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량 생산 앞세워 거대해진 경제 구조…생산 압박에 전례 없는 ‘시간 가난’

2018.12.31 21:49 입력 2019.01.06 19:10 수정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보살핌의 경제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

세계적 석학으로 지역경제 운동의 선구자·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우리 모두에게는 무지를 벗어나 현실 경제의 진실을 알아채는 ‘경제적 소양(economic literate)’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경제 불평등 심화의 대안으로 지역(로컬)경제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황채영

세계적 석학으로 지역경제 운동의 선구자·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우리 모두에게는 무지를 벗어나 현실 경제의 진실을 알아채는 ‘경제적 소양(economic literate)’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경제 불평등 심화의 대안으로 지역(로컬)경제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황채영
‘불평등’이란 말이 흔해진 나머지 현실의 ‘불평등’이 가져올 위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사는 애초부터 불평등했다’라는 냉소마저 퍼진다. 어쩌면 이는 무기력증 내지 좌절일지 모른다. 구조는 바뀔 듯 뒤틀다 더 견고하게 틀을 여미는 듯하다. 다들 경제를 말하면서 변화에 대한 제안에는 오래된 논리로 변화 그 자체를 틀어막고 있다. 현상은 복잡한데 주류 논쟁은 여전히 10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경제에 대한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보살핌의 경제로-세계 지성과의 대화’를 기획했다. 지구를 가르며 공통되게 드러난 현상을 돌파하고자 나온 정책들을 소개할 것이며, 다각도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인터뷰이는 지역경제 전문가이자 활동가이며 <오래된 미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다.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2018년 11월21일 만났다.


안희경 = 새해를 맞이하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나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노르베리 호지) = 저는 스웨덴에서 자랐어요. 1월10일이 제 생일이고요. 제게 새해를 맞는 겨울 기억은 스웨덴 명절인 12월13일부터 생일까지입니다. 성 루치아 축일에 우리는 하얀 가운을 입고 촛불을 밝히며 합창을 했어요. 길고 어두운 스웨덴 겨울밤으로 빛을 모셔오는 날이죠. 빵 굽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했고, 생강빵으로 만든 집을 초콜릿과 사탕, 구운 쿠키로 장식했습니다. 뜨개질로 트리 장식을 만들고 향나무 가지를 엮어 집에 들어오는 문에 에둘렀어요. 지금은 다 바뀌었습니다. 축하하는 기간도 짧아졌고, 상업적인 시스템이 됐죠.

안희경 = 왜 우리는 추억도 놓치고 기분마저 시들해졌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저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던 감각이 닫혔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애써 마음 쓰지 않으면 집착하게 되고, 탐욕이 생기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돼요. 자신이 존재하는 이 순간의 느낌과 삶이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감각을 잃을 때, 사랑은 어디론가 새어나가 버리죠. 현대 경제 시스템 속에서 뭉텅 증발했어요.

안희경 = 돌아보면 홀리듯 매료되어 현대화에 몰두했습니다. 답이 하나였죠.

노르베리 호지 = 그 전 과정을 라다크에서 보았어요. ‘아! 이는 심리적이며 정신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이구나! 물질적인 단계만이 아니구나.’ 눈을 활짝 뜨게 됐습니다. 현대 시스템은 심리 단계에서 먼저 상상과 개념으로 작동해요. 학교 또한 그 체제를 완벽하게 생산하는 동력이고요. 사람들이 점점 더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동물의 고통과 식물로부터 단절되어 갑니다. 가족관계도 협소해지죠. 현대 경제체제 이전에는 인간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했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이 꼭 필요했습니다. 오늘의 제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현대인이라면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안희경 = 제가 어렸을 적, 1980년대에는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면서 심부름을 자주 시켰어요. 요즘 같은 겨울에는 생미역을 사오라 하셨고, 두부가 떨어지면 그 즉시 골목을 내달려야 했죠. 물론 주인 아주머니에게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께서 갚을 걸 아니까요. 동네의 상권이 얼굴을 맞대는 관계로 얽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식료품 가게를 집 안에 차립니다.

