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태 아니면 수동태, 이쪽 아니면 저쪽…한국엔 ‘중간태’가 필요해”

2019.11.09 06:00
장은교 기자

‘라틴어 수업’ 작가로 유명한 ‘공부하는 노동자’ 한동일, 그가 바라본 우리 사회는…

한동일 작가는 “삶이란 내 탓 없이 물려받은 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서재에는 그가 힘들 때마다 피난처로 삼은 책들이 가득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한동일 작가는 “삶이란 내 탓 없이 물려받은 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서재에는 그가 힘들 때마다 피난처로 삼은 책들이 가득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그의 집엔 ‘생각하는 방’이 있다. 작은방 한가운데 둔 의자에 앉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아니, 하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유리창 너머가 아니라 유리창만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유리창에 묻은 얼룩이 거슬렸다. 인터넷을 뒤져 청소도구를 샀다. 창 안쪽과 바깥쪽을 박박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창 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더러움이 보였다.

그러다 생각했다. 깨끗한 부분이 더 많은데… 난 닦이지 않는 작은 부분만 보고 있구나.

그는 가난한 유년 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여러 번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외로워서 억울해서 아파서, 괜찮다 싶을 만하면 찾아오는 삶의 위기들이 지겹고 버거워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도 받았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그는 일하다 여러 번 쓰러졌다.

그의 이름은 한동일(50). 어렵고 어렵다는 로타 로마나(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명강의로 소문난 교수,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작가다. 많은 이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 안에 끔찍한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지난 학기를 끝으로 대학 강의를 중단했다. 로타 로마나에서의 활동도 정리할 생각이다. 2000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나, 천주교와의 관계도 고민하고 있다. 모든 직함을 다 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직은 떠났지만, ‘공부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버리지 못했다. 그는 지난 10월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을 펴냈다. 10년이 걸린 작업이다.

9월에는 로마법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낸 <로마법 수업>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계급론, 청년들의 이유 있는 절망, 이혼과 낙태, 종교의 편협함을 이야기했다. 홀로 끊임없이 침잠하며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중간태가 필요합니다. 능동태와 수동태뿐인 이 세상에, 너는 무엇이냐고 강요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있는 중간태요.”

10월29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생각하는 방에 앉은 한동일씨를 만났다.

◆한국인 첫 바티칸 변호사 그만두고 “정말로 ‘우리’ 공부합니다”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습관)’는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란 뜻도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 일어나 기도하고 노동하는 수도사들의 삶에서 유래했다. 한동일 작가의 하비투스는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븐일레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녁이 되면 책상을 올려 서서 공부한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습관)’는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란 뜻도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 일어나 기도하고 노동하는 수도사들의 삶에서 유래했다. 한동일 작가의 하비투스는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븐일레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녁이 되면 책상을 올려 서서 공부한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외롭고 아파서…피난처로 시작한 공부, 고교 때 사제의 길로
“로마서 박사 따고 ‘로타 로마나’ 변호 자격까지 정말 숨차게 했죠
변호사 그만두는 건 힘들어서…인간의 교만이 아닌가도 고민했고요”
‘어떻게 살 것인가’ 화두로 명강의 소문난 라틴어·로마법 수업도 다 접어
최근 강의록 모은 ‘로마법 수업’ 출간 ‘라틴어 한국어 사전’도 10년 결실
“절망에서 힘이 된 글귀처럼 청소년·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 쓰고 싶어”

- 직함이 많은데, 어떤 호칭을 제일 좋아하나요.

“없어요, 이제. 대학 강의(연세대 법무대학원)는 지난 학기까지 하고 그만뒀고, 로타 로마나에서도 더 이상 활동하지 않으려고 해요(바티칸 변호사 직위는 유지된다). 200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2001년에 로마로 떠난 뒤로는 신부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건… 작가 정도겠네요. 책은 계속 쓰고 있으니까요.”

- 왜 다 그만둔 건가요.

“일단 몸이 너무 아팠어요. 지난해 호주의 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아서, 영어공부 겸 호주 애들레이드에 몇 달 가 있었는데 8월에 쓰러지는 바람에 계획보다 일찍 귀국했어요. 제가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고 몸이 약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데도 안 좋아진 걸 몰랐어요. 집중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의 책상에는 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그는 이 사전을 만들다 병이 났다고 했다. “라틴어로 설명을 하고 필요하면 그리스어, 히브리어도 찾아서 풀이했어요. 제 욕심대로 하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활자가 저를 찌르는 것 같고, 신물이 넘어오고….”

