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신 계승합니다, 부동산은 빼고

2021.05.29 17:09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과 지도부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위해 봉하마을에 모였다. 이날 봉하마을에 모인 여권 인사들은 모두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약속했다. 친문·친노 정치인의 SNS에는 한동안 ‘노무현’이 넘쳐났다. 매년 5월 반복되는 풍경이다.

노무현 정신은 무엇일까. 부동산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인 정책은 보유세 강화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 취임 전 인수위원회 시기부터 보유세 강화 정책을 준비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낮은 지지율 국면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조세 저항과 함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세금폭탄론’과 맞물려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 따라 정책을 시행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 효과가 나타난 2008년,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역대 최고치(0.95%)를 기록했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야외전시장에 시민들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야외전시장에 시민들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노무현의 ‘적자’도 보유세는 완화

보유세를 비롯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은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무력화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의 보유세 강화 정책 폐기를 비판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언론을 통해 보유세 강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공약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정권 출범 이후에는 오히려 보유세 인상과 선을 그었다. “부동산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공평과세, 소득재분배 또는 추가적인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2018년 9·13대책을 통해 보유세 인상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인상폭이 낮았다. 지난해 종부세율 인상이 이뤄졌지만, 고지서가 나오기 전부터 여당에서는 보유세 완화론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민주당 의원발 보유세 완화 법안이 올라와 있다. 민주당의 부동산정책에서 ‘노무현’은 사라졌다.

‘친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자리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표명했다. 이 의원 자신이 노무현의 적자임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최근 자신의 정책 비전을 담은 책 <노무현이 옳았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 의원은 책