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사 집배원 자리 메운 인력마저 돌연 사망

2019.08.28 21:20 입력 2019.08.28 21:23 수정

가평우체국 집배원 2년여 만에 또 과로사 의심…관할 구역 넓어 ‘돌연사’ 악몽

올 들어 집배원 10명 사망…‘죽음의 우체국’ 막을 근본 대책 요구 목소리 커져

경기 가평우체국 상시계약직(무기계약직) 집배원 ㄱ씨(44)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ㄱ씨는 2년 전 이 우체국에서 돌연사한 집배원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충원된 인력이었다. 돌연사한 집배원의 일을 이어받은 집배원까지 돌연사한 셈이다. 올 들어 사망한 집배원은 벌써 10명째다.

28일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9시쯤 가평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 ㄱ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까지 정상적으로 근무했던 ㄱ씨의 출근이 늦어지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동료의 신고로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ㄱ씨에 대한 1차 부검 소견은 심장비대에 의한 사망이다. 정상인의 경우 심장 무게가 340~350g가량인데 ㄱ씨의 심장은 100g 정도 더 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비대증은 고혈압이나 과도한 운동 등으로 유발될 수 있다. 가평경찰서 관계자는 “최종 부검 결과 등을 보고 격무 등이 사망 원인이 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집배원 죽음의 전형이다. 오토바이 등으로 집집마다 우편을 배달하는 집배원의 장시간·고강도 노동은 신체적·정신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2016년 임금노동자 전체의 평균 노동시간인 2052시간보다 30% 이상 길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총 166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는데 주요 사망 원인으로는 암·뇌심혈관계질환·교통사고·자살 등이 꼽혔다.

특히 ㄱ씨가 일한 가평우체국은 2년 전에도 집배원 돌연사가 잇달아 발생했다. 2016년 12월31일 집배원 ㄴ씨(49)가 택배 배달 중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반년 뒤인 2017년 6월8일에는 집배원 ㄷ씨(57)가 새벽 일찌감치 출근해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다 쓰러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ㄱ씨가 가평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ㄱ씨는 ㄷ씨가 숨을 거둔 지 한 달 만인 2017년 7월 가평우체국의 무기계약 집배원 채용 절차에 합격했다. 하지만 불과 2년1개월 만에 그 역시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

가평우체국은 넓은 관할 구역이 문제로 지적돼온 곳이다. 배달물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관할 구역이 워낙 넓은 탓에 집배원 이동거리가 길어져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년 전 집배원이 연달아 사망했을 때에도 동료 집배원들은 입을 모아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평경찰서는 ㄱ씨 사망 원인이 장시간 노동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동료 증언 등을 종합한 결과, 가평우체국 집배원들은 매일 오전 8시20분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 52시간제를 준수한 셈이다. 가평우체국 노조 관계자 역시 “별도의 인력 충원은 없었지만 주 52시간제는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지방우정청 관계자는 “가평우체국 집배원은 2017년 32명에서 올해 35명으로 증원됐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집배원 충원 계획과 속도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배원의 잇단 사망 이후 우정사업본부 노사가 충원 계획을 내놨지만 1인 가구와 택배사용량 증가 추세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만성 적자인 우편사업으로 인해 우정사업본부는 인력 충원을 위한 인건비 마련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7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우체국 금융사업의 이익금을 우편사업의 손실 보전뿐 아니라 인력 충원 목적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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