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얻어낸 ‘회화의 힘’

2019.12.15 20:57 입력 2019.12.15 21:04 수정

문성식 작가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전…31일까지

‘만남’(2018), 캔버스에 젯소·과슈, 18×25.8㎝  사진 권오열, 국제갤러리 제공

‘만남’(2018), 캔버스에 젯소·과슈, 18×25.8㎝ 사진 권오열, 국제갤러리 제공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안주하지 않고 고민하는 작가는 아름답다. 부실한 토대 위에 ‘머리를 굴리는’ 미술계의 유행에도 우직하게 ‘몸으로 부닥치는’ 젊은 작가는 더 그렇다.

문성식 작가(39)의 작품전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국제갤러리)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그는 대학원생이던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해 주목받았다. 이례적으로 일찍 붙은 ‘최연소 작가’ 수식어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청년작가가 그 무게를 견디며 작업을 어떻게 펼칠지 미술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후 그는 서정적 연필 드로잉, 세밀한 다큐멘터리 같은 풍경화란 두 축으로 작업하고 선보였다.

“밑천도 없는데, 알려졌다. 내공을 쌓을 시간도 없었다. 콤플렉스가 됐다. 위태위태하게 여기까지 왔다. 결국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선 내가 만족하는 방향, 내 밑천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의 변화는 앞으로 오래 작업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문 작가의 말이다.

몸부림의 결과물인 신작들이 전시장에 나왔다. 유화 바탕을 연필로 긁어 자유로움이 엿보이는 유화드로잉과 채색드로잉 소품들, 특히 서울을 떠나면서까지 작업한 회화 대작들이 주목된다. “내 조형의 에센스는 선”이라는 그는 고뇌 끝에 드로잉과 회화를 하나로 융합하고자 했다. “드로잉과 페인팅을 어떻게 합할 수 있을까” 자문했고 “선을 페인팅에 복원시키는 작업”에 매달렸다. 루이스 부르주아·반 고흐·겸재 정선 작품들의 선, 조선 화조화·라스코동굴 벽화·르네상스 초기 작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동서양이 섞인 인도의 옛 그림이 주는 현대적 미감이 “스승”이 됐다.

‘그냥 삶’(2018~2019),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522㎝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그냥 삶’(2018~2019),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522㎝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동서양의 선과 미감을 통해 “미학적 수혈”을 받은 그는 자신만의 기법을 연구했다. 캔버스에 검은색을 입히고 질감이 두드러지는 흰 젯소를 올린 뒤 긁어냄으로써 흑백 선과 면의 형상이 이뤄지면 내구성 좋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과슈로 채색했다. 작가의 의지와 우연이 뒤섞이는 반복작업도 이뤄졌다. 그렇게 탄생한 ‘그냥 삶’(200×522㎝) 등의 작품은 무엇보다 회화의 특별한 맛, 그림 보는 즐거움이 크다. 회화의 본질을 강조하며 느리지만 공을 들인 덕분이다. 수백년의 시간이 담긴 벽화 같은 화면에 독특한 질감과 색감, 조형의식이 돋보이고, 특유의 섬세한 표현은 들여다보는 재미를 안긴다.

활짝 핀 장미꽃으로 갖가지 색의 나비들과 벌이 날아들고, 한편의 거미줄엔 긴장감이 감돈다. 잎사귀에 매달린 벌레들은 꼼지락거리며 애써 배를 채우고, 매서운 눈초리의 새는 날개를 펴고 그 벌레들을 노린다.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온갖 생각이 일어난다. 싹이 자라 화려한 꽃을 피우고 끝내 말라갈 장미, 저마다의 생김새와 색깔로 그냥 살아가는 뭇 생명들, 그 속의 아름다움과 추함과 사랑과 다툼, 여전히 신비스러운 삶과 죽음…. 장미꽃이 핀 여름 어느 날의 익숙하고 평범한 한 장면인데, 세상살이 축소판이 돼 관객을 붙잡는다. 예술작품이란 것의 힘이다. 전시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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