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과로’는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요된 자해’다

2019.09.23 06:00 입력 2019.09.23 06:01 수정
서중석

과로사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9일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서울대학교 공학관 휴게실에서 숨진 60대 청소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중앙도서관 터널에 마련된 추모 공간. 뒤늦게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고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의 추모글들이 벽면에 빼곡히 붙어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9일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서울대학교 공학관 휴게실에서 숨진 60대 청소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중앙도서관 터널에 마련된 추모 공간. 뒤늦게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고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의 추모글들이 벽면에 빼곡히 붙어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올해 6월 40대 후반 남성이 주거지 화장실 바닥에 엎드린 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극한직업이라고 알려진 집배원이었고, 금년 상반기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집배원 중 9번째 희생자였다. 부검 당시 첨부된 서류를 검토해 보니 그는 통상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과로상태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로 진단했고, 업무상 질병의 가능성을 검토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서울의 낮 기온이 35도였던 8월 초에는 서울대학교 제2 공학관 지하 1층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60대 후반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몇 년 전 심장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었으며, 사건 당일 휴식시간에 쉬러 갔다가 숨졌다고 한다. 그가 숨진 곳은 한 평 남짓하고, 더위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지만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었으며, 공기는 탁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매우 열악한 장소라고 보도됐다. 그의 죽음은 병사로 처리됐다. 그러나 나는 그의 죽음이 비록 병사라 하더라도 부적합한 작업환경, 육체적으로 과중한 업무 부담 등이 유발요인이 돼 급사했기 때문에 법의학적 측면에서는 업무상 재해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기치 못한 ‘내인성 급사’ 뒤엔 열악한 근무환경·스트레스·과음…
만성적 과로의 기준은 발병 전 3일 이상 일상 업무의 30% 초과
회사의 무성의와 외면으로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유족들은 망자의 가족에 대한 헌신을 알고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법의학적으로 ‘내인성 급사’란 평소 건강하게 보였으나 돌연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망자에 대하여 부검을 통해 사인을 심장질환 등 내부 질환으로 진단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수사기록을 확인해 보거나 유족 진술을 청취해 보면 이들의 죽음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포함한 과음, 과식, 과로, 성행위, 운동, 견디기 어려운 작업환경 등과 같은 유발요인(소위 유인)이 관련돼 있다. 정상인이라면 이런 유인들은 대수롭지 않아 특별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지만, 기존에 앓고 있는 질환이 있다면 이를 급격히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을 시작하면 우리 몸은 혈압을 높이고 심장박동과 심박출량을 늘려 운동에 적응하려 한다. 즉 심장은 안정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므로 산소 요구가 늘어나는데 정상인은 적절히 잘 적응하여 문제가 없다. 그러나 관상동맥에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은 심장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되지 않으면서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심장은 마침내 그 기능을 급격히 상실하고 심부전 상태에 빠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내인성 급사는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보다는 무언가를 하는 도중 발생하는데, 통상 성행위 중 갑자기 사망하면 복상사라고 하고, 과로 후 사망하면 ‘과로사’라고 한다. 하지만 법의학적으로는 부검을 통해 심장질환이나 뇌출혈과 같은 질병만을 진단할 뿐이다.

이처럼 ‘과로사’는 법의학적 진단명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필자가 법의학을 시작할 무렵인 1991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과로사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중요시 여겼던 시대라서 과로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반면,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소위 ‘가로시(Karoshi·과로사)’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1993년에 이르러서 노동 강도가 지나쳐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사례를 과로사라고 인정하면서 법의학 분야에서도 관심을 두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업무 수행 중 심장질환(심근경색, 협심증) 혹은 뇌혈관질환(지주막하출혈을 포함한 뇌출혈, 뇌경색, 고혈압성 뇌증 등)이 발병하거나 이로 인해 사망할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업무 수행 중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현저하게 생리적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작업환경에 오래 노출되었거나, 업무강도가 만성적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할 수 있는 경우는 인과관계를 따져서 업무상 재해로 보고 있다.

