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교육이 부추기는 ‘사회화의 위기’

2020.09.28 03:00 입력 2020.09.28 03:05 수정

비대면 강의로만 진행된 한 학기를 마치고, 새로 시작된 2학기. 제한적이나마 대면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3년 동안 강의했던 경험을 생각해보건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자신도 있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2020학번 1학년 첫 대면 강의를 하러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소위 ‘멘붕’이 왔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멀뚱멀뚱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처음 본 친구에게 비말이 튈까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출석을 부르며, 침묵 속에서 학생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데도 등허리에 땀이 흘렀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지침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질문에 대답하고 대화에 응하는 몇 명의 학생을 확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뭔가를 써보라는 과업을 주고 학생들을 지켜봤다. 노트를 안 챙겨온 학생은 노트 한두 장 빌릴 사람을 찾지 못해 그냥 교재의 속지에 뭔가를 끄적댔다.

생애 첫 강의처럼 긴장하고 버벅대다 강의를 마쳤다. 교수도 학생들도 처음 마주하는 상황. 강의를 마치니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는 20학번 새내기들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다가 혼자 먹는다. 고학년들이 서로 모여서 점심을 먹고, 왁자지껄 떠들며 식당을 찾아가는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원격수업 ‘뉴노멀’로 정책 삼고
능률 따지는 학교 원하는 시대
지금이야말로 모임·장소의 힘을
깊이 탐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비대면 강의에 익숙해진 몸은 교수와 학생 모두 대면 수업을 힘들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향후 강의를 ‘블렌디드’(대면과 비대면 혼합)로 진행하려면 비대면 수업보다는 사실상 대면 수업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걱정을 나눴다.

2020년 신입생들은 새내기 새터(OT)와 술자리와 모꼬지(MT) 없이, ‘인싸’와 ‘아싸’의 분화를 겪으면서 발생하는 성인으로 처음 마주하는 교우 관계의 새로운 맺음과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도 없이 ‘대학생 되기’를 ‘당해’버렸다. 그러나 교수가 학생들의 몸을 대학생의 몸으로 바꿔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선배 대학생들도 1학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9일 “대학의 원격수업을 ‘뉴노멀’로 삼겠다”고 했다. 고등교육 혁신을 위해 원격수업 개설 20% 상한제를 폐지하고, 온라인 석사학위 과정도 허용하고, 온라인을 통한 대학 간 공동 학위 운영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학의 원격수업 준비가 부족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 거대 정보통신 자본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 교수·강사 채용을 감축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격수업 전면 확대를 비판한다. 그러나 원격수업을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을 통해 내용적으로 보강하면 사실 교육의 질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부의 ‘진도’ 걱정도 이렇게 하면 얼렁뚱땅 해결할 수 있다.

교수 및 강사 채용은 정부가 대학구조평가에서 ‘교수 충원율’ ‘강사 충원율’ 지표에 대한 배점을 높이면 지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엘리트 청년’들은 이미 미국 아이비리그나 스탠퍼드 대학의 무크 강의를 영어로 듣고 있다. 취업과 자기계발에 필요한 역량 역시 온라인 강의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온라인 수업의 품질을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교육 과정과 진도가 아니라, 대면 수업이 당연했던 시절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비공식적 교육, 즉 사회화의 붕괴다. 적극적인 누군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인맥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온라인 취향 공동체가 자신과 다른 존재들과 섞임의 경험 없이 사회 일반과 고립된 ‘부족주의’를 강화한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그나마 강의가 아니면 밖에 나오지 않고 집 안에만 있는 학생들은 어쩌나. 강의실 안팎에서 선생과 제자가 만나고, 학생회실이나 동아리방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학교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학생들이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만들어내는 사회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육을 책임지는 부처에 없다는 게 애석하다.

전염병 때문에 ‘모임 없는 언택트 시대’를 정책을 통해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생각이다. 학교를 그저 학습의 공간이라고 생각해 능률만 향상시키려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모임이 불가능한 시대 속에서 기존의 모임과 장소가 주었던 힘들에 대해 탐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여전히 방역에는 힘쓰고 대규모 집합은 제한해야 할 거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학생들을 학교에 익숙해지게, 친구에 익숙해지게, 모임에 익숙해지게 하고, 그리고 다양한 관계가 만드는 사회적 상황에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과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의 경험이 인류에게 ‘지나간 경험’이 되게 해야지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하지 않나. 비대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대면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준비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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