노르베리 호지 = 현대 경제가 만든 또 하나의 개념이 시간입니다. 우리는 전에 없던 시간 가난을 겪어요. 일하고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 때문입니다. 이 압박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자발적으로 삭제하게 만듭니다. 요리할 시간, 쉴 시간, 얼굴 보며 맺어나갈 관계들을 차단하죠.

현재의 생산방식은
기후변화 부르고 비효율적
나를 위한 시간 없애고
사람들 관계 차단시켜

안희경 = 생활을 꾸려가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죠. 기업이나 노동자나 생산성을 높여야 경쟁력이 있잖아요.

노르베리 호지 = 현대의 생산방식이죠. 하지만 여기엔 억지가 있습니다. 모든 생산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생산은 식량 생산입니다. 현대 경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점점 더 멀리 떨어뜨리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비효율적입니다. 생산면적은 점점 더 커지면서 단일 경작으로 바뀌었죠. 단일 경작에서 나오는 생산량은 땅 1에이커당 훨씬 적습니다. 단위면적당 물도 더 줘야 하고요. 넓으니 기계가 들어가게 되고 배기가스를 배출합니다. 기후변화를 부르고, 공기오염을 낳습니다. 현대 경제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농부들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압박했습니다.

안희경 = 농촌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소비자로서 살아가려면요. 세계적으로 6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합니다. 도시의 소비자들 역시 보다 싼 가격을 원하고요. 이는 서로 맞물려 있죠.

노르베리 호지 = 하지만 한발 물러나서 본다면요. 사람들이 싼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보다 건강한 음식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충족하는 경제정책은 지역 농산물 생산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더 신선한 음식을 가질 수 있고, 더 쉽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 구조요. 다양한 작물을 키워내는 작은 규모의 농사는 단위면적당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합니다. 경제적이죠. 그래서 더 많이 훨씬 낮은 가격으로 농작물을 가꿔낼 수 있어요. 하지만 다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적 소양(economic literate)’이 다급합니다.

먹고 입고 쓰는 데 필요한 것들
이를 생산·소비하는 과정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

안희경 =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적 소양’을 현실 경제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노르베리 호지 = 실제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경제의 진실을 간파하는 것이죠. 다들 기업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대부분을 만드는 본체라고 믿죠. 그리고 다국적 회사가 그중에서도 핵심이라고요. 하지만 진실은 이래요. 음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할 겁니다. 집도 아주 중요하죠. 옷도 그래요. 이는 좀 더 괜찮게,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되고 필요한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대량으로 수입하고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요. 여기에 우리가 쓰는 텔레비전 스크린과 하이테크 상품들이 있습니다. 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도 다국적기업까지 필요하진 않아요. 우리는 모두 결정할 수 있고, 정부에 일을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술 분야에 대해서도 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가 작동해 어떤 종류의 사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결정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이 되도록 결정해낼 수 있습니다. 그 사업체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도 정할 수 있죠.

FTA는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무력화시켰고
다국적기업을 지원하며
개별 국가들은 더 가난해졌다

안희경 =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을 짚어봐야 하는데요.

노르베리 호지 = 지금 국가는 점점 더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들이 로봇을 선호하며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니까요. 국가는 인공지능 산업을 지원하고 지구적 규모의 기업을 지원합니다. 기업은 늘 새로운 시장을 찾아가 그곳에 있는 소비자에게 팔고 싶어 합니다. 그 땅에는 규제가 있죠.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의 규제를 해체하는 겁니다. 기업 할 자유를 얻어요. 반면에 지역의 사업들은 점점 더 불필요한 요식과 규제에 묶입니다. 지역 기업은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지고, 더 큰 비용을 써야 하죠. 늘 글로벌 기업이 승자가 됩니다.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소농과 소상공인들은 불만에 차오르고 규제에 대해 분노하고 국가와 정부에 대한 원성을 높입니다. 그들은 정부가 작아지길 바라요. (작은 정부, 규제 해체를 30년 넘게 주장해온) 우익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규제 해체가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왜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는 규제가 작동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글로벌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 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지역 운동장에서 활동하는 로컬 비즈니스들이 더 많은 일자리와 지역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재정립해야 하고요. 지역에 발판을 둔 사업들이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며 생산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지키는 일자리를 갖도록 방향을 틀어야죠. 진실이 밝게 드러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안희경 = 한국 남서쪽에 있는 도시, 군산에는 제너럴모터스(GM) 생산공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다수가 GM 노동자였고, GM과 연관되어 형성된 시장이었죠. 문을 닫을 당시 모두가 믿기를 GM이 구조조정을 하면 도시는 망할 거라고 했어요.

