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폭법의 역설이 학교를 괴롭히고 있다

2019.01.01 20:44 입력 2019.01.01 20:55 수정
조희연 | 서울시교육감

학교가 신음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인을 꼽으라고 하면 선생님들은 주저 없이 학교폭력(이하 학폭)을 든다. 어느 구에서는 두세 학교를 빼고는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학폭과 관련된 소송이 제기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2011년 학폭이 크게 문제가 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이 만들어졌다. 이후 학폭법에 의해 학폭사항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치열한 대학입시경쟁에 영향을 미치면서 학교는 더욱 황폐화됐다.

[기고]학폭법의 역설이 학교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상기해보자. 아이들이 싸우면, 때린 부모는 “이놈아, 친구를 그렇게 때리면 되니? 내가 그렇게 키웠니?”라고 말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질책하고 타일렀다. 맞은 학생의 부모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병원에 실려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아프지? 친구와는 그렇게 싸움도 하고, 아프면서 크는 거야” 하면서 용서의 마음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훈훈한 문화는 사라지고, 지금은 치고받은 아이들은 이미 화해했는데 가해학생의 부모는 가해를 옹호하고 법에 의존하여 가해의 기록이 생기부에 남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한다. 이에 맞서 피해학생의 부모는 맞소송을 불사한다.

학폭 자체보다 학폭법에 의한 학폭 관리 문제가 학교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폭문제를 관장하는 생활지도부장을 구하는 일이 일부 학교에서는 신학기에 교장선생님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학폭처리를 담당한 교사가 소송이 두려워 정당한 학생지도도 기피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학폭을 둘러싼 갈등이 ‘악순환’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학폭을 다루는 관리프로세스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일차적으로는 학교에서 학폭 관련 갈등을 교육이나 화해로 풀어낼 수 있는 권한과 공간을 확대해주어야 한다. 지금 학폭법에 의하면 학폭은 경미한 것에서 심각한 것까지 9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과 같은 중한 조치와는 달리, 서면사과나 학교봉사 등 경미한 사안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불필요한 학폭 갈등을 줄이고 학교가 화해로 종결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또한 바로 처벌을 위한 법적 과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위한 갈등조정기간을 두고 이 기간 동안 화해할 수 있게끔 하고 사안이 경미하다면 학교장이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미한 사안인 경우에는 처벌보다는 화해와 교육적 학습의 과정으로 초점을 이동시켜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해학생이 2차 가해행위를 하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폭 중 중대한 사안이나 여러 학교 학생들이 연루되어 있는 ‘학교 간 폭력’의 경우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다루도록 함으로써 학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중대사안이 하나만 나와도 한 학기 동안 그 학교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학폭으로부터 자녀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의식이 존재한다. 학폭이 빈발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강한 학폭 처리방식을 적용함으로써 학폭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 방식은 한계에 왔다. 이제 학폭 접근법을 대전환해야 할 때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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