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에 대한 회의

2019.03.08 20:47 입력 2019.03.08 21:05 수정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이 대중적으로 벌어진 계기는 무상급식 논쟁이었던 듯하다. 그때까지 복지란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돕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그 논쟁을 계기로 복지는 발전된 산업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보편적 삶의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는 복지국가 운동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우리나라도 복지국가의 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중산층 심지어 중상층까지도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굳건히 자리 잡았다.

[세상읽기]보편적 복지에 대한 회의

나도 그 당시 이러한 흐름에 적극 공감하였던 바 있으며, 이에 일조하기 위해 보잘것없지만 책도 저술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열심히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어느 강연회에서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부닥쳤다. 지금 취약계층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현재의 복지 재원이 그들의 상태를 만족스럽게 개선하는 데에 얼마나 턱없이 부족한 줄 아느냐.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까지 복지 혜택을 받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국 그나마 못사는 이들에게 가는 몫까지 털어가겠다는 탐욕이 아니냐.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논리로 대답하였다. 취약계층에게만 집중되는 공공부조는 부자들과 국가의 시혜적 성격을 면치 못하여 언제든 삭감되고 심지어 없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성격의 것을 면치 못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면 중산층 또한 수혜자가 되어 복지 정책을 지지하게 되고 또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에도 찬성하게 될 것이라고. 이렇게 폭넓은 계층이 참여하는 ‘복지동맹’이 든든하게 성립하도록 만든 것이 북유럽 복지국가 건설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보편적 복지의 성격을 띤 여러 정책들이 이후 시행되고 자리를 잡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복지동맹’은 형성되지 않았다. 중산층은 증세를 거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조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약간의 보편증세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세금 폭탄’ 운운하며 길길이 날뛰었고, 이후 모든 정당의 모든 선거에서 증세라는 의제는 금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증세 없는 복지’ 구호가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외쳐졌으며, 기껏해야 소수의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만큼의 ‘핀셋 증세’가 이야기될 뿐이었다.

‘증세 없는 보편복지’는 결단코 가능하지 않다. 보편적 복지의 확장은 국가의 재정구조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바꾸어 놓는 근본적인 일이기에 예산 절감이나 합리화 등의 방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세 부담률을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 스웨덴에서 노동자들이 상당히 높은 세율의 소득세를 납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중산층 또한 획기적인 증세를 감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복지전문가 오건호 박사와 시민운동 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몇 년째 줄곧 강조해왔던 바이다. 하지만 우리의 중산층은 무지에서인지 탐욕에서인지 혹은 무지로 위장한 탐욕에서인지 이러한 당위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러면서도 고운맘 카드는 계속 그어대고 있으며, 아동수당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간다. 물론 보편적 복지 자체는 죄가 없다. 공공부조와 달리 사회 보험과 각종 사회 수당 및 서비스는 애초부터 보편적 성격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충분히 보편적으로 시행될 만큼 충분한 재원을 확충하는 데에 실패할 때 나타난다. 바로 그 보편적 복지의 수혜자인 중산층이 응분의 부담을 거부할 때이다.

여기에서 몇 년 전 그 공무원이 던졌던 질문이 비수처럼 아프게 가슴에 꽂힌다. 교과서에 나오는 ‘복지동맹’은 형성되지 않았다. 복지재원은 극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 정책을 요구하면서 중산층들도 복지혜택을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국 그의 말대로 취약계층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지난 몇 년간의 보편적 복지정책의 확대는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의 건설은커녕 엉뚱하게도 ‘역진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게 아닐까?

최근에 나온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남재욱 박사의 연구 ‘한국 복지국가 성장의 재분배적 함의’는 지난 10여년간의 복지국가 성장 과정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배제된 집단이 근로연령대의 저소득 가구임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러한 의심은 더욱 배가된다. 물론 이는 구체적인 수치와 자료를 놓고 세밀히 검증해 봐야 할 문제이며, 더욱 체계적인 연구 조사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믿음을 잃었다. 증세 문제에 대해 요지부동으로 버티는 중산층과 기성 정당들이 버티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가 한국사회의 나아갈 바라고 외칠 배짱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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