특히 과로사를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로상태였느냐의 판단인데, 만성적 과로의 절대적 기준은 ‘노동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많게 지속되었거나, 발병 전 1주일 이내에 업무량, 시간, 강도, 책임 및 작업환경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이다.

그동안의 부검 사례들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업무 수행 중 심근경색증과 같은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앞서 언급한 과로 기준에 부합하면 관계기관은 별 이견 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

1990년대 후반 여름, 수도권 경찰서의 형사과에서 초급 간부로 근무하던 50대 중반 경찰관이 업무 중 급사했다. 생전에 그는 해당 경찰서 담당 지역에서 발생한 변사사건 부검을 도맡아 의뢰하던 감식담당 수사관이었다.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올 때마다 나의 연구실에 들러 수사 뒷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감정서를 신속하게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는 사망하기 이틀 전, 수중 시신 부검을 의뢰하기 위해 국과수를 다녀갔고 잠시였지만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사무실에서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세상과 작별했다. 부검실에서 시신으로 마주한 그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부검 내내 나의 마음은 몹시 착잡하고 무거웠다. 부검 결과는 급성 심근경색증이었다. 동료 수사관 진술에 의하면 여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많은 변사사건이 발생했고, 특히 일주일 전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힘들게 근무하다 급사했다고 한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관계기관으로부터 그가 과로사했는지에 대한 질의가 있었고,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으로 답변서를 작성했다. 동료 경찰관들 전언에 따르면 유족들은 답변서를 바탕으로 과로사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질환으로 급사한 경우는 관계기관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고, 특히 퇴근 후 비교적 드문 질환으로 사망하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2000년대 중반 7월 중순 ○○산업 생산부에서 근무하던 정규직 노동자인 30대 초반 남성이 집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사망하기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 9시경 퇴근했다. 귀가 후 모친에게 ‘너무 피곤하여 하루 월차를 냈다’고 말한 뒤 방에서 잠을 잤다. 같은 날 오후 8시경 모친은 아들이 아직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자 깨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아들이 사망한 날 아침 모친은 밥상을 차려 놓고 출근했다. 모친은 일을 마치고 귀가해 아침에 차려 놓은 밥상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들이 똑바로 누운 상태로 사망해 있었다.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검안의는 망인의 사인을 ‘불명’이라고 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실에서 만난 변사자의 전신상태는 양호했다. 외표 검사상 특별한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내부 검사에서 급사의 소견과 함께 심장이 445g으로 크고, 무거우며, 흐물거리는 상태에서 심방 및 심실이 확장된 소견을 보였다. 폐는 심한 부종 및 울혈 소견을 보여주었다. 현미경 검사에서는 심근세포가 비후 혹은 변형된 소견을 확인했다. 나는 심장병리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사인을 확장 심근병증에 의한 급성심장사라고 통보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 7일, 밀려드는 택배 업무를 수행하던 우체국 집배원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세워진 집배원의 오토바이. 앞쪽 바구니에는 점심식사로 보이는 포장된 김밥 한 줄과 우유팩이 놓여 있다.  정진호 기자

추석을 앞둔 지난 7일, 밀려드는 택배 업무를 수행하던 우체국 집배원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세워진 집배원의 오토바이. 앞쪽 바구니에는 점심식사로 보이는 포장된 김밥 한 줄과 우유팩이 놓여 있다. 정진호 기자

