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군대에서도 채식 식단 보장해야”…국가인권위에 진정제기 준비 중인 정태현씨

2019.10.27 18:03 입력 2019.10.27 20:03 수정

“‘생각보다 끔찍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래도 어떻게 좀 골라서 먹다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게 절대 아니겠구나, 정말 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억울했어요.”

내년 초 군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 정태현씨는 다음달 초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에서도 채식 식단을 제공하라’는 내용의 진정을 낼 예정이다. 단체급식을 해야 하는 군대에서 채식주의자에게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단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그를 돕고 있고, 이미 진정서 작성은 거의 완료됐다. 정씨는 이번 진정을 내기 위해 군대에 다녀온 채식주의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들도 정씨와 같은 ‘비건(육류 뿐 아니라 계란과 우유 등 유제품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결국 ‘살기 위해’ 채식을 포기했다. 정씨가 인터뷰한 이들은 입대한지 1주일 만에 체중이 10kg 줄거나, 굶으면서 훈련을 받은 뒤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무기력감, 우울감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정씨를 지난 25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군 입대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에‘채식 선택권’ 보장해 달라며 진정제기를 준비 중인 정태현씨.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군 입대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에‘채식 선택권’ 보장해 달라며 진정제기를 준비 중인 정태현씨.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 비건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고기를 되게 좋아했어요. 어릴 때도 어른들보다도 훨씬 더 고기를 많이 먹었어요. 생고기 구워먹는 자리에 안 데려갔다고 우는 아이였어요. 그러다 2014년초에, 유튜브에서 게리 유로프스키(동물권 활동가)의 강연을 봤어요. 저는 고기를 좋아해도 개나 고양이를 먹진 않았거든요. 고기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요. 그런데 유튜브에서 얘네들도 고통도 느끼고 감정이 있다, 듣는 귀와 걷는 다리가 있는데 ‘고통을 느끼는 두뇌’만 없다는게 말이 되냐, 고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길러지고, 죽게 디는지를 보여줬어요. 저는 젖소가 자연상태에서 젖을 내는 줄 알았는데, 모든 포유류는 새끼를 가져야만 젖이 나온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강제로 인공수정을 당하고, 새끼는 낳자마자 빼앗기고, 새끼 소는 일주일 정도 엄마를 찾으며 울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우유 생산량이 적어지면 햄버거 고기로 도살되고...그걸 보니까 그 동물들의 ‘살’이 음식으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개나 고양이가 음식으로 보이지 않듯, 이제 다른 동물들도 그것과 같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어요. 그 다음날부터 고기를 안 먹었죠.”

-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일단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가면 채식을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먹기 싫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 이 문제가 가시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여러분들 근처에도 채식주의자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라고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 군대를 다녀온 채식주의자들 인터뷰는 어떻게 하게 됐고,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채식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좁고, 특히 남성이 더 적다보니 자연스럽게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을 알게 됐어요. 이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생각인데, 다녀온 경험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죠. (인터뷰를 한 뒤) ‘생각보다 끔찍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래도 어떻게 좀 골라서 먹다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게 절대 아니겠구나, 정말 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억울했어요. 군대는 내가 원하서가 아니라 ‘의무여서’ 가게 되는 것인데, 거기서 내가 음식으로 보지 않는 것까지 억지로 먹어야 된다는 것이요. 한국에 ‘남성’으로 살면서, 지금까지 특별히 인권침해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 인터뷰를 한 분들도 군대에 채식 식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가요.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요구할 생각도 못했다고 해요. ‘거기서 어떤 식으로든 상사를 귀찮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내려온다’고 하면서 그런 것을 할 엄두는 안 났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상사와 면담을 했는데, 상사에게 조롱을 당한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상사가 ‘네 몸이 네 것인줄 아느냐, 네 몸은 국가의 것이다, <채식의 배신> 같은 책은 읽어보고 채식을 하냐’며 조롱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인터뷰한 분들은) 현역으로 군대에 갔던 분도 계시고, 카투사도 있고, 의경도 있었어요. 다들 비건식을 원하던 분들인데, 결국 살기 위해서 (육류도) 먹어야만 했어요. 그것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와 무력감, 우울함을 겪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고 했어요.”

- 지금 식단대로라면, 태현씨는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나요.

“두부, 채소무침, 쌈채소, 과일, 고추장, 콩나물국, 드레싱을 뺀 샐러드, 그냥 쌀밥, 김 정도인 것 같아요. 김치에도 젓갈이 들어가니 먹지 못하고, 찌개나 국도 멸치로 국물을 낸다면 먹지 못할 것이고요.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는, ‘쌀밥’만 먹을 수 있는 날이 반 정도이고, 반찬만 먹을 수 있는 날이 며칠되고, 아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날이 며칠 되는 것 같아요. 온전하게 챙겨먹을 수 있는 날은 단 한끼도 없어요.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로) 일단 가게 되면 안 먹을 생각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만 먹을 생각이에요.”

- 걱정이 되나요.

