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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_내_성폭력 시즌2,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 비등단 선언 등 새로운 움직임

2019.05.13 18:45 입력 2019.05.14 15:06 수정

지난달 29일 ‘#문단_내_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오네긴하우스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성폭력 피해자·연대자 등 45명이 참석한 좌담회에서 아가미 공동대표 지지가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문단_내_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오네긴하우스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성폭력 피해자·연대자 등 45명이 참석한 좌담회에서 아가미 공동대표 지지가 이야기하고 있다.

“2016년 이후, 문단의 현장과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우리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고 현실의 상처와 문제에 부딪힙니다. 우리가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 오네긴 하우스에서 ‘#문단_내_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 좌담회’가 열렸다. 2016년 이뤄진 ‘#문단_내_성폭력’의 피해자와 연대자 등 45명의 참석자로 좁은 강연장이 꽉 찼다. 참석자 가운데엔 소설가 정세랑·천희란, 이성미·송승언 시인, 장은정 평론가 등도 포함됐다. 2시간으로 예정됐던 좌담회는 4시간 넘게 진행돼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 ‘#문단_내_성폭력 시즌2’

아가미는 지난 3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을 표방하며 만들어졌다. 공동대표 지지(활동명), 도우리, 습작생b가 주축이 됐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이후 일부 가해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역고소를 당하며 고통받았다. 지지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로 공동고소를 하면서 연락을 주고받다 힘을 얻게 됐다. 이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서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가미’란 이름에 대해선 “물고기가 아가미로 호흡하듯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호흡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코와 입으로 호흡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숨쉬게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동대표 습작생b는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이후 징역 8년을 선고받은 배용제 시인을 고발한 ‘고발자5’로 활동했다. 배씨는 고양예고 강사이던 시절 미성년인 제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습작생b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후 오히려 무력감에 빠졌다. 다른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피해자들을 도와줄 공동체는 사라진 상황이었다. 내 사건에서 이긴다고 모든 피해가 치유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아가미에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좌담회의 1부는 ‘듣기’로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민감한 성격의 이야기인 만큼 비공개를 전제로 진행됐다. 2부는 참석자들이 문단 내 성폭력 이후의 변화와 방향을 이야기하는 ‘말하기’ 시간을 가졌다.

천희란 소설가는 “문단 내 술자리가 줄었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불편한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문제 제기하는 분위기가 됐다. 우리가 입 다물고 있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습작생b는 “수업 중 교수들의 잘못된 발언에 손을 들고 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성의식을 갖고 공동체를 재구성하다보니 학교 분위기가 바뀐 현상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좌담회엔 남성 작가들도 참석했다. 피해자 연대활동으로 2건의 고소를 당한 송승언 시인은 “고소의 내용이 대상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 다른 것을 느꼈다. 나도 고소를 당했지만 내용이 작가의 예술관·문학세계에 타격을 입혔다는 예술성 훼손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김연필 시인은 “문단의 위계란 것이 존재한다. 등단 지면에 따라 일종의 위계가 생기고, 유명 지면을 통해 등단한 작가가 제 앞에서 성희롱성 폭력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를 대할 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가해자를 대하는 법도 모두가 조금씩 습득하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제 주변 친구들은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문단_내_성폭력 시즌2,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 비등단 선언 등 새로운 움직임

■ 페미니즘 창작과 비평, 비등단 선언 등 변화

‘#문단_내_성폭력’은 문학을 둘러싼 창작과 비평의 장의 변화를 불러왔다.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성다영 시인은 문학세계사에서 해마다 펴내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작품을 싣는 걸 거부했다. 성 시인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문학세계사’는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김요일 시인이 기획이사로 있던 출판사다. 그는 2017년 강제추행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페미니즘 비평 담론을 아카이빙하는 프로젝트 팀도 만들어졌다. 장은정 문학평론가는 페미니즘 비평들을 모두 모아 아카이빙하는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를 만들었다. 2016년 공론화 이후 벌어진 사건 기사와 문예지 등 다양한 지면에 실린 관련 비평들을 한곳에 모았다. 최근 평론가·시인·독자, 페미위키 운영자 등 7명이 동참 의사를 밝혀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페미니즘 비평’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쓴 글뿐 아니라 이런 입장에 반대·비판하는 입장의 글도 포함돼 있다. 장 평론가는 “문학계 페미니즘 담론은 문학출판계의 구조에서 자행되어 온 폭력에 대한 발화 및 사유에서 촉발된 담론이기에 중요하다”며 “문예지의 독자층이 제한되어 있다. 담론이 만들어져 온 과정 자체를 온라인 공간에 옮겨서 누구나 검색해서 손쉽게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 사이트 캡처.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 사이트 캡처.

미등단 대신 ‘비등단’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등단제도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팟캐스트 ‘문학은 개뿔’을 운영하는 부귀(활동명)와 영화는 ‘등단 거부’를 내세우고 있다. 부귀는 “문단 내 권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기성 작가들이 습작생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단 내 성폭력의 원인이 됐다”며 “등단을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지면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단의 폭이 넓어지고 장벽이 없어져야 등단용 작품을 기계적으로 연습하는 대신 자유롭고 좋은 글이 많이 창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습작생b도 “등단이라는 제도 자체가 낡은 것 같아서 비등단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2018년 ‘#metoo’로 이어졌던 문학출판계 내 성폭력 말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가미는 이번 좌담회를 바탕으로 향후 활동을 확대해갈 계획이다. 공동대표 도우리는 “아가미는 한 학교나 신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라면 누구나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당면 목표는 사설이든 공적인 것이든 모든 글쓰기 수업 전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동고소한 사건은 최근 검찰에서 불기소 결정이 났다. 이들은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 싸움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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