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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 중단 책임은 노조가 아닌 대학본부에 있다"…파업 지지 나선 서울대 학생들

2019.02.10 19:22 입력 2019.02.10 20:10 수정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10일 오후중앙도서관 기계실을 지지방문해 파업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나흘째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선명수 기자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10일 오후중앙도서관 기계실을 지지방문해 파업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나흘째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선명수 기자

“학생들이 누려왔던 편안함이 악조건에서 만들어진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물이라면 그런 편안함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기계실. 이 학교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나흘째 파업 농성 벌이고 있는 이곳에서 이 학교 사회학과 학생 이예인씨(22)는 “파업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차별 금지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7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부터 대학 측과 총 11차례의 교섭과 두 차례의 조정 절차를 밟았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도서관 등 일부 건물의 난방 가동을 중단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발표에 따라 지난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 학교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으로 있을 때보다 처우가 악화됐고 수당과 복지에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며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파업으로 중앙도서관과 행정관 등 일부 건물의 난방이 중단됐다. 다만 중앙난방 시스템이 아닌 개별 난방으로 운영되는 일부 난방 장치는 계속 가동되고 있다.

지난 8일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 모임인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공대위 학생 20여명은 이날 컵라면 등의 농성 물품을 사들고 농성장인 기계실을 찾았다.

공대위에 함께한 정치외교학과 학생 윤민정씨(22)는 “최근 학내에서 파업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졌는데,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 지지 방문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맞은 이성호 서울일반노조 기계·전기분회장은 “본의 아니게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끼치게 돼 굉장히 불안하고 학생들에게 미안했는데 찾아줘서 고맙다”면서 “앞으로는 아직도 입장 변화가 없는 대학 측과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이 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해온 최분조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도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파업에 나서게 됐다”며 “학생에게 이런 사정에 대해 미리 이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충분히 상황 설명을 하지 못했다”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앞서 서울대 총학생회는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줄 것을 노조에 요청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서울대 총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총학생회장단은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시험, 취업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도서관에서 학습하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에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댓글을 통해 총학의 요청은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들이 쓰레기를 모아 시장 집 앞에 버리는 운동을 한다”며 “서울대 총학생회의 입장은 파업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우리 집 쓰레기만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이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따질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파업하게 만든 자본가들에게 따지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고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어릴 때부터 배울 기회가 있었던 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초등학생도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총학의 공지글에는 댓글 수백여개가 달리며 파업 지지와 비판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 8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 전면 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실한 단체교섭, 중소기업 제조업 시중노임단가 수준의 임금 지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 전면 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실한 단체교섭, 중소기업 제조업 시중노임단가 수준의 임금 지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노조는 이날 오후 총학생회 운영위원회에 간담회를 요청하고 파업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학교와 노조는 파업 돌입 이후 지난 8일 대화 테이블에 앉았지만 입장 차만 확인했다. 양측은 11일 노사 협상을 재개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파업을지지합니다’ ‘#시설노동자에게인간답게살권리를’ 등의 문구로 SNS에서 손글씨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이날 학내 곳곳에 ‘당신의 노동은 나의 일상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부착했다.

공동행동은 이 성명에서 “서울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들을 지지한다”며 “서울대 본부가 해결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불편함이 당장의 파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학교 측이 노동조합과의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안까지 걷어쳤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며 “이런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대학의 태도로 인해 노동자들이 결국 파업까지 내몰리게 됐다면, 그 불편함의 책임을 노조가 아니라 해결 의지가 없는 서울대 본부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당장의 불편함을 약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게 아니라 무시로 일관해도 문제 없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곁에 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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