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선거에 ‘부산’이 없다

2021.03.27 08:02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왼쪽)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연합뉴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왼쪽)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연합뉴스

“정권 폭주에 제동을 걸자” vs “엘시티 살면서 무슨”.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에 ‘부산’이 없다.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보다 ‘저 사람은 안 된다’는 비난이 선거를 지배하고 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 후보 개인에 대한 의혹이 선거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변수가 됐다. ‘정책선거’에 대한 기대는 이번에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되는 양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중앙에서 내려간 차별성 없는 후보들

상대 후보에 대한 법적·도덕적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김영춘 민주당 후보다. 숱한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선거날인 4월 7일까지 해소되기는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부산시장 선거에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는 것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다. 박 후보는 김 후보도 문재인 정부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네거티브’ 전략은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흐지부지된다. 지역발전을 위한 시장을 뽑는 것과도 큰 관계가 없다. 공약에 대한 결과 검증이 가능한 ‘정책선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논문 ‘지방선거에서의 정책선거: 한계와 가능성’을 쓴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트학부 교수는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 그리고 유권자들은 정책을 중심으로 일종의 교환관계를 형성한다”며 “유권자들이 후보가 제시한 정책 공약을 보고 자신의 선호를 가장 잘 반영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가 가장 잘 구현된 형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이혜민씨(26)는 ‘취업’을 부산시장 선택의 기준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각 후보의 일자리 공약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이씨는 “가덕도 신공항이나 박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 정도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무관심을 탓할 수도 있지만, 실상을 보면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김 후보의 ‘우량 공공기관, 중견·대기업 유치’ 공약과 박 후보의 ‘대기업 관련 기업 3개 이상 유치’ 공약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른다고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씨의 지적은 유 교수가 분석한 정책선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후보들 간의 선명한 정책적 차이가 없다는 문제다. 유 교수는 “정책이 구체화될수록 다양한 호불호를 가진 유권자들로부터 상반된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후보 입장에서는 특정 사안에 관한 정책적 입장을 표명하기보다 가능한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후보들의 정책에는 차별성이 없게 된다. A후보 공약을 B후보 이름으로 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책적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유권자들의 관심은 ‘정권심판’ 같은 지역발전과 관계없는 이슈에 쏠린다. 이는 다시 지방선거가 중앙정치 싸움에 예속되는 결과를 만든다. 김 후보와 박 후보 모두 중앙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유 교수는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으로 가다 보니 후보 간 흠집 내기만 남는다”며 “정당이나 후보들은 정권심판론 이상의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선거가 정책 대결로 가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가능한 대안은 각 후보의 정책 ‘우선순위’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은 “후보들이 정책에 우선순위를 매기게 해 유권자가 비교·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순위 비교는 왜 필요할까

정책에 우선순위를 매기면 후보 간 차이가 보일까. 지난 3월 23일 김 후보와 박 후보 캠프로부터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 공약을 전달받았다. 두 후보 모두 1순위는 ‘경제 공약’이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다. 우선 김 후보는 ‘가덕도 신공항’을 중심으로 물류·교통 기반 시설 확대에 특색이 있다. 가덕도 신공항·부산신항·철도를 잇는 이른바 트라이포트(Tri-port)를 구축하고 부산을 경제도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북항·영도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고 가덕도 신공항 일대에는 항공산업을 육성할 방침이다.

반면 박 후보는 ‘산학협력’을 통한 청년 일자리 해결에 특색이 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는데 학생들이 기업 현장에서 연수하며 학점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박 후보는 부산의 23개 대학과 기업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다.

두 후보는 2순위 공약부터 차이가 분명하다. 김 후보는 ‘녹색도시’를 박 후보는 ‘15분 내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내세운다. 김 후보의 ‘녹색도시’는 재난·재해·범죄 등의 위협 요인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해 숲길을 조성하는 식이다. 반면 박 후보의 ‘15분 도시’는 부산을 50개 생활권으로 나누고 권역마다 공공시설을 대폭 조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두 후보의 가장 큰 차이는 3순위 공약이다. 김 후보는 ‘글로벌 해양문화 도시’ 조성을 내세운다. 부산 시민에게 다양한 문화, 여가 활동의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부산 자이언츠 시민 야구단 추진, 돔 야구장 건설이 이 공약에 포함된다. 박 후보는 자신만의 독점 공약으로 도심형 초고속자기부상열차 ‘어반루프’를 내세웠다. 이는 가덕도 신공항에서 북항까지를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수단이다.

우선순위 비교는 시장 임기가 제한된 상황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번 보궐선거처럼 임기가 약 1년 3개월에 불과한 경우 1순위 정책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임기 내 추진 가능한 유일한 공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무총장은 “보궐선거로 당선되는 시장은 예산이 없기 때문에 자기 정책을 집행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며 “인사나 전임 시장이 추진해온 정책을 중단하는 것 정도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5년 이상 걸리는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정책 선거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제도와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유 교수는 “선거법 자체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선거운동 기간을 늘려 후보와 공약에 대한 검증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선거는 시민이 일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고, 정책 공약은 고용계약서를 쓰는 것과 같다”며 “정책을 중심으로 선거를 하면 우리 정치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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