상 판결이 나온 직후부터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기 어려울 것”(5일), “폭거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6일) 등의 강경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한일협정 제2조로 ‘체약국 및 국민의 청구권에 관해서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우리 대법원은 지난 10월 30일 피해를 받은 개인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간경향> 취재 결과 일본 정부는 1965년은 물론이고 2000년까지도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국가 간 협정은 양국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개인 청구권 포기 내용이 포함됐다면, 자국민 권리를 포기한 것이 된다. 일본 정부가 자국에서 “개인 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40년 가까이 주장한 이유다.

1965~2000년, 일본 기록 살펴봤더니

1965년 11월 5일 시이나 당시 외무대신은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이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뿐 아니라 개인 청구권마저 소멸시켰느냐”는 이시바시 의원의 질문에 “개인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하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협정 체결 전부터 개인 청구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외무성 기밀문서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 ‘일한 청구권협정 제2조와 나포어선 문제’에는 “제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인 것이고 국민의 재산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돼 있다.

이들 기밀문서는 당시 나포·억류된 일본 어선 선주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1952년 동해에 ‘평화선’을 선포한 다음 이 선을 넘은 일본 어선 328척을 나포했고 3929명을 감금·억류했다.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면 이들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2000년까지 이어졌다. 1991년 8월 2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외무성 조약국장은 “일한청구권협정에서는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해결됐다”며 “이는 일한 양국이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상호 포기하였다는 것이다.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외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켰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 3월 14일 호소카와 일본 법무성 민사국장도 “야나이 전 외무성 조약국장이 일한 양국 정부가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권을 상호 포기한 것이며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고 답했는데 어떻냐”라고 묻는 후쿠시마 의원의 질문에 “잘 알고 있으며 저희도 바로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태도는 일소공동선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94년 3월 25일 일본 내각위원회에서 니시다 외무성 러시아과장은 일소공동선언에 대해 “국가 간의 청구권을 제외하면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러시아 혹은 그 국민에 대해 가지는 청구권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변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소송이 2000년대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는 피해자들이 재판을 통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없지만 청구권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최고재판소는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책임을 이행하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배근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0년 발표한 논문 ‘한일청구권협장과 개인의 청구권’에서 “공개된 자료만 통해 봐도 일본 정부는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썼다.

“한국이 국제법 위반? 일본이 위반”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06년 유엔 국제법위원회 58회기에서 채택된 ‘외교 보호에 관한 규정 초안’을 보면 오히려 일본 정부 주장이 국제법에 어긋난다. 해당 규정은 개인에 대한 침해를 국제법상 소속국가에 대한 침해로 보던 시각 자체가 허구 또는 의제에 불과하며, 국가 간 우호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개인청구권은 인권 중에 하나다. 인권이 침해당했을 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청구권이 있어야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며 “국제인권법의 출발 자체가 국가 간 합의를 해도 개인 인권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도 연구위원은 “나아가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서 말하는 청구권은 미확정 권리이므로 법률에 의해 소멸시킬 수 없다”며 “그러므로 한국 국민의 청구권에 대해 일본 국내법상으로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조치는 취해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한일협정은 한국 정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국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은 “과거 자료를 볼 때 불법적인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불법행위로 인한 청구권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본조차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포기된 것은 상호 외교적 보호권일 뿐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천 의원은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듯이 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개인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과 관계없이 유효하다”며 “또한 청구권협정은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것이 아니며 이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청구권 문제는 전혀 해결된 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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