법의 병리학적으로 심장질환 때문에 급사한 경우 80% 이상이 심근경색증과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이 원인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심근병증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확장 심근병증은 심근 이상에 의해 발병하는 심근병증 중에서 심실이 확장돼 심장 수축기능 이상을 보이는 질병을 말한다.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심근염이나 알코올, 항암제 등과 같은 약물이나 독성물질, 내분비 질환, 임신 및 분만 등과도 관련돼 발생한다. 심근병증은 대개 서서히 심부전증이 발생하다 급격히 악화해 회복되지 않는 경과를 보이지만, 드물지 않게 심실 부정맥으로 급사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고, 심근 벽의 혈전이 떨어져 색전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사건의 경우 형사적으로는 쉽게 종결됐지만, 8개월 만에 망자가 과로사했는지에 대한 질의서를 받게 됐다. 유족들은 과로사를 주장하며 유족급여를 신청하였으나 사인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했다. 결국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감정인이던 나에게 질의서를 보내왔다. 첨부된 조사 내용은 그의 고된 업무환경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동생들 학업과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특히 망인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2시간 정도를 근무했고, 업무강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된 현장이었다. 더운 날씨 속에 가열로 앞에서 근무해야 하는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은 육체적으로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사망 전 2~3주는 연속적으로 야간근무를 했다. 나는 추가 답변서를 통해 심근병증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주어진 자료에 근거해 열악한 작업환경과 과로가 유인으로 작용된 업무상 재해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2017년 국과수의 통계 발표에 의하면 총 부검 건 8777례 중 내인성 급사로 사망한 사람은 3679명으로 41.9%였다. 이 중 내인사의 가장 흔한 사인은 심장질환(1790명·48.7%)이었고, 그다음으로 혈관 및 뇌혈관질환(697명·18.9%)이었다. 한편 심장질환은 관상동맥경화증에 의한 허혈성 심장질환(695명·38.8%)이 제일 많았고, 심근병증과 심근염을 포함하는 심근질환(488명·27.3%)도 상당수였다. 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자 697명 중에는 뇌혈관질환(418명·60.0%)이 가장 많았고, 대동맥질환(109명·15.6%)이 뒤를 이었다. 또 발생빈도는 낮지만 폐질환, 혈액질환 등도 보고됐다.

따라서 법의학적으로는 다양한 질환들이 과로사 등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 다행히도 과거에는 일부 질병에 국한해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최근에는 과로와 관련 있는 각종 질병에 의한 사망을 모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 간경화, 간암, 과로가 저항력 저하를 유발한 감염질환 등은 물론 심지어 사인 불명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와 인과관계가 성립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다. 즉 육체적 과로는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 상태에 있거나, 지속된 긴장 상황이 근로자에게 생리적 변화를 줄 수 있고, 앓고 있는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이별, 사인을 제대로 밝혀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노동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고인들은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다 돌연 예기치 못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과로사를 포함한 내인성 급사는 작별의 준비가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족들은 갑자기 맞이한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탱해온 망자가 돌연 사라짐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걸 부정한다.

유족들은 겨우 슬픔을 삭인 후 유족급여 등을 신청하기 위해 망자의 직장을 방문하면서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회사 측의 무성의한 대응도 문제지만 그동안 망자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는가를 알고는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나는 갑자기 사망한 변사자를 부검한 후에는 유족들에게 사인을 더 자세히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질병 원인과 병리학적 특징을 설명하여 유전적 성향이 있는 경우 검사를 통해 또 다른 슬픔을 막아 보기 위함이다. 둘째는, 그들의 가족이 불행한 운명의 결과 때문에 지속해서 불행한 일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어두운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한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이를 잘 설명해 과로가 유인이라면 유족급여 혹은 장례비 등을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이 글을 준비하는 도중인 지난 7일 추석을 앞두고 밀려드는 택배업무를 수행하던 우체국 집배원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라건대, 이제라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합리적으로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더는 안타까운 희생이 없는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 필자 서중석

[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침묵 속의 진실을 찾아서](16)‘과로’는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요된 자해’다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중앙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법의관으로 국과수에 들어간 뒤 법의학부 부장, 원장 등으로 25년여를 국과수에서 지냈다. 대한법의학회장·아시아법과학회장, 중앙대 의대 겸임교수, 경찰대 외래교수, 대전보건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장 및 성균관대 교수로 검안, 부검과 강의활동 등을 통해 법의학 발전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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