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예산 150조 썼다는데…공공사이트 임신 준비 정보 찾다 ‘열불’

2019.09.15 21:28 입력 2019.09.15 21:30 수정

기관들 사이트 난립, 산부인과 정보도 찾기 힘들고 정부 사업만 열거

도움 되는 정보는 ‘맘카페’ 의존…혼재된 의견들 무작정 신뢰 어려워

저출산 예산 150조 썼다는데…공공사이트 임신 준비 정보 찾다 ‘열불’

“산전 검사? 배란 테스트기 구입? 대체 뭐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거지?”

올해 결혼한 김모씨(32)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임신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임신부 나이 만 35세부터 출산 고위험군이라는데, 당장 임신을 하지는 않더라도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임신 전 어떤 검사를 받으면 좋을지, 산부인과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등 기본 지식부터 필요했다. 김씨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믿을 만한 임신 준비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는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매년 바뀌는 저출산 관련 서비스를 가장 잘 정리해놨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임신 준비’ ‘분만 가능 산부인과’ 등 키워드로 여러 번 검색해 겨우겨우 찾아낸 정부 사이트들을 살펴보던 김씨는 말 그대로 ‘멘붕’ 상태가 됐다. 지자체, 부처별로 무수히 많은 사이트가 있었지만 정부 사업만 열거해놓은 데다가 대부분은 이미 임신을 했거나 아이를 기르는 가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씨는 “검진뿐 아니라 분만까지 하는 산부인과가 집 근처에 있는지 찾는 데는 맘카페가 훨씬 유용했다”며 “저출산 때문에 난리라는데 임신 준비에 대한 안내조차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 정부 사이트들을 보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 ‘상식 수준’ 지식에 ‘훈계조’ 설명

김씨가 검색을 충분히 하지 않아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 기자가 직접 찾아봤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 저출산 유관 기관들에 ‘임신 준비를 시작하려는 기혼자’가 참고할 만한 정부와 공공기관 사이트를 문의했다. 관련 기관들은 참고할 만한 첫 번째 사이트로 복지부가 운영하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아이사랑 포털)을 꼽았다. 메인 페이지에 떠 있는 ‘임신’ 카테고리에서 ‘계획임신’을 클릭해 들어갔다. ‘임신 전 상담 및 검사’ ‘예방접종’ ‘생활습관’ ‘영양·식습관’ ‘운동(체중, 비만)’ ‘스트레스 관리’ ‘여성질환별 관리’ 등 세부 항목으로 나눠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스크롤을 수차례 내리며 10여쪽에 달하는 긴 글을 읽었으나, 다 읽고 나서도 어디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좋은 생활습관과 영양지식을 갖추고,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스트레스 관리를 하라는 원론적인 설명이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서울시 각 자치구의 임신·출산 관련 정보를 다 모아놓은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에 들어가서도 막상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가장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자치구나 읍·면·동 보건소 사이트였다. 하지만 통합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각 자치구에서 하고 있는 ‘혼인 전 건강검진’ ‘남녀 건강출산 프로그램’의 항목들을 열거해 안내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었다.

■ 산부인과 정보, 찾기 어렵고 부정확

제대로 된 사이트를 찾기 어렵다면, 산부인과를 방문해 의사의 자문을 직접 구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 사이트를 통해 분만 가능 산부인과와 의료진 정보를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 검색해봤다. 임신을 할 의사가 있는 부부의 경우는 분만 가능 산부인과에서 미리 정기검진을 받는 것이 좋기 때문에 예비 부모들은 그냥 산부인과가 아니라 분만 가능 산부인과를 선호한다.

병원·약국 정보를 관리하는 심평원에 관련 내용을 문의하니 “심평원 홈페이지의 ‘병원·약국찾기’에서 세부 조건별로 검색해 분만 가능 산부인과를 찾을 수 있다”고 답을 줬다. 직접 찾아봤다. 서울의 경우 지역구 내에 있는 산부인과가 몇 곳인지 찾아볼 수 있었다. 개별 병원 이름을 클릭하면 전문의가 몇 명인지, 분만실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여러 차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겨우 찾은 정보는 부정확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산부인과는 지난 5월 분만 의료 서비스를 중단했는데, 여전히 분만실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심평원 측에 물으니 “병원에서 변동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진신고한 데이터를 반영하기 때문에 시차가 있다”고 답했다.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사이트에서는 ‘우리동네 병원찾기’ 항목에서 ‘분만 가능한 병원’을 찾을 수 있게 해뒀다. 하지만 등본 주소지인 자치구 내의 분만 가능 산부인과로만 한정해뒀다. 직장 가까이 있는 산부인과가 어디인지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하는 공공데이터를 신청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누군가 ‘전국 분만 가능 산부인과 의원·병원 데이터, 분만실 유무와 진료시간, 업체명 등 데이터를 원한다’고 올린 글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문의한 결과 분만이 가능한 기관에 대해서는 공개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였다.

■ 실질적인 임신 준비 정보 제공 필요

여기저기 헤매다 다다른 곳은 결국 ‘맘카페’다. “임신 준비 무엇부터 하셨어요” “**지역 근처에 분만 가능 산부인과 어디인가요” “계획임신하려면 산부인과 가서 날부터 받을까요, 배란 테스트기 사용해서 시도부터 할까요” 등 각종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이미 출산을 경험했거나 준비하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십여개의 글을 읽으니 임신 준비를 대략 이렇게 하는구나 감이 왔다.

맘카페에서 구하던 답을 어느 정도 얻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지난 10년간 15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수십개의 정부·지자체 사이트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막상 예비 임신부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은 문제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백운희 공동대표는 “정부 저출산 관련 서비스에 종종 자문을 하면서 느낀 것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 정말 뭘 필요로 하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고 ‘고정된 정상가족’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맘카페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많지만, 어디까지나 사적인 정보라는 한계도 있다”며 “분만 가능 산부인과 같은 공공정보야말로 정부에서 제대로 제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정책과 관련해 정부는 사업을 새로 만들고 또 쌓고 하는 행태를 항상 반복해왔는데, 출산과 양육을 가로막는 본질적인 요소들은 별로 해소가 안됐다”며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대하는 시각을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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