지긋지긋하다면서도 그는 다른 책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책(교회법률용어사전)은 지난해 나온 건데 2005년에 로마에서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시작했어요. 사전이라기보다는 논문집이에요.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는데 원문을 번역해보니까 오역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건(카르페 이탈리아어 관용어 사전) 가제본인데 내년에 나올 거예요. 제 인생에 있어서 이 사전 세 권만큼은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그가 이런 사전을 만들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난해하여 지금은 바티칸 외에서는 쓰이지 않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 능통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사전은 인문철학서에 가깝다. 그의 컴퓨터에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사전(원고) 두 권이 더 있다.

- 사전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일상을 살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제 별명이 ‘세븐일레븐’이었어요.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공부했거든요. 2010년까지는 하루 공부량을 달력에 적었는데 한국 와서는 안 했어요. 패턴이 거의 똑같으니까 의미가 없더라고요.”

-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을 수 있나요.

“소화가 잘 안돼서 저녁에는 책상을 올리고 서서 작업해요(그가 한쪽 버튼을 누르자 책상이 올라가며 입식으로 바뀌었다). 저랑 밥 먹으면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요. 빨리 먹고 휙 들어가 버리거든요. 뭐든 30분 단위로 계획을 짜고 행동해서요.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얼마 전에 저녁 먹고 동네 카페에서 혼자 차를 마셨는데요. 아, 멍때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 시간에 사람들이 참 많이 나와서 쉬는구나 처음 알았어요. (티타임은 얼마나 가졌는데요.) 한 20분쯤이요?(…)”

[커버스토리]“능동태 아니면 수동태, 이쪽 아니면 저쪽…한국엔 ‘중간태’가 필요해”

- 진짜 ‘공부하는 노동자’군요(그는 책 <그래도 꿈꿀 권리> <라틴어 수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제가 공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외롭고 아파서였어요. 시간이 비면 고통과 괴로운 생각이 밀려드니까 그럴 수 없게 쉼 없이 숨차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공부는 피난처였던 거죠.”

- 공부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땐 매일 울었던 기억만 나요. 잘 때 베개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어서 매일 술 때문에 여러 문제가 벌어졌고, 어머니가 경제활동을 하셨죠.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오고 그들이 가고 나면 부모님은 또 싸우셨고요. 우리 부모님은 왜 저럴까. 친구의 부모가 나의 부모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매일 했어요. 중학교에 가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의 역할은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해준 것으로 끝났다.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거예요. 중학교 때까지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시험기간이라고 TV를 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웃음) 그 옆에서 혼자 공부를 했죠.”

- ‘공부가 나의 길’이라고 그때부터 생각을 한 건가요.

“그냥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술·담배·이성교제… 당시 기준으로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일탈이라는 걸 하면 내 삶이 바뀔 수 있을까? 땡전 한 푼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삶을 궁극적으로 바뀌게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공부였어요. 요즘은 그렇게 공부하는 것도 어려운 사회가 된 것 같아 슬프지만. 어학공부를 좋아해서 항상 영어단어 몇 개, 숙어 몇 개 외우기로 몸을 풀 듯이 ‘웜업’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습관이 붙어서 신학교에 가서도 라틴어 한 시간, 이탈리아어 한 시간, 독일어 한 시간씩 공부하고 다른 공부를 했죠. 일정시간 동안 학과공부를 하고, 이후에는 반드시 책읽기를 했어요. 방학 때는 주로 (서울) 정독도서관에 갔는데 철학책, 역사책 보는 게 좋았어요. 글자 보는 게 지칠 때는 그림책도 봤고요.”

그는 자전에세이 <그래도 꿈꿀 권리>에서 “중학교 때 대학생이던 친구 형의 책장에서 발견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보며 부모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이유가 사회적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인간적 사회주의자’를 꿈꾸게 됐다”고 밝혔다.

한동일 작가의 집 한쪽에 놓인 가톨릭 성물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한동일 작가의 집 한쪽에 놓인 가톨릭 성물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 신학교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외고를 가고 싶었는데 학비가 많이 들 거라며 선생님이 말리셨어요. ‘뺑뺑이’로 가톨릭재단 학교인 동성고에 입학했어요. 그때 처음 미사라는 걸 드려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먹고살기 힘들어서 간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공부를 깊게 하고 싶었는데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것에 투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신부가 되기로 결정했어요.”

