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 경쟁 위해선 ‘영업비밀 보호’ 인식 달라져야

2019.10.08 21:07 입력 2019.10.08 21:08 수정
손승우 |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기업의 기술, 아이디어는 ‘특허’와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다. ‘특허’는 공개를 조건으로 독점적 권리를 주는 방식으로 보호한다. 영업비밀은 독점적 권리를 주지 않되 부정한 수단으로 영업비밀을 취득, 사용하는 자를 처벌하고 있다.

[기고]글로벌 경쟁 위해선 ‘영업비밀 보호’ 인식 달라져야

그런데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영업비밀에 대한 인식이 특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올해 2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발행한 ‘국가핵심기술의 법적 보호와 주요 쟁점’ 보고서를 보면, 국내 산업기술 유출은 해마다 20~30% 이상 늘고 있다.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연 50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기술유출에 대한 법의 관대함이다. 지난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 혐의로 입건된 2180명 중 기소에 이른 경우는 4%(89명)에 그쳤다. 2017년 말 기준 해당 법률 위반 사건의 1심 무죄율(27%)도 전체 형사사건 평균 무죄율(3%) 대비 9배였다. 2014~2016년 영업비밀 소송 관련 대법원 판례를 분석해봐도 법의 허점이 확인된다. 민사 기각, 형사 무죄 사유 중 절반 이상이 ‘비밀관리성’ 여부로 좌우됐다. 합리적 노력으로 관리되는 영업비밀이 아니라면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영업비밀의 인정요건을 ‘합리적 노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에서 ‘비밀로 관리’되는 것으로 부정경쟁방지법률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법원이 영업비밀 관리 방법이나 비밀 유지 노력의 정도 등을 폭넓게 인정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의 실질적 피해 규모를 참작한다. 고의가 인정될 경우 법원이 1차로 산정한 손해액의 3배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배상액 판단에 고려할 구체적인 사항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침해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영업비밀 보유자가 입은 피해규모, 침해한 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침해행위의 기간과 횟수, 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침해자의 재산상태, 침해자의 피해구제 노력 정도 등이다.

최근 불거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소송에 대해 “영업비밀, 기술유출은 100% 막을 수는 없다” “소송을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영업비밀’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인데, ‘법의 무용’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 법안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영업비밀 보유자가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됐다. 무엇보다 영업비밀 보유자의 능동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구제 노력을 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한·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를 거치면서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의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도 영업비밀 보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입법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은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 경쟁의 요구에 더욱 직면할 것이다. 영업비밀의 보호는 개별 기업의 내부 관리체계와 보호수단 확보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경쟁사 경력자를 채용할 때부터 영업비밀 보호의 관점에서 기본적인 기준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에서 기업활동의 책임성 강화는 기업 평판은 물론 미래 경쟁력과 연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