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 여행 어렵도록 하겠다’는 미국

2019.08.06 20:48 입력 2019.08.06 20:49 수정

2011년 3월 이후 한 번이라도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앞으로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이 기간 중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을 다녀온 3만7000여명은 ‘최대 90일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별도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1년 3월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여행객이 ESTA를 통해 미국에 무비자 입국하는 것을 이날부터 금지한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ESTA는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전자여행승인제도’인데 한국은 2008년 VWP 가입국이 되면서 지금까지는 온라인으로 ESTA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테러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조치라고 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등 7개국을 방문·체류했다면 ESTA 발급이 불가능한데, 여기에 북한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 국민 중 북한 방문 경험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남북경협을 옥죄려는 것’이라는 일각의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시점인 만큼 ‘하필 왜 이때’라는 찜찜함은 남는다. 이번 조치가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20개월여 만에 나온 것은 미국 관련부처의 실무준비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꼭 이 시점을 택했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38개국에 똑같이 적용된다지만 관련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에 가기 어려워지도록 하겠다’는 이 조치가 앞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런 중대한 조치가 시행 당일에야 발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방북 경험자 중 금명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은 급히 서류를 꾸며 제출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영어 인터뷰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긴급할 경우 대사관의 ‘긴급예약신청’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지만 방문 예정일 이전에 비자를 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이런 방침을 한국에 알려온 것은 약 한 달 전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면 각별히 보안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3만명이 넘는 시민의 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끼칠 행정적 변화라면 정부가 사전예고하고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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