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구조조정’ 정부가 해야 할 일

2019.06.09 21:00 입력 2019.06.09 22:41 수정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7조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이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고, 내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어 가던 올해 현대중공업(이하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이 시작했다. 본계약이 완료됐고 5월31일 현중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는 물적 분할을 통해 산업은행(이하 산은)과 현중이 공동출자하는 형태의 한국조선해양이라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가 탄생했다. 공정위와 해외에서의 기업결합 심사만 남았다. 최종 성패는 아직 알 수 없다. 공정위가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 있고, 해외에서 LNG선 세계시장 수주잔량의 57%를 차지하는 대우조선과 현중의 결합을 독점으로 진단할 경우 부적격 판정이 날 수도 있다. 물론 준비를 잘하면 ‘운용의 묘’를 통해 성사될 수 있다.

[양승훈의 공론공작소]‘조선산업 구조조정’ 정부가 해야 할 일

생채기가 나고 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1월 말부터 지금까지 매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수·합병 절차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인수자를 미리 정해놓고 다른 인수 희망자를 찾는 방식부터 밀실협상의 결과로 해석한다. 노조는 인수·합병 이후 인적 구조조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거제 지역사회에도 매각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현중 노조는 물적 분할과 한국조선해양 본사의 서울 이전에 반대한다. 물적 분할 후 노조의 단체협상권은 승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조합원들은 인적 구조조정에 노출될 수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한국조선해양 본사 이전에 반대하며 삭발을 했다. 주총이 예정되어 있던 울산시 한마음회관은 용역과 조합원들의 충돌로 훼손됐다. 현중은 주총 당일 장소를 울산대 체육관으로 긴급 변경했고, 주총은 소액주주인 조합원들의 참여를 막은 채 진행됐다. 지역 방송은 용역들이 조합원들을 도발한 정황을 보도한다.

웃고 있는 자는 분명 현중이다. 물적 분할을 성사시킴으로써 3세 승계를 완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자금은 0원에 가깝다. 인수·합병에 성공할 경우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가 되며,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대, 기업의 강행 돌파. 많은 중앙 언론은 ‘강성 노조’의 반발을 보도한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3월8일 “조선산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금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조선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며 산업 구조조정으로서의 인수·합병을 강조한 바 있다. 나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찬성한다. 대우조선의 적합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한다. 산은이 대주주로 있으면서 발생했던 ‘대리인 문제’, 즉 책임경영이 되지 않았던 문제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합병이 꺼림칙한 지점은 두 가지 차원이다. 우선 이해당사자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협치의 부재다. 노조가 고용보장과 단체협상 승계에 대해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현중은 보장 원칙만 내세웠을 뿐, 노동자들의 불안을 달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를 내밀지 않고 있다. 조선해양기자재 업체들의 생존 문제도 심각하다. 대우조선과 현중의 기자재 업체 중 4분의 3 정도가 겹쳐 물량이 보장된다고 가삼현 사장이 밝혔지만, 나머지 4분의 1만 위기에 처해도 부산·울산·경남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남도가 기자재 생태계 문제 등을 논의할 조선산업 상생발전협의체를 4월에 제안했지만 답보 상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산은과 정부, 지방정부의 역할 부재다. 산은은 국가가 진행하는 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다. 산은이 부실 기업의 대주주가 되었던 것은 책임감 있는 회생을 위해서였다. 한국조선해양 설립 후 산은 보통주 지분율은 7%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1조2500억원의 주식은 배당만 받고 의결권은 없는 우선주다. 현중이 알아서 할 것이니 손을 떼겠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엔 사전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존하고 키울 것인지와, 인수·합병이 어떤 구조조정 효과를 내는지 산은의 구체적인 설명이 들리지 않는다. 주무부처들도 산은에 모든 역할을 넘기고 특별한 대응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경남도 역시 의견 청취만 하고 별다른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영웅 요기 베라가 말한 것처럼 이번 인수·합병과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관문이 남아 있다. 과정이 좋지 않으면 결과가 의미 없을 수 있는 게임이다. 문재인 정부가 산업정책의 첫 번째로 제기한 ‘빅딜’이기에 정치적 의미도 작지 않다. 전통적 제조업의 위기는 부산·울산·경남에 집중되어 있고, 국가의 역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부산·울산·경남 지방정부의 주도로 노·사·정과 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고용과 기자재 생태계를 지켜내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긴요하다. 연구·개발과 엔지니어링 기능을 한국조선해양 본사로 이전하는 문제도 부산·울산·경남에서 우수한 공학인력을 어떻게 키워내고 유치할 것인지까지 고려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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