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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도로 끌려간 6세 금복은 뙤약볕 아래서 카사바를 심었다

2019.08.01 06:00 입력 2019.08.01 07:15 수정

정혜경 박사, 일제강점기 14세 미만 아동 강제노동 사례 첫 공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숙소에 도착한 조선 소녀들.(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 원하는 모임 제공.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소장)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숙소에 도착한 조선 소녀들.(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 원하는 모임 제공.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소장)

태평양 섬 등서 중노동 436명 분석
한반도 내 방적공장만 296명 달해
10세 미만 59명…최연소는 ‘5세’
반인도적 불법행위 대표적 증거로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금복은 부모, 여동생과 함께 1939년 중서부 태평양(당시 남양군도) 티니언섬으로 떠났다. 몇 월인지는 모르고 일본에서 한두 달 머물렀던 것만 기억난다. 금복은 6세 때부터 일본 척식회사인 남양흥발(南洋興發)이 운영하는 ‘아기깡(Aguiguan)’ 농장에서 일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카사바(고구마처럼 생긴 구황식물의 일종)를 심었다. 일을 했지만 제대로 급여를 받은 기억은 없다. 일본인들에게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1933년 12월생 인심은 1943년 6월 인천 동양방적으로 동원됐다. 마을 이장과 면서기가 “지역마다 할당된 인원이 있다”며 가야 한다고 했다. 인심 할머니는 “어린 딸을 보낼 수 없다며 울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해방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집으로 가라는데 방법을 몰라 공장에 가만히 있었다. 외삼촌이 데리러 와서야 공장을 나갈 수 있었다”고 인심 할머니는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징용에 끌려간 14세 미만 아동들의 실태를 분석한 연구가 처음 공개됐다. 남양군도, 일본, 한반도 일대 등으로 동원된 아동들은 성폭력, 배고픔 등에 시달렸다. 최연소 징용자는 중국 봉천성 남만방적에서 5세 때부터 일한 연임이었다.

31일 공개된 피해 사례는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정혜경 박사가 일제강점기 14세 미만 아동 436명을 분석한 결과다. 공개된 내용들은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강제동원으로 판단한 것 중 일부다. 위원회는 22만6583건의 징용피해 신고를 받아 21만8639건을 강제동원으로 판정했다. 위원회 조사과장이던 정 박사는 자신이 담당한 피해 사례 1087건 중 아동을 추려냈다.

당시 아동들은 주로 방적공장에 동원됐다. 정 박사가 분석한 사례 중 한반도 내 방적공장에 동원된 아동만 296명에 달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13세고, 59명이 10세 미만이다. 강제노동으로 사망한 최연소자는 부산 방적공장에서 일한 10세 소녀 김순랑양이다.

일본은 1919년 만들어진 국제노동기구(ILO)의 원가맹국이었다. 당시 일본이 비준했던 ILO 협약들에는 ‘14세 미만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1923년 개정된 일본 공장법에도 반영됐다. 하지만 일본은 각종 예외조항과 편법을 만들어 한반도 전체에서 아동을 징용했다. ILO 협약 위반을 피하기 위해 ‘12세 이상 아동이 소학교(초등학교) 교과를 수료한 경우 노동 허용’ ‘이미 사용 중인 12세 이상 14세 미만 아동에 관해서는 적용 배제’라는 예외규정을 만들었다. 또 일본 공장법은 식민지 조선에 적용하지 않았다. 공장법을 시행할 경우 조선의 산업 발달을 저해한다는 논리였다.

정 박사는 “성인 남성만 징용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아동, 여성 징용도 많았다”며 “아동 사망자를 불효자라고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던 당시 정서를 고려하면 아동 피해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을 것”이라고 했다. 정 박사는 아동 징용피해자나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나 들은 이야기들을 엮어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이라는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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