- 집에서 반대하진 않았나요.

“부모님 입장에선 제가 어려운 아들이었을 거예요. 제가 마음을 먹으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아셨죠. 아버지는 딱 한 말씀 하셨어요. ‘결정했으면 잘 살아라.’ 그때부터 아버지와 화해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술 문제를 일으키기 이전의 삶도 들으면서, 한 사람으로서 그분의 아픔을 이해하게 됐고 아버지가 가끔 던져주는 말 한마디가 굉장히 무게 있게 다가왔어요.”

- 신학교 생활은 어땠습니까.

“힘들었죠. 저는 어떤 폼(형식) 안에 들어가는 게 잘 맞지 않는 사람인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단식도 자주 해야 하는 게 참 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열아홉 살이 하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군대 다녀와서 1년간 세상과 단절하며 수련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깊어지긴 했어요. 그래도 못 다니겠더라고요. 특히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십자가로 여기고 비판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결국 1년 남기고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학장님이 기숙사 밖에서라도 다니라고 이례적으로 허락을 해주셨어요. 저를 잘 아는 원로 신부님이 부산교구로 받아주셔서 결국 부산으로 갔죠. 200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 로마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주교님이 공부하러 가라고 하셔서요. 제 로마생활에서 가장 큰 행운은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난 거였어요. 저에게 라틴어를 가르쳐주신 분은 2차 바티칸 공회(1962~1965년) 때 미사 형식을 정리해서 당시 교황님 앞에서 시현했던 분이죠. 교회법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혼자 법전을 만든 분이에요. 그분 방엔 법전 편찬에 필요한 2세기부터 현대문헌 책이 쫙 있었죠. (바티칸의 살아 있는 역사 같은 분들이었군요.) 그렇죠. 학위나 학교를 뛰어넘는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작업은 혼자서 고독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도 그때 그분들에게 배웠어요.”

한씨는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교회법 석사를 2년 만에, 박사를 10개월 만에 끝냈다. 최단 기간, 최고 성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석사과정은 30점 만점에 29점을 받아 최우등졸업(숨마쿰라우데)을 했고 박사과정은 만점으로 역시 최우등졸업했다. 그는 한나 알안 로타 로마나 대법관의 제안으로 로타 로마나 사법연수원 시험에 응시했다. 입학도 어렵지만, 모든 수업이 라틴어로 이뤄지기 때문에 졸업이 더 어려운 곳이다.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친 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그는 2010년 7월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 변호사로 기록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였다.

- 10년 동안 공부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습니까.

“어렵고 괴롭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죠. 처음엔 선생님이 쓰는 말이 라틴어인지 이탈리어인지도 몰라서 헤맸으니까요. 시험을 보러 가면 신부니까 그냥 최저점으로 통과시켜주기도 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그때부터 로만칼라(사제의 옷에 달린 흰 옷깃)도 안 했어요. 동양인과 신부에 대한 선입견을 깨보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 로타 로마나 변호사는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올라오는 온갖 분쟁을 다룬다고 보면 돼요. 예를 들면 어떤 수녀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다 소속 교구에 통째로 기부했어요. 대신 소속 수녀들이 그 병원에서 진료받을 땐 무상으로 해달라는 조건으로요.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경영이 악화되니까 수녀들에게도 병원비를 받아요.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걸 다루죠. 그밖에 일반적인 로마 시민들의 사건들도 처리해요.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로타 로마나 변호사들이 거의 사제들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제가 졸업할 때도 사제는 저 말고 한 명밖에 없었어요.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많았어요.”

◆“계급사회 아닌 척하는 한국, 신분제 사회였던 로마보다 나을까”

한동일 작가는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 사전 세 권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 권은 지난해 출간된 <교회법률 용어사전>. 한 권은 지난 10월 출간된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다른 한 권은 내년에 나올 <카르페 이탈리아어 관용어 사전>이다. 라틴어와 고대 유럽어를 확인해 만든 그의 사전들은 보통 사전이라기보다 인문철학서에 가깝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한동일 작가는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 사전 세 권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 권은 지난해 출간된 <교회법률 용어사전>. 한 권은 지난 10월 출간된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다른 한 권은 내년에 나올 <카르페 이탈리아어 관용어 사전>이다. 라틴어와 고대 유럽어를 확인해 만든 그의 사전들은 보통 사전이라기보다 인문철학서에 가깝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공부하는 노동자’ 한동일이 말하는 ‘요즘 우리’

- 그렇게 어렵게 된 변호사 일을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건가요.

