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생활임금

2019.09.30 20:56 입력 2019.09.30 20:57 수정

1994년 미국 볼티모어에선 기업이 시와 대규모 계약을 맺으려면 노동자에게 시간당 6.10달러의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4.25달러였다. 이른바 세계 최초의 ‘생활임금 조례’였다.

생활임금은 물가인상률과 주거·교육·교통·문화·의료비 등 가계생활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비를 보장해 주는 사회적 임금이다.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생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자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생활임금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볼티모어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조례가 통과되며 임금이 거의 50%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 노동조건 향상과 노동조합 강화에도 힘을 실었다. 생활임금 요구운동은 최저임금 인상논쟁으로도 이어졌고, 다른 도시, 나라로도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경기 부천시와 서울 노원·성북구에서 2013년 최초로 생활임금제가 도입됐다. 현재 243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부산 등 13개 광역단체와 70여개 기초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이다. 최근엔 내년도 생활임금이 속속 결정되며 ‘생활임금 1만원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전(1만50원), 충남(1만50원), 인천·경남(1만원), 경기(1만364원), 전남(1만380원) 등 광역단체 대부분과 충남 천안, 광주 북구, 인천 연수구 등 일부 기초단체들에서 내년도 생활임금이 1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년여간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들에 잠입취재해 <노동의 배신>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전일제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생활임금을 벌지 못하는 빈민들이 많다면, 이들은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처벌을 계속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한 달에 영화 한 편, 외식 한 번에 망설이고, 가족들과 치킨을 시켜 먹기 위해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생활은 ‘처벌’이다. 평균 소득 3만달러를 누리며 사는 대한민국의 보통 이웃들 사이에선 특히 그렇다. 공공에서 시작된 생활임금이 빠르게 확산되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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