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책 풍선효과…신용대출 늘고, 법인 대출로 집 사고

2020.02.22 16:18

강남 송파 아파트 단지 / 김기남 기자

강남 송파 아파트 단지 / 김기남 기자

“주택담보대출을 받고도 2억원 정도가 부족하네요.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은행이 한도가 제일 많이 나와 1억8000만원까지는 가능해 보입니다.”

기자가 지난 2월 18일 전용면적 60㎡(24평형)인 서울 강남구의 ㄱ아파트 구매를 위한 대출을 문의하자 한 상담원은 은행 신용대출을 추천했다.

ㄱ아파트의 시세는 11억원 정도다. ‘12·16 부동산 대책’에 따라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무주택자가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살 경우 2주 안에 전세대출금을 전액 회수하기 때문에 전세금 5억원을 대출 없이 갖고 있다고 가정했다. 대기업에 다니고 연봉은 1억원 정도라고 가정했다.

정부는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고,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담보인정비율(LTV)을 9억원 이하분엔 40%, 9억원 초과분엔 20%를 적용했다. 11억원인 ㄱ아파트의 경우 기존에 4억4000만원까지 대출됐지만 12·16 대책 이후 9억원의 40%인 3억6000만원에 2억원의 20%인 4000만원을 더해 4억원으로 대출 가능액이 줄어들었다.

부족한 금액을 신용대출로 받을 것을 예상해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할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받아 신용대출 금액이 LTV 비율을 초과해 주택 구입에 쓰인 것이 적발될 경우 초과분을 은행에 반납해야 한다는 경고도 했다.

은행들도 신용대출을 해주면서 주택 구입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설명 절차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 상담원은 “○○은행은 그런 내용은 물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머지 3000만원 정도도 금리가 16% 정도로 높긴 하지만 제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해보험사·권리조사기관도 위기

부동산 카페에서 대출 문의에 자주 답글을 달아주던 이 상담원은 대출 문의자의 상황을 파악해 은행부터 제2금융권까지 가장 적절한 대출처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정부 규제로 이전에 비해 어려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부족한 주택 구입 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한국카카오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1월 말 신용대출 잔액은 12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1월 말 전체 가계대출은 전년 대비 7.9% 증가해 지난해(8.5%)보다 증가폭이 줄어들었다. 전세자금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이 감소 혹은 정체를 보이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주택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히면서 생겨난 풍선효과라는 해석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보대출이 막히면서 주택 구입을 위해 신용대출로 일부 갈아타는 게 있다”면서 “담보대출을 생활자금 등으로 용도를 변경해서 쓸 수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담보대출이 막히면서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대출 금리가 담보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이용자가 고령층인 경우가 많아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대출이 막힌 은행권이 아닌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에서 담보대출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6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대부업 대출 규모가 반년 사이 6000억원 감소한 상황에서도 담보대출은 5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한 은행권에서는 신용대출이 늘고, 대부업 쪽에서는 신용대출(평균 20.8%)보다 금리가 낮은 담보대출(평균 14.7%)이 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김영한 토지정책관이 지난 2월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강남·서초·송파 등 서울지역 부동산 실거래 관계기관 2차 합동조사 결과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토교통부 김영한 토지정책관이 지난 2월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강남·서초·송파 등 서울지역 부동산 실거래 관계기관 2차 합동조사 결과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제1금융권 대출을 규제하면 제2금융권으로 쏠렸다가 그곳마저 규제하면 결국 규제가 약한 대부금융으로 몰리게 된다”면서 “저축은행 쪽은 발이 묶인 반면 대부업의 부동산담보대출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업에서 빌리는 담보대출은 금리가 높기 때문에 집을 구매하는 용도보다는 긴급한 생활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300만원 이하 규모가 전체 대출의 60%를 차지한다”며 “담보대출이 늘긴 했지만 거의 다 생활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이 담보대출을 줄이면서 덩달아 손해보험사·권리조사기관들도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면서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보험사의 권리보험에 드는데 보험사 역시 보험을 인수하기 전 권리조사기관에 위탁해 계약의 위조·사기 여부나 소유권 등 권리관계에 문제가 없는지를 조사한다. 한 권리조사업체 대표는 “대출 관련 채권이 거의 나오지 않고, 은행들도 자회사를 세워 자기 은행의 대출 관련 조사를 맡기다보니 먹거리를 계속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운영자금으로 주택 구입하기도

법인이 기업 운영자금으로 대출을 받은 후 부동산을 구매하는 경우도 막아야 한다. 기계나 공장 같은 확실한 증거가 남는 설비자금과 달리 원료 등을 구매하기 위한 운영자금은 얼마든지 부풀리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2월 초 정부의 부동산 실거래 합동조사 결과 한 전자상거래업 사업자는 서울 서초구의 21억원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조합에서 받은 5억원의 사업자 대출을 주택 구입에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환 교수는 “설비자금의 경우 꼼꼼하게 용도를 보니까 대신 운영자금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일이 강남을 중심으로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워낙 시중에 자금이 넘쳐 흘러 어디든 조이면 터지게 마련”이라며 “부동산 불로소득이 여전히 크고, 세금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으로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집값이 9억원과 15억원으로 수렴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9억원 미만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상승하고, 15억원 미만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되는 15억원 선까지 올라갈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는 “총부채상환비율(DTI)·LTV 규제를 9억·15억 기준선에서 더 아래로 내려야 한다”며 “실수요자 구매가 어려워지는 문제는 집값을 떨어뜨려 해결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버블 단계까지 왔다고 본다”며 “연착륙시키지 못하면 수년 내로 부동산이 일본처럼 경기침체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장치를 마련한 후 재개발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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