“음… 힘들어서요. 유한한 인간의 생각으로 세계를 다 해석하고 풀이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게 교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게 뭘까. 그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들더라고요. (오랜 공부에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 건가요.) 네. 제가 호주에서 몇 달 생활하면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요. 아침에 젖은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려운 용어로 된 어려운 이야기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는 2010년부터 로마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에서 진행한 ‘라틴어 수업’은 인문학 명강의로 입소문을 타며, 타 대학생들과 일반 시민 등 청강생들까지 북적였다. 강의 내용을 정리해 출간한 책 <라틴어 수업>은 인문철학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최근까지 27만부가 팔렸다. 2016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는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로마법과 유럽법의 기원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라틴어와 로마법을 매개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로 던진다는 특징이 있다.

- 중간고사로 ‘데 메아 비타(나의 인생에 대하여)’를 쓰도록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먼저 던져본 질문이었어요. 신체기관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곳이 눈이에요. 만일 손끝에 눈이 있다면 가끔은 나를 바라볼 텐데.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요. 내가 나를 보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상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공부라는 툴로 보고 싶었죠. 먼저 저의 인생에 대해 써봤는데, 다 과거시제더라고요. 어, 오늘을 산다고 하면서(카르페 디엠·Carpe Diem) 단 한순간도 오늘을 살지 않고 있구나 싶었어요. 지나간 것들 때문에 이렇게 계속 아파해야 하나 상념들이 지나가거든요.”

- 학생들은 ‘인생시험’으로 기억하는 것 같던데요.

“중간고사 주제였지만, 제가 진짜 성적은 기말고사와 출석으로만 채점하겠다고 했거든요. 쓰기 싫은 사람은 안 내도 되고, 성적도 임의로 입력하겠다고 했어요. A를 한 번도 못 받아본 학생은 A를 주는 식으로요. 그런데 정말 많은 학생들이 진지하게 써서 냈어요. 제가 감동했죠.”

학생들은 종강 후에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꽉꽉 채워넣은 손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손편지들을 소중한 보물로 여기며 간직하고 있다.

- <로마법 수업>은 작정하고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제안한 거죠. 저는 사회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게 정말 싫어요. 많은 부분이 사회문제인데, 개인이 어떻게 하면 바뀌고 어떻게 하면 안되고 이런 식인 것이 굉장히 불합리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번 로마법을 매개로 인간답게 사는 법을 생각해보자고 한 거죠.”

한동일 작가“라틴어 중간태로 살아가길”.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한동일 작가“라틴어 중간태로 살아가길”.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그는 책에서 로마 사회가 범죄자에게 수화불통(물과 불의 사용을 금하는 것)의 형벌을 내린 것과, 현대 한국 사회가 가난해서 전기·수도요금을 못 낸 이들에게 단전·단수 통고문을 붙이는 것을 비교하며 “인간이 활동하는 데 필수적인 물과 빛, 전기를 끊겠다는 것은 당신을 인간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태도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재판관이 사적 이득을 취해 판결을 조작한 경우, 로마 밖으로 영구 추방했다는 부분에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사태가 떠오른다.

- 로마의 신분제사회와 한국의 불평등사회를 비교했죠.

“노예제가 있던 로마의 법은 불평등한 법이었죠. 그런데 명확한 신분제사회, 내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와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사회 가운데 과연 어떤 구성원이 더 피곤함을 느낄까요? 지금 우리는 법적으로 모두 평등하다고 얘기하잖아요. 과연 그럴까요. 만인에게 모든 기회와 도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교묘하게 차단돼 있죠. 강의할 때 청년들에게 ‘지금 여러분이 지나온 삶의 방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냐’고 물어봐요. 그렇다고 답한 학생을 단 한 명도 못 만났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비혼과 출산 거부는 어떤 이들에겐 ‘선택’이 아니라고 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얼마 전에 한 연예인에게 불행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몰아가서 더 이상 내가 갈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는 <로마법 수업>에서 “노예의 소유주들은 은근히 노예가 가정을 갖기를 바랐다. 그건 노예에게서 출생한 자녀가 그대로 주인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었다”며 로마 사회의 교묘한 출산장려책과 한국의 저출산 위기론을 비교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이미 깨닫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가 사회 지배층을 먹여 살리는 하층계급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뼈아프게 간파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라틴어 중간태로 살아가길”

‘내가 무엇일 수도 있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게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살 권리 있다’
불평등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어

- 청년들이 많이 아파하고 있다고 느꼈나요.