“그냥 정말 생존이 걸려 있다고 생각돼요. 처음 훈련소에 들어가면 긴장이 되어있을텐데, 내가 어떤 것을 요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그냥 고기도 먹으라는) 명령이 내려질텐데,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아요. (육식을) 거부하지 못한다면, 그럴 것 같고. 만약 거부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을 눈총,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보복, 폭력이 무섭죠.”

정태현씨.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정태현씨.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 채식을 시작한 뒤 기억나는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어요. 제 의견을 명확하게 피력하기 어려운...뭔가 지시가 있으면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저는 비빔밥을 시켰어요. 메뉴 사진에 비빔밥 위에 계란후라이가 올라가 있더라고요. 저는 계란이 사용되는 것 자체를 반대해서, 처음부터 넣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이 ‘빼지 말고 나오면 그냥 나를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그게 완숙된 후라이가 아니라, 생 계란을 터뜨려서 밥에 거의 흡수가 된 상태였어요. 그때는 최대한 다 덜어내고 그냥 먹었어요. 모두 당황했죠.”

- 한국에서는 채식에 대한 이해가 왜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한국에서는 고기가 ‘좋은 음식’으로 비춰지고 있어서요. 예전에 많이 못 먹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 좋은 음식을 왜 네가 유별나게 거부해’ 같은 생각이 있는 것 같고요. 요리를 하는 분들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분들이 아니니까,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것이 채식이고, 어떤 것이 채식이 아닌지도 모르고요.”

- 비건이 되고 나서 ‘다른 권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비건이 된 계기가 육식의 윤리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동물권에 대한 것이었고요. 동물권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니까 육식이 환경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됐어요. 환경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어요. 채식을 하는 분들은 대체로 환경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소수자’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요. 비건이 ‘종차별주의’를 반대하는 것인데, 한 차별만 반대하고 다른 차별은 괜찮다고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성차별, 장애인권, 청소년의 권리까지도 자연스럽게 다 이어지더라고요.” (그는 올해 추석 때 콩 고기를 이용해 불고기를 볶고, 계란물 대신 밀가루에 강황가루를 섞어 전을 부쳐 ‘채식 제삿상’을 혼자 차려냈다. 그는 “명절 때 늘 여자들만 일 하는 것도 보기 싫었고, 제삿상에 오른 ’죽은 동물들‘도 싫어서 혼자 제삿상을 차렸다”며 “앞으로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소와 돼지, 닭, 개 모양의 대형 풍선을 설치하고 ‘탈육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소와 돼지, 닭, 개 모양의 대형 풍선을 설치하고 ‘탈육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채식주의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채식주의자들을 그냥 내버려두라’. 채식을 하는 것은 혼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응원을 해주진 않더라도, 내가 못 먹는다고 하면,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하지 않잖아요. 먹으라고 강요를 하는 것도 폭력이 아닐까요. 채식을 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다 영양학자가 돼요.”

- 보통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되나요.

“그냥 아니꼬운 듯이 ‘식물은 안 불쌍하냐, 식물은 생명 아니냐’ 라고 해요. ‘사자도 얼룩말을 잡아먹는데 이게 생태계가 돌아가는 방식 아니겠느냐’ 라고도 해요. 채식주의자들에게만 유독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높은 기준을 가져다대려는 것 같아요. 채식은 ‘절대선’을 하자는게 아니에요. 다만 ‘불필요한 고통을 조금 줄이자’는 것이거든요.”

-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뭐라고 대답하나요.

“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한 사료로 10kg 이상의 곡물, 식물이 들어요. 정말 그렇게 식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채식을 하는게 맞고요. 채식주의자들이 이누이트처럼 생존을 위해 동물을 먹어야 하는 분들께 뭐라고 하지도 않아요. 다만 우리는 우리 앞 식탁 위에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잖아요. 또 우리는 사자와 매우 다른데, 사자가 하는 행동 중 따라하고 싶은 것 딱 하나만 선택해서 우리에게 적용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채식과 관련이 있나요.

“잠시 일을 쉬며 채식 관련 영상을 찍고, ‘비건 디저트’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계란과 버터를 쓰지 않고 만든 비건 빵들은 되게 많거든요. 그런 것 말고 무스케이크, 초콜릿케이크 같은 화려한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영상은 제가 몇년 전 채식을 시작했을 때 어디서부터 어떤 것을 해야 할 지 막막했는데, 참고할 만한 것이 당시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겪은 것들을 하나씩 ‘팁’으로 만들고 있어요. 편의점에서 비건식 사기, 채식음식점 찾기, 채식 요리하기 같은 것이요. 저는 어느 시점에는 사회의 거의 대다수가 비건이 되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오래 걸리긴 할 것 같지만. 제가 채식 디저트를 만드는 이유는 이런거예요. 소 젖이 들어간 케이크가 있고, 소 젖이 들어가지 않은 제가 만든 케이크가 있는데, ‘소 젖이 안 들어갔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냥 겉으로 보기에도 그게 화려하고 맛있고 예쁘게 보여서 선택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소 젖이 덜 사용되게 하고, 한국에서 채식을 쉽게 하게끔 팁을 나눔으로써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시작하도록 하고 싶어요. 그렇게 제 관점에서 더 나은 세상이 오게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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