노르베리 호지 = 진실은 우리가 마을과 사회를 들여다볼 때, 그 안에는 많은 작은 회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사회가 조성해 놓은 비즈니스가 있죠. 비즈니스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업 활동을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먼저 눈을 돌리는 거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계하는 사회가 훨씬 건강한 환경을 갖고 안정된 일자리가 더 많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안희경 = 큰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노르베리 호지 = 큰 그림은 지구를 가로지르며 이 행성의 자원을 갉아먹고 생명력을 파괴하는 힘의 방향과 이 힘을 바로잡을 주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겁니다. 지구적으로 일자리가, 민주주의가, 이를 둘러싼 환경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자연발생적인 것도 아니고, 진화 과정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변화시키기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들 생각 속에 있어요. ‘이 시스템은 바꾸기에 너무 거대해’라는 생각이 변화를 막고 있습니다.

안희경 = 일단 거대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하기 시작하면 몇 달 뒤 지역 상점까지 문을 닫습니다. 제조업이 단가에 따라 국경을 넘나들 때마다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조정권은 지역이 아니라 너무도 먼 곳에 있어요. 월스트리트일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 지역 경제부터 살피니 생산·소비구조 변화…세계 도시청년들이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명저 <오래된 미래>의 저자로 글로벌 경제가 지역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왼쪽)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 지난해 11월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채영

명저 <오래된 미래>의 저자로 글로벌 경제가 지역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왼쪽)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 지난해 11월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채영

노르베리 호지 = 이 모든 것을 자세히 볼 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정부가 결국엔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금융과 기업을 키워왔다는 겁니다. 이 금융과 기업들은 어떤 한 나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국적 없는 경제체제로 지구적인 규모에서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그 사기업들이 성장해온 것과 비교하면 개별 국가들의 상태는 가난해졌고요. 국가들은 자체의 돈줄을 말려온 것이죠. 국가가 자기 손에 있던 권력을 지구를 가로질러 뛰는 선수들에게 넘긴 겁니다.

안희경 = 저는 경제 시스템이 우리의 마음마저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10여년 전에 수많은 활동가, 농부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며 맞섰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맺어졌죠. 시간이 흘러 도널드 트럼프가 FTA를 폐지하겠다 하니 모순적인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반대하던 진보진영에서조차 ‘FTA 없이 한국 경제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경제를 넘어 문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노르베리 호지 = 그래요. 바로 무지입니다. 사람들은 FTA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우리를 체계적으로 무력하게 했는지 보려 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집세를 내기 위해 더 오래 일하고 있어요. 슬프게도 이런 종류의 경제적 성장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믿고, 경제성장을 약속하는 우파 지도자들에게 표를 주는 한 더욱 분투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우파 지도자들은 그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낭비적이며 파괴적입니다.

안희경 = 당신의 해법은 무엇인가요.

노르베리 호지 = 라다크는 제게 실제 사람들이 어울리는 규모의 사회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이로운지 확신을 갖도록 해주었습니다. 더 작은 규모일 때 사람들은 타인과 자연에 대해 스스로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합니다. 그들은 더 지성적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많이 차단된 이유는 사는 구조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에요. 이 구조를 다 볼 수가 없습니다. 이 구조가 움직이고 이동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죠.

안희경 = 당신이 정의하는 로컬의 규모가 궁금한데요. 지난 10여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는 로컬 식품, 로컬 상품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들의 로컬 개념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나온 농산물, 혹은 북부에 살면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나온 식품 정도로 한정합니다. 이 구분을 캘리포니아 면적의 3분의 1인 한국에 대입하면 한국산 농산물은 모두 로컬푸드 아닐까요? 그렇지만,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여러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로컬의 정의가 뭘까요.