“2010년에 만난 저의 첫 제자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니?’라고 물었는데, 답이 ‘취직’이었어요. 그만큼 청년들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간절해요. 얼마 전에 한 제자(20대 여성)와 밥을 먹으러 갔는데,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잘못 나와서 그 친구가 질문을 했어요. 근데 직원분이 굉장히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대꾸를 하더라고요. 제가 보다 못해 나서서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설명일 뿐이었다’라고 정색하고 말하니까, 그 친구가 제자가 아니라 저한테 사과를 해요. 제자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은 한국에서 20대 중반 여성이 매일 일상에서 어떤 무시를 당하는지 모를 거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보통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 지수가 1~10까지 있다면, 한국 여성들은 매일 7~8 정도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구나. 그러니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크게 발화할 수밖에 없구나. 페미니즘 이슈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일상적인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 같아요.”

- 불평등에 대한 문제는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닌데도, 우리 사회가 특히 더 아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군사정권 시절의 과오라고 하면 보통 독재, 인권탄압을 꼽는데요. 저는 ‘과정의 공정함’을 얘기하고 싶어요. 공정함에 대한 불신이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문제는 지속적이죠. 지금 광장이 첨예하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는데, 아마도 우리 사회 발전과정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늘 고민하는 부족한 사람인데요.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웃음) 다만 라틴어 문법이 생각났어요. 라틴어에는 능동태와 수동태 외에 중간태가 존재해요.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어려운데 그래도 해보자면, ‘무엇무엇 같아요’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나는 무엇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상태’ 정도가 되겠네요.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같아요’라고 말하면, 자기 주관이 없다고 비판했었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라틴어의 중간태라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일 수도 있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게 꼭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왜 꼭 어느 한쪽 진영에 속해야 합니까. 오히려 어느 진영에 속하면 자기들의 것은 얘기하지 않고 상대방의 것만 비판하게 돼요. 일상의 많은 것들 중에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아요. 어떤 개인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드러내면 어떻게 되나요. 사회는, 조직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죠.”

조직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이야기에 이르자 그가 낙태, 이혼 문제에 있어 천주교의 공식입장과는 다른 이야기를 쓴 것이 생각났다. 그는 낙태에 대해 “낳아도 낳지 않아도 모두 산통을 겪는다”며 “가장 약한 생명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면, 그 생명을 잉태한 그보다 조금 더 강하지만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한 생명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길 기다린다”고 밝혔다. 이혼에 대해서도 “당시 이혼 제도하에서 철저히 약자의 입장이었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예수가 이혼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며 “맥락과 취지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무작정 이혼하지 말라는 계명에만 집착하는 것은 예수의 진리를 따르는 길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신이 만든 자연엔 ‘잡풀’이 없다”

종교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정원 역할 하지만
정원에 가는 순간 어떤 것은 잡풀·들풀 되어 뽑혀나가
낙태 반대하기 위해 미사 중에 반대서명 하는 것처럼

- 종교를 정원에 비유했습니다.

“제가 매일 산길을 걷는데요. 자연에는 잡풀이나 잡목이 없어요. 그런데 정원에 들어가는 순간 어떤 것은 잡풀이 되고, 잡목이 되어버리죠. 종교가 사람들이 쉬어가는 정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원 안의 것만 인정하죠. 성경에도 들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는데 종교는 정원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제자가 성당에서 미사 중에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지가 돌았다는 얘기를 해줘서 깜짝 놀랐어요. 미사가 끝난 뒤에 나와서 자유롭게 서명할 수 있도록 했다면 모르겠어요. 그런데 미사 중에 모두에게 서명지를 돌렸다면… 그중에 낙태를 이미 했거나 고려하며 고통받은 사람은 없었을까요. 그들에게 그런 서명방식은 잔인하고 폭력적이지 않았을까요.”

- 앞으로 계획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한 제자(30대)가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터널의 끝은 있나요?’라고요. 그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책을 쓰고 싶어요. 귀국 이후 공부법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다 거절했어요. 그런데 가난하고 절망적이었던 어릴 적 제가 어떤 한 글귀를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지금의 청소년,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우리는 자꾸 사이다 같은 발언을 좋아하는데, 소화불량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이다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는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라틴어로 아지랑이를 ‘네불라(nebula)’라고 하는데요.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어요. 우리 마음속에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것부터 들여다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 안에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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