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너의 터전을 쓰레기로 가득 채워서

2019.07.28 21:37 입력 2019.07.28 21:38 수정

“내가 받은 택배가 너에게는 독배”…쓰레기 주제 시 쓰기

“동물의 고통을 줄이려 뭘 할까 고민하는 데서 변화 시작”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쓰레기와 동물과 시’ 백일장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입구에서 등록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행사장에 벌여놓은 쓰레기마다 붙어 있는 다섯 자리 번호를 태블릿PC에 입력해서 각자의 시 키워드를 받았다. 행사장 곳곳에선 동물탈을 쓴 활동가와 시민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마다 동물과 쓰레기를 주제로 시를 썼다(위 사진부터).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쓰레기와 동물과 시’ 백일장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입구에서 등록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행사장에 벌여놓은 쓰레기마다 붙어 있는 다섯 자리 번호를 태블릿PC에 입력해서 각자의 시 키워드를 받았다. 행사장 곳곳에선 동물탈을 쓴 활동가와 시민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마다 동물과 쓰레기를 주제로 시를 썼다(위 사진부터).

면도날, 생수병, 저울, 신문지, 비닐봉지, 소형 택배상자, 두부용기, 유리잼병, 노트북컴퓨터, 저울, 수세미, 비닐랩…. 한눈에 헤아릴 수 없는 일상용품들이 책상 가득 놓였다. 쓸모가 사라져 버려지고, 뭉뚱그려서 ‘쓰레기’로 불리던 것들이다. 사용할 때는 의식을 못했지만,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자 생활 속에서 쓰고 버리는 물건들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에는 바다동물 분장을 한 사람 등 100여명의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7월 한 달 동안 진행된 ‘쓰레기와 동물과 시’(쓰동시) 프로젝트의 마지막 행사인 백일장 문화행사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시민들은 물개, 고래, 바닷새, 바다거북 등 네 팀으로 나뉘어 각종 쓰레기를 주제로 시를 썼다. 이면지로 만든 팔찌에 적힌 세 자리 숫자가 이날 동물들의 고통에 접속하는 참가번호였다.

‘뽁뽁이 22200’. 행사장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골라 태블릿PC에 다섯 자리 번호를 입력하자 ‘생각없는, 슬퍼하기, 택배, 호들갑’이라는 각자의 시쓰기 키워드가 나왔다.

“내가 받은 택배가 너에게는 독배/ 내가 받은 즐거움이 너에게는 괴로움/ 내가 버린 쓰레기가 너에게는 먹거리/ 괴로운 너를 보는 내가 이젠 독배”(택배와 독배), “그렇구나 없어도 괜찮구나”(빨대). 참가자들은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참가자처럼 멋진 라임을 선보인 글부터 광고카피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까지 저마다 동물과 쓰레기를 주제로 다양한 ‘시’를 썼다.

송파에서 온 김서연양(15)은 지난주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필리핀 보라카이섬의 추억을 글로 옮겼다. “바다는 언니 가게에 붉은 노을을 잔뜩 주었다/ 우유크림마냥 부서지는 파도를 창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바다가 지금은 쓰레기를 들인다 … 해변에서 놀고 온 어린이 손님의 손에는/ 조개껍질 대신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이 쥐였다/ 어떻게 바다에 쓰레기를 버려./ 그러게, 언니. 다들 예쁜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그렇게 좋아하면서). 김양은 “섬에 관광객 출입을 막고 쓰레기를 치웠다는데도 여전히 모래에 박혀 있는 플라스틱을 보며 충격 받았다”고 했다.

<b>거북이 몸 안이 엉망인 건 바깥도 엉망이기 때문이다</b>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지대’(쓰레기섬)를 멀리서부터 접근하며 촬영한 사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모이는 이 해역의 크기는 한국 땅의 14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왼쪽 사진). 죽은 거북이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하나 분류해놓은 모습이다(오른쪽). 이처럼 동물들은 서식지의 모습을 몸으로 그대로 표현한다. 쓰레기와 동물과 시 제공

거북이 몸 안이 엉망인 건 바깥도 엉망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지대’(쓰레기섬)를 멀리서부터 접근하며 촬영한 사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모이는 이 해역의 크기는 한국 땅의 14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왼쪽 사진). 죽은 거북이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하나 분류해놓은 모습이다(오른쪽). 이처럼 동물들은 서식지의 모습을 몸으로 그대로 표현한다. 쓰레기와 동물과 시 제공

쓰동시 프로젝트의 시작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코에 빨대가 박힌 바다거북을 구조하는 영상이었다. 집게로 빼낸 12㎝ 길이의 그 빨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던 플라스틱 빨대였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동물의 삶이란 지구의 자원을 선택적으로 찾고 모아서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며 “동물은 서식지의 함축적 표현”이라고 말했다. 동물들은 저마다 살고 있는 터전이 응축된 “생태적 시”라는 것이다.

함축적인 언어로 쓰는 시처럼 동물들에게는 자신이 사는 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동물 몸속에 쓰레기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쓰레기로 가득 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쓰고, 강연을 듣는 동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거북이 몸 안이 엉망인 것은 바깥도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날 참가자들이 공유한 생각이다.

시쓰기 최고상인 ‘쓰동시상’은 고양이와 쓰레기를 주제로 쓴 ‘고양이별’(김이연)이 받았다. “… 오늘도 나는 허기가 지면 냄새가 나는 그 주머니들을 뒤지고 뜯어야 해/ 내 아기가 고양이별로 갔다는데/ 일곱 빛깔 다리가 아름답다는데 나도 아직 보지 못해 모르겠어/ 우리는 여기에 살아/ 여기가 우리의 별이야.”

심사평을 맡은 김탁환 작가는 “참가자들이 쓴 시들은 대부분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체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면서 “인간이 이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공감으로부터 시작해 거기서 한 발 더 내딛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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