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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본법 제정이 ‘적극행정 첫걸음’

2019.06.10 20:45 입력 2019.06.10 20:48 수정
김중권 |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종합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인사혁신처가 ‘적극행정운영규정’ 제정안(대통령령)을 지난달 21일부터 입법예고하고 있다.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절차 위반과 예산 낭비 등을 한 경우 징계책임을 감면하는 제도다. 감사원이 감사원 훈령으로 운영규정을 마련하여 2009년 1월부터 시행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하지만 10년간의 제도 운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정의 소극적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으며, 국민 일반은 적극행정으로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마냥 도돌이표 국정과제의 하나인 셈이다.

[기고]행정기본법 제정이 ‘적극행정 첫걸음’

사후면책에 초점을 맞추는 이상, 그 성과는 국소적일 수밖에 없다. 행정이 터 잡은 현행 법제의 현주소를 도외시하고, 공무원의 개인적 행태의 차원에서만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민의 불만 대상이 되는 소극행정 및 방어행정을 낳는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 역시 법치국가 원리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적극행정이라 하여 초법적 행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196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 모델에 멈춘 현행 행정법제가 소극행정의 근원이다. 국민의 사적 영역과 관련이 있는 인·허가와 같은 대민 법제는 일본식 관헌국가적 전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가령 독일 약사법은 의약품 제조 허가 신청에 대해 행정청은 일정한 사유에 해당할 경우에만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반면, 우리 약사법은 의약품 제조자가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어서, 허가 여부가 행정청의 의무인지 재량인지 불분명하다. 국민은 인·허가와 같은 행정처분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관헌국가적 전통에서 국민을 공권력 행사의 객체로 보는 그릇된 사고를 제도적으로 타파하지 않고선 적극행정은 구두선에 그칠 수 있다.

이런 대민 행정법제의 구조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행정법제를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기본 매뉴얼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른 법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는 이상, 일선 공무원이 법집행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이 법적 매뉴얼에 의거하여 법집행의 위법성을 강하게 질타하기가 쉽지 않은 이상, 일선 공무원이 국민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다. 또한 법집행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없기에, 국민 역시 자신의 희망과 다른 법집행의 결과에 대해 애써 수긍하지 않으려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관헌국가적 전통에 기반한 행정법제가 여전하고 바른 법집행을 구현하는 기본 매뉴얼도 없는 상황이어서, 국민 친화적인 적극행정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법제도의 바른 운영과 적극행정을 가능케 하는 기초 토대의 마련보다는 공무원 개인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언제까지 적극적인 법집행이 공무원 개인의 품성에 좌우되게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독일 연방정부의 2016년 규제개혁 보고서 서문에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안정과 경제적 힘의 바탕은 훌륭한 법적 틀과 신뢰할 수 있고 효율적인 행정이라고 하였다. 독일은 다른 유럽국가보다 앞서 1976년 행정작용 전반의 매뉴얼을 규정한 행정기본법으로서의 의의를 갖는 독일 행정절차법을 마련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 이후에 행정의 간소화와 규제개혁을 과감하게 실천해 유럽연합을 선도하고 있다. 행정작용의 기본 매뉴얼에 해당하는 행정기본법의 제정이 적극행정을 위한 진정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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