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에서 ‘동백꽃 필 무렵’까지

2019.12.05 20:37 입력 2019.12.05 20:44 수정

KBS 드라마 <추노>, 2010.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019.

KBS 드라마 <추노>, 2010.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019.

해마다 찾아오는 결산의 계절이 시작됐다. 2019년뿐 아니라 2010년대를 정리해야 하는 올해 마지막 달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요즘 미국 미디어에서는 ‘지난 10년간 최고의 리스트’ 결산 작업으로 분주하다. 그중 TV 관련 기사들만 추려 보면, 하나같이 2010년대 TV 시장 지형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작은 스크린’들의 등장을 꼽는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는 TV의 의미와 시청 방식을 재정의했다. 전통적인 TV 시청자 수는 대폭 감소했지만, 급성장한 스트리밍 업체들이 콘텐츠 제작을 늘리면서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어졌다. HBO <왕좌의 게임>처럼 기존 TV 드라마의 스케일을 뛰어넘는 글로벌 블록버스터부터, 소극장용 여성 1인극에서 출발한 BBC와 아마존의 <플리백>까지 ‘2010년대 최고의 드라마 리스트’에 단골로 언급되는 작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추노’에서 ‘동백꽃 필 무렵’까지

국내 드라마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채널 다매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상파의 위상은 크게 낮아졌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연가>(KBS), <파리의 연인>(SBS), <태조왕건>(KBS), <대장금>(MBC) 등 한류와 국내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은 굵직한 작품들은 전부 지상파 작품이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뉴미디어 플랫폼과 나눠 갖게 됐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이 같은 드라마 시장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작품들을 추려 보았다.

첫 번째로 언급할 작품은 <추노>(KBS, 2010)다. 노비들의 처절한 삶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신분제도의 부조리를 비판한 이 작품은, 못다 한 개혁에 대한 열망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한편 액션, 미스터리 등의 장르적 요소를 적극 활용해 사극의 새 문법을 제시했다. 2012년 방영된 <추적자>(SBS)는 장르는 다르지만, <추노>의 시대정신을 공유한다. 딸의 사고에 은폐된 진실을 밝히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추적자>는 이후 부패한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사회고발 드라마의 유행을 주도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 극장가에서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의 작품이 무비 저널리즘을 선도한 것처럼 보수 정권 시대의 문화계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2012년 작품 <해를 품은 달>(MBC)은 <추노>가 선도한 사극의 장르적 가능성을 한층 더 밀고 나간 작품이다. 기존 왕조 사극의 외양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판타지,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시대극이 트렌디한 감각으로 거듭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사극에서 시작된 복합장르 열풍은 현대극으로도 이어진다. <해를 품은 달>의 주연배우 김수현을 기용한 <별에서 온 그대>(SBS, 2013)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로맨스에 슈퍼히어로 판타지, 범죄스릴러, 미스터리를 유연하게 뒤섞는다. 신한류까지 일으킨 이 작품의 복합장르 전략은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공식이 됐다.

2013년 <응답하라 1994>와 2014년 <미생>은 케이블채널 tvN이 ‘신드라마 왕국’의 칭호를 가져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진작부터 ‘N 스크린’ 시대에 대비한 tvN이 참신하고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며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해온 것의 결실이 바로 두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미생>과 같은 해 등장한 <밀회>는 tvN과 함께 2010년대 후반기에 드라마 시장을 양분할 JTBC의 성장을 예고한다. 불륜드라마의 외피 아래 기득권층의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은 이 작품은 올해 <스카이캐슬>로 그 정점을 찍은, 사회파 웰메이드 통속극이라는 JTBC 고유의 장르를 개척했다.

현재 한국 드라마의 투톱 작가라 할 수 있는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2016)과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2018)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은 완성도도 높지만, 지상파에서는 어느덧 보기 힘들어진 영화급 스케일과 캐스팅을 통해 안방 블록버스터로서 드라마의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같은 한국 드라마의 대작 시대를 부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주역은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다. <미스터 션샤인>에 대규모 제작비를 투자하며 스케일을 키운 넷플릭스는 올해 초 김은희 작가 극본의 대작 사극 <킹덤>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했다.

KBS 드라마 <추노>, 2010.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019.

KBS 드라마 <추노>, 2010.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019.

마지막으로 언급할 작품은 올해 하반기 최대의 화제작 <동백꽃 필 무렵>(KBS)이다. 이 드라마는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뛰어난 완성도와 공영방송만의 따뜻한 가치로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지상파 위기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본을 쓴 임상춘 작가가 지상파의 유일한 단막극 시리즈인 <KBS 드라마 스페셜>로 데뷔했다는 점도 이에 부합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사회적 비주류층인 여성들이 연대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드라마가 지향해야 할 다양성의 가치를 대변한다.

지난 10년의 교훈은 새로운 10년의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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