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정치 때문에 또 웁니다

2019.11.20 21:33 입력 2019.11.21 00:31 수정

인권위법 개정 논란·문 대통령 “동성혼, 사회적 합의” 발언에

시민단체 “정치가 혐오 퍼트려…논의 시도 의지라도 보여줘야”

지난달 한 성소수자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달엔 두 명의 성소수자 친구가 자살을 기도했다.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가까스로 살아 병상에 누운 친구들의 옆자리를 지켜야 했다. “내 옆에선 사람이 죽어간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다. 왜 하필 트랜스젠더 추모 주간에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

20일은 혐오범죄에 희생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정치권은 여전히 성소수자 인권을 외면하고 차별을 조장한다. 지난 12일 국회의원 40명이 차별 대상 항목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생물학적 성별만을 ‘성별’로 규정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국민과의 대화’에서 “동성혼 합법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온라인에는 한숨과 울분 섞인 글들이 잇따랐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된 존재가 나”라고 썼다.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도 “대통령에게 동성혼 법제화를 당장 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합의를 어떻게 할지 한번 시도라도 해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트랜스해방전선은 “위대한 생존을 해나가는 성소수자들은 결코 삭제할 수도, 삭제되지도 않는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20일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하고 성별이분법 강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보라 기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20일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하고 성별이분법 강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보라 기자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발의와 문 대통령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전국에서 모인 시민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삭제해야 할 것은 혐오다. 국회는 당장 평등을 말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차별에 희생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묵념 시간을 가졌다.

박한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기자회견에서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혐오를 퍼뜨리고 존재를 배제하는 개악안을 마주하는 집회에 참석해 안타깝고 분노스럽다. 인권을 계속 나중으로 미룬 현실이 지금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2월 한 성소수자는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에게 “왜 성평등 정책 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성평등을 포함하지 못하느냐”고 외쳤다. 문 대통령은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발의와 문 대통령 발언은 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개정안은 성별·성적 지향과 관련해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 인권법과 헌법 정신에도 반한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개정안이 나온다면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간성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차별이 아니게 된다. 사실상 혐오를 선동하고 차별을 용인한다”고 했다.

정치권이 시민사회 일원인 성소수자를 대변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점도 비판받는다. 합의를 이루려는 구체적 논의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동성혼 등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노력에 앞장서야 하는 사람은 국민을 대변하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권”이라며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뒤로 물러설 게 아니라 노력하고 힘쓰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