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칸 황금종려상

웃프면서 따뜻하게 꼬집은 빈부격차, 세계가 공감했다

2019.05.26 19:09 입력 2019.05.26 22:16 수정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상’에 해당하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경쟁부문 초청 영화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영화에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작은 심사위원들이 정한다. 매년 바뀌는 심사위원들은 다양한 국적의 영화감독, 배우, 문인 등으로 구성된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은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을 연출한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성장한 엘르 패닝 등 모두 9명이었다.

칸영화제는 매년 거장들의 신작이 공개되는 자리인 만큼 수상 경쟁도 치열하다. 올해는 짐 자무시, 켄 로치, 장 피에르·뤼크 다르덴, 테렌스 맬릭, 페드로 알모도바르, 자비에 돌란, 쿠엔틴 타란티노 등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거장의 비중이 예년보다 훨씬 컸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이 <기생충>을 최고 영화로 선정한 이유는 뭘까.

26일 봉준호 감독과 영화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우선 소재다. 전 세계적인 화두로 국적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 꼽힌다. <기생충>은 가난한 기택(송강호)과 부유한 박 사장(이선균), 두 가족을 중심으로 빈부격차·양극화로 인한 계층·계급 간의 단절과 갈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전 세계에 첫선을 보인 공식 상영회 뒤 각국의 영화제 관계자들이 봉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며 “자기네 이야기”라고 공감했다. 봉 감독은 지난 22일 인터뷰에서 “홍콩 분은 ‘이거 완전 홍콩 상황이고, 홍콩에서 TV 드라마로 해도 될 것 같다’고 했고, 영국 분도 ‘이건 런던으로 세팅을 바꿔 리메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대표는 “보편적으로 깊이 울리는 영화”라며 “미국의 수준 높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생충>은 전 세계 192개국에 판매돼 <아가씨>가 세웠던 기존 한국영화 판매 기록(176개국)을 넘어섰다.

봉준호 감독 일곱 번째 장편인 ‘기생충’은 당초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내용으로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 일곱 번째 장편인 ‘기생충’은 당초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내용으로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빈부로 인한 계층·계급 갈등은 보편적 소재인 만큼 그간 많은 영화·드라마에서 다뤄진 바 있어 자칫 식상할 수 있다. 그러나 봉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완성했다.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기생충>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회에 대한 각종 풍자와 해학은 물론 폭소를 터뜨릴 수 있는 블랙코미디로 보이다가, 스릴러·공포 영화 못지않은 서스펜스도 중간중간 담겨 있다. 특히 딱히 악한 인물이 없는데도, 교차 편집(같은 시간 두 공간에 있는 인물을 교차로 보여주는 것) 등을 통해 숨 막히는 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폴란드 배급사 구매총괄 자쿱 두진스키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강렬한 스릴러가 잘 조화된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평했다. 영화 전반적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담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언론들은 공식 상영회 뒤 “봉준호 자체가 장르” “봉준호가 ‘봉준호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은 <기생충>에 대해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며 따뜻한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생충>은 봉 감독 특유의 공간·소품을 활용한 정교한 미장센·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속 사건은 주로 유명 건축가가 지은 박 사장의 집과 네 식구가 함께 앉아 식사하기도 힘든 기택의 좁은 반지하집에서 벌어진다. 영화는 이 같은 한정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하·반지하·1층·2층 등 수직적 기준으로 나뉜 공간은 계층·계급 간의 간극을 상징한다. 또 이들 공간을 연결하고, 동시에 구분해놓은 계단이라는 공간에서 인물들의 욕망과 위태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봉 감독은 “워낙 계단이 많이 등장해 저나 조감독 등 스태프들은 (별칭으로) ‘계단 영화’라고 불렀다”며 “서로 가장 좋아하는 계단 장면을 꼽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선정된 뒤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선정된 뒤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배우 중 어느 한 명도 뒤처지지 않는 고르고 안정된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기생충>은 1~2명의 주인공이 중심이 돼 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비중이 비슷한 6~8명의 배우들이 함께 끌어가는 이야기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배우 개인의 능력은 물론 감독의 역량이 필요하다. 적절한 배우를 캐스팅하고 조율하기는 쉽지 않다. 심사위원들도 이를 해낸 봉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이 봉 감독의 성장, 진화를 보여준 영화라는 점도 높은 점수를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봉 감독과 경쟁한 다른 거장들의 영화는 그들의 전작보다 못하는 등 예상보다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분석이다. 켄 로치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는 기술 발달로 인한 노동 소외 등 최근 소재를 다뤘지만 깊이나 전달력 면에서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못했다. 할리우드 대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주연한 올해 영화제 최고 화제작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역시 타란티노 감독의 전작보다 크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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