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 하청’ 죽음도 안전조치 차별의 그늘

2019.09.23 22:06 입력 2019.09.23 22:49 수정

정규직 작업 땐 이뤄진 조치 무시 ‘위험의 외주화’ 사고

표준작업지도서 유명무실…노조선 ‘재해 처벌법’ 촉구

지난 20일 발생한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죽음은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사고였다. 동일한 작업을 정규직 노동자가 수행했을 때는 안전조치를 위해 동원됐던 크레인이 해당 업무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외주화된 이후부터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크레인 비용 절감의 대가는 하청노동자의 ‘목숨값’이었다.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 16년간 일해 온 박모씨는 LPG 저장탱크 제작현장에서 탱크 압력 테스트를 한 뒤 임시로 설치한 18t가량의 기압헤드 절단 작업을 하던 중 기압헤드가 이탈·전도되면서 그 사이에 몸이 끼여 숨졌다.

23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사망한 박씨가 했던 기압헤드 분리작업의 표준작업지도서에는 절단된 헤드가 떨어져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덮치지 않도록 업무 시작 전 크레인으로 헤드를 고정하고 헤드 하부에는 받침대를 설치하는 등의 안전보호조치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작업 중 튕김·추락·낙하 등 위험요소 예방을 위한 안전감시자도 배치하라고 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박씨가 작업 중이었을 때 크레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에는 안전감시자 없이 박씨를 포함한 하청노동자 2명만 작업하고 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 이전 작업한 14개 탱크 모두 이번 사고와 마찬가지로 안전조치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던 표준작업지도서는 그나마 노조의 항의 끝에 뒤늦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현대중공업이 나이지리아 기업 당고테로부터 수주한 LPG 저장탱크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표준작업지도서도 없이 작업을 강행하다 노조가 이에 항의하자 지난 6월에야 지도서를 만들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가 프로젝트 시작 후 1년 가까이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취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작업은 원래 본사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오던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업 불황으로 현대중공업이 2015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지난해부터 하청노동자들이 작업을 맡았다. 김형균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정규직이 같은 작업을 할 때는 표준작업지도서에 작성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꿨던 일”이라며 “노조가 문제를 지적하자 지도서를 서류상으로만 만들어놓고 그것마저 지키지 않아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일 이전 1주일 동안 박씨가 속한 하청업체 일일작업계획서에는 노동자들의 확인 서명이 없다. 자신들이 해야 할 작업과 안전수칙 등에 대한 확인이 없었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현대중공업모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중장비 지원 업무를 이전했다. 노조는 자회사 업무도 여러 하청업체로 쪼개져 외주화되면서 위험이 크게 증가해 크고 작은 사고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하청업체의 경우 박씨가 했던 작업과 같은 안전조치를 위해 크레인을 사용하려면 자회사에 별도로 협조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원하는 원청과 자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이날 울산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해당 공사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작업을 강행했고 원청은 위험요소를 점검하는 시스템과 체계조차 갖추고 있지 못했다”며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