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한일협정 ‘개인 청구권 소멸’은 국제법상 무효”

2019.08.08 21:36 입력 2019.08.08 21:46 수정

신우정 판사 ‘국제적 강행규범 시각서 본 강제징용…’ 논문

일 정부 ‘일괄타결’ 주장하지만 피해자 동의 안 받아 효력 없어

반인도범죄, 개인이 손배 청구권 가져…ICJ로 가도 승산 있어

한·일 정부가 1965년 청구권협정 대상에 강제징용 피해자들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시켜 소멸되는 것으로 합의했더라도 그 합의는 ‘무효’라는 현직 부장판사의 주장이 나왔다. 국가가 반인도범죄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마음대로 소멸시킬 수 없고, 피해자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법인을 상대로 청구할 수 있다는 국제법 법리를 검토해 내린 결론이다.

신우정 청주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6월 학술지 서울국제법연구에 ‘국제적 강행규범의 시각에서 본 강제징용 청구권의 소권 소멸 여부’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일본 정부 주장의 근거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협정 문구다. 이른바 ‘일괄타결’이다. 구 유고 국제형사재판소에 근무한 신 부장판사는 ‘국제적 강행규범’을 토대로 일본 정부 주장을 분석했다. 국제적 강행규범이란 인간의 존엄성 같은 인류사회의 근본 가치를 보호하려는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을 말한다. 신 부장판사는 설령 일본 정부 주장대로 한·일 정부가 일괄타결 방식의 청구권협정을 맺어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시키기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국제법상 무효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신 부장판사는 먼저 강제징용이 국제재판소들이나 학설에서 국제적 강행규범으로 인정하는 노예 금지와 반인도범죄 금지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어 주목한 문서는 유엔이 2005년 만든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 및 가이드라인’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 국가나 법인, 개인 등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는다는 법리가 명시됐다.

신 부장판사는 “개인이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 위반을 이유로 상대방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 법인 등을 상대로도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는다는 법리가 국제사회에서 지지·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인권법의 급진적 발전과 유엔 역할의 중요성 확대 등에 따라 현재 국제법은 국가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직접 개인에게 권리, 의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국제적 강행규범과 청구권협정 같은 조약이 충돌하는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조약을 무시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빈협약은 국제적 강행규범과 조약이 충돌하면 조약이 무효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신 부장판사는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을 제시했다. 신 부장판사는 “빈협약은 국제적 강행규범의 개념을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확인한 것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비롯한 여러 국제재판소들도 현재 이 개념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강제징용 사건이 ICJ로 가는 상황을 우려한다. 신 부장판사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다고 봤다. 신 부장판사는 “이 사건이 혹시 ICJ에 가더라도, ICJ 또한 국제적 강행규범이나 개인의 국제법 주체성에 어긋나는 소권 소멸 합의의 문제점을 쉽사리 외면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또 “일괄타결 협정이 국가들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이해될 수 있고, 그러한 관행이 국제사회에서 허용돼 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협정 방식은 개인을 국가의 부속물 내지 객체로만 취급한 전통 국제법 질서의 산물”이라며 “허용돼 왔더라도 그러한 관행이 불법이라면 여전히 불법이지 적법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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