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산재 사망 양형기준 낮아…법원에 의견 낼 것”

2019.12.08 22:46 입력 2019.12.08 23:09 수정
인터뷰 | 김지환·정리 | 이효상 기자

고용노동부 장관 인터뷰

이재갑 “산재 사망 양형기준 낮아…법원에 의견 낼 것”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61·사진)이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을 두고 “조만간 노동부 차원에서 양형 기준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해 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지난 5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일반 국민·노동자·경영자 등을 상대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양형 기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분이 굉장히 많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산안법 전면 개정의 계기가 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매일 3건씩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현실과 그에 대한 정부 대책 등을 짚어보기 위해 이뤄졌다.

이 장관은 재해조사의견서 공개에 대해서도 “(산재 사고 예방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개인정보 문제 및 회사 공정 기밀 유출 등) 난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확신이 서게 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는 현재 일부만 공개되어 산재 예방을 위한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중대재해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이 장관은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하며 ‘하도급 금지’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도급 전면금지보다는 원청에 모든 책임을 부여하는 형태로 접근하고 있다”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에 대해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험 등 사회안전망 강화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플랫폼) 업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위험의 외주화 해법, 도급 전면금지보다 원청 책임 강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집무실에서 이뤄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집무실에서 이뤄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한국은 산재공화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로는 단연 1위다. 지난 23년간 단 2차례만 1위 자리를 내줬다. 작년에도 올해도,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떨어지거나, 끼이거나, 깔려 숨졌다. 특히 하청노동자들은 더 자주 다치거나 죽었다. 원청과 하청이 분절돼 있는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는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현재까지 전년 대비 사망자수를 100명가량 줄였지만 목표 도달은 요원한 상황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를 바로잡을 근본대책이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요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꾸렸던 각종 조사위원회에 참가한 위원들은 최근 김용균씨 1주기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여 “조사위의 권고안이 휴지조각이 됐다”며 정부에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야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 유인책이 생긴다는 데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도급을 전면 제한(해서 직접고용)하기보다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산재 사망사고 양형 높여야”

- 10일이 김용균씨 1주기다.

“지난해 이맘때쯤 너무나 안타깝게 김용균씨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산업안전의 중요성에 경종을 울린 사고였다. 이를 계기로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국회 입법 심의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제일 큰 변화는 산안법을 개정하면서 원청이 자기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하청노동자의 산업안전 문제 전체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사업장 밖에서 일어난 사고라도 22개 유형에 대해서는 원청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했다. 또 최소한 공공기관에서는 이런 사고가 생기면 안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관리 항목 배점을 2점에서 6점으로 3배 늘렸다.”

해외 전면금지 사례 없어
유해물질 다루는 분야만
도급승인 심사 거치도록

-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10년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5년 만에 하겠다는 것이라 사실 쉬운 목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2017년 타워크레인 사고로 17명이 사망했다. 이후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해체할 때 반드시 노동부 감독관이 가서 점검하도록 했다. 이랬더니 2018년에는 관련 사망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현장에 나가 감독을 하면 확실히 (사망사고가) 줄어든다는 점을 배웠다. 또 서류를 검토하는 데 쓰는 시간을 줄이고, 현장의 위해·위험 요인 감독에 집중했다. 금년에는 건설업 현장을 집중 관리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최대한 해보자는 생각이다.”

- 성과가 있었나.

“올해 11월 기준으로 산재사고 사망자가 전년 동기에 비해 89명 감소했다. 지난해 7월부터 2000만원 미만 건설공사까지 산재보험이 확대 적용됐다는 걸 감안하면, 작년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경우 105명이 줄은 셈이다. 내년에는 민간 재해예방기관들과 역할을 분담해 제조업체의 불시 현장점검에 집중할 계획이다.”

재해조사의견서 공개 추진
개인정보·기밀 유출 문제
해결 방안 찾도록 할 것

-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산재사고별로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가 현재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심지어 유족들조차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민간 연구기관이나 학계에서도 여러 분석을 통해 다양한 대책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정보 문제가 있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기업의 영업비밀까지 조사한 내용이 담길 때도 있다. 원칙적으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되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면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려고 한다. 중대재해 정보를 노동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해보겠다.”

- 산재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대한 처벌이 평균적으로 벌금 400만~500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안전에 투자하기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셈이다.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야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 유인책이 생긴다는 데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번에 전면 개정된 산안법은 사망사고의 경우 법인에 대한 벌금을 10억원까지 올려놔 처벌을 상당히 강화했다. 이것이 최대한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상한 없이 연매출에 비례해 벌금을 물리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면 현행 한국 형법체계와의 정합성 문제를 한번 따져봐야 한다. 또 외국에서 어떻게 하는지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한번 연구용역을 발주해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볼 생각이다.”

- 지난 10년간 법원의 산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례를 보면 징역형·금고형처럼 자유형을 선고받은 비율이 1%도 안된다.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있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이 41개로 분류되는데, 산안법 위반 사건은 과실치사상 범죄군에 들어가 있다. 올 초 연구용역을 진행한 결과, 산안법 위반 사망사고의 경우 과실치사상보다 약간 낮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 노동자, 사업주가 산업재해 사망사건의 양형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조사했는데, ‘양형기준이 낮다’는 답변이 ‘높다’는 답변보다 많았다. 노동부 차원에서 양형기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법원에 전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어떤 식으로 법원에 행정부의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맞는지 절차를 찾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 “플랫폼노동 표준계약서 만들 것”

- 김용균씨 사고 이후 꾸려진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조선업 중대재해 조사위원회 등은 반복되는 하청 산재사고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직접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위원회가 권고한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권고안의 내용에 따라 몇 가지 나눠 생각할 부분이 있다. 조선업 조사위의 권고안은 원청의 책임 범위를 사업장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개정 산안법에 반영됐다. 발전사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문제는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 최대한 빨리 합리적인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노동부도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적극 지원하겠다.”

- 각 위원회는 정부가 직접고용에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권고안이 휴지조각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어려운 과제다. 산재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하청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는 고민이 많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부와 조사위의) 시각이 좀 다른 분야가 도급 전면 금지 부분일 것 같은데, 외국 입법례를 살펴봐도 산안법에서 도급을 아예 금지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 대신 산안법을 개정하면서 직업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분야는 도급승인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하청노동자 보호를 위해서는 원청이 자기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하청노동자의 모든 노동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 책임을 지도록 했다.”

플랫폼 노동 안전망 강화
전속성 폭넓은 해석 필요
표준계약서 내놓을 방침

- 플랫폼노동 역시 화두다. 최근 OECD는 플랫폼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라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플랫폼노동은 기술 변화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일자리인데, 노동법을 우회하는 형태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원래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인데 약간 비틀어 위장된 자영업자로 취급되는 사례가 외국에서도 많다. 이런 부분의 오분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랫폼노동자라 하더라도 근로자성을 따져 근로자로 인정된다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서류보다 현장 감독 집중
올 산재 사망 80여명 줄어
내년 제조업 현장에 중점

- 플랫폼노동자 보호 방안으로 추진 중인 것이 있나.

“사회보험의 범위를 넓히는 등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전속성(업체로부터 얻는 소득 및 지시에 종속된 정도)을 따져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전속성을 좀 더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배달종사자 등 국토교통부 소관 업무가 많기에 국토부와 협의해 업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만들 생각이다. 노무 제공에 대한 기본 원칙이 담겨 있는 표준계약서를 현장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자로 인정해 노조활동이 가능케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희도 고민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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