노르베리 호지 = 만약에 한국이 소고기를 미국에서 사오는 대신 한국산을 소비한다면, 이는 개선될 겁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어요. 이는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농부에게 힘을 주죠. 왜냐하면 수출을 위해 특화된 농사가 100여년 동안 진흥되어왔고 이 속에서 무력, 식민주의 노예, 전쟁 등으로 생산 지역들이 자립하는 것을 막아왔어요. 그래서 밤새 달려오는 농산물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먹자는 대안이 나온 겁니다.

안희경 = 한 시간 거리면 좋은가요. 너무 도식적으로 물어서 죄송합니다.

노르베리 호지 = 완벽한 로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산다면 신선한 지역 채소를 갖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지역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더 많이 알아차리는 인식의 확산과 맞물려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자원부터 살펴서 그 자원의 잠재력을 깨우고, 생산과 소비 구조를 변화시켜 나가는 겁니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농약, 오염, 화석연료 없이 건강을 키워내는 인식이 자리 잡겠죠. 실질적으로 생산과 유통 소비 구조를 바꾸고 내가 사는 지역의 일은 내 손으로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지역화는 작은 마을로
퇴각하는 것 아냐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알리고
자연과 연결되게 해

안희경 = 하지만 이미 청년은 농촌을 떠났어요. 지역의 도시들 역시 생산인구를 대도시로 배출하는 교육현장으로 존재하는 경향입니다.

노르베리 호지 = 청년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농부 운동이 청년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다수가 도시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던 이들입니다. 이곳 스페인 이비사도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이주해 와 농사를 지으며 각자의 프로젝트를 하는 청년들로 가득합니다.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영국에는 ‘토지 노동자들의 연맹(Landworker’s Alliance)’이 등장했습니다. 퍼머컬처(permaculture·영속 농업) 운동 속에서 싹터 수백만 청년들이 함께합니다.

지역의 일 내손으로 결정
민주주의로 가는 길
토지 노동자 연맹·퍼머 컬처 등
땅 살려내며 공동체 만들어

안희경 = 퍼머컬처라면 숲이 식물을 길러내듯 다양성을 살려 작물을 심음으로써 최소한의 인간 노동으로 수확하는 자연농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위 수확량이 많아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어요.

노르베리 호지 = 네. 이들은 땅을 살려내며 더 많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그리고 놀라운 점은 거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데도 이 운동이 퍼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안희경 = 다른 지역 풀뿌리 운동 공동체들과요?

노르베리 호지 = 단지 풀뿌리 운동 조직만의 활동으로는 어렵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보에 어둡다는 것에 충격을 받곤 하는데요. 예를 들어 제 일은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식량과 농업, 세계화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그들의 90%가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세계무역기구와 우루과이라운드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1993년 설립된 국제농민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비아캄페시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사회운동 조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듣지 못했다니요.

안희경 = 저도 2012년에야 알았습니다.

노르베리 호지 = 왜들 모르냐면요. 81개국에 사는 3억명 가까운 농부들이 모여서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거대 언론 또한 기업 시스템 속에 있기에 농부들의 목소리를 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요.

안희경 = 지금 우리의 경제는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금융권력이 핵심인데요. 금융자본도 지역화 속에서 변화할 수 있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금융 자체가 지역화되고 있어요. 지역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대기업에만 대출해주는 거대 은행과 달리 소기업에도 낮은 금리의 대출이 이뤄지죠. 풀뿌리 조직들이 자체 공동체은행을 설립하는 도시들이 나오고 있고요. 지역 농부들에게 자금을 조달(융자)합니다. 어떤 경우는 무이자 융자로, 어떤 경우는 매우 낮은 이자로 장기융자를 하죠. 여기에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투자 수익을 창출하면서 사회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투자방식) 형식이 번지고 있는데요.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두는 투자를 합니다. 포르마 퓨처 인베스트가 발표하길, 고객의 투자를 재생에너지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도해서 기업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장기 투자 속에서 수익도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요. 저는 자신의 돈을 투자해 지역의 땅을 살려내고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려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가가, 거대 조직이 이 땅의 미래를 살리지 않겠다면 내가 그 일을 하겠다!’ 야생의 힘을 살려내는 일들은 실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희경 = 서로 연결되어 지탱하는 자연의 상호 연결성을 경쟁적이며 배타적인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지역화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연결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바로 타인의 손길 속에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요. 맨해튼 빌딩 속에서 사는 누군가도 지역 식량체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농장에 가서 채소를 고르고 그걸 키운 농부와 만나고, 그런 다음 맛있게 먹고 그걸 기른 이의 손길을 인식할 수 있죠. 이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그 사람이 자기와 거래하는 농부가 홍수 피해를 당했다는 걸 안다면 아마 그 주에 채소를 사러 갔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값을 쳐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진화해온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안희경 = 마음이 진화해온 방식이죠. 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이뤄온 삶의 안전요.

노르베리 호지 = 우리는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연결되는 방식 속에서 진화해왔습니다. 근대 이후의 경제체제는 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극적으로 낱낱이 갈라놓고 있어요.

안희경 = 제게 꿈이 있는데요. 전 국토의 유기농업입니다. 비록 최저임금을 올리기는 힘들다 해도 모든 농산물이 유기농이라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 할 것 없이 건강한 밥상을 누리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밥상의 불평등 줄이기’라고나 할까요.

노르베리 호지 = 이 또한 신중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오로지 유기농만을 말하는데 그 문제는 점점 더 산업화된 단일 재배 유기농화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좀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유기농 시스템이 갖는 방향을 더욱 짧은 거리, 더 다양한 유기농 작물로요. 지역 소비자가 농부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농부와 소비자가 만나는 장터도 전국적으로 퍼지도록요. 아마 전환 초기에는 농부가 이렇게 말해도 소비자들은 괜찮다고 할 거예요. “3개월 전에 살충제로 유황을 조금 뿌렸습니다. 과일에는 안 쳤고요. 땅에 줬어요.” 농부들은 소비자의 지원과 도움에 힘입어 좀 더 쉽게 더 많은 전환을 이룰 수 있겠죠. 이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길입니다. 유기농이 단지 또 다른 기업의 상표가 붙어서 나오는 산업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비즈니스에 좌우되지 말고
사회가 기업활동 움직이게
사람 중심 운동 필요

안희경 = 한국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요?

노르베리 호지 = 세상은 위기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위태롭고, 환경은 다급한 처지고요. 게다가 불행하게도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겁니다,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기후변화가 모든 것을 초토화할 때까지. 그래서 우리는 경제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2008년과 같은 경제위기가 또 올 겁니다. 몇몇 사람은 큰 성공을 거머쥐고, 다수의 사람은 좌절에 또 꺾일 수 있어요. 지역화는 우리가 모두 어떤 작은 마을로 퇴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계약서도 없고 외부와 협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이와 정반대의 길입니다. 거대한 운동이 있어야 해요. 사람 중심의 운동이 필요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어떤 대안적인 변화가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지 탐구하며 연대해 나가길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다섯 살 아이가 이파리가 길게 덜렁거리는 당근을 쥐고 먹는 걸 보았다. 낯설었다. 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아이 엄마가 설명했다. 자신이 즐겨 찾는 파머스마켓에 나오는 농부들의 당근은 늘 이렇다며. 아이는 땅의 기운을 씹는 듯 보였다. 덕분에 나는 당근이 막 떠나왔을 붉은 대지를 떠올리고 흙냄새를 맡았다. 모든 경제구조는 우리 각자를 통과하여 구축되고 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2)는

행복의 경제학 역설…책 ‘오래된 미래’ 유명

40년 동안 전 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있는 로컬경제운동의 선구자. 글로벌 경제와 국제 개발이 지역사회와 경제,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해왔다. 세계를 가로지르며 불거지는 경제 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고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래된 미래>는 영화와 더불어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됐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제작자·공동감독이다.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실현해왔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지역경제를 전환하는 활동을 이끌었으며, 국제미래식량농업위원회·국제세계화포럼·글로벌에코빌리지네트워크 창립에 앞장섰다. 국제 조직인 로컬퓨처(Local Futures)와 국제지역화연합(IAL)을 설립했고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 전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도 함께하며 공동체와 로컬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알려왔다. ‘어스 저널(Earth Journal)’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환경운동가 10인’ 중 한 명이다. 최근 지구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다룬 저서 <로컬의 미래>를 출간했다.


■ 안희경은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량 생산 앞세워 거대해진 경제 구조…생산 압박에 전례 없는 ‘시간 가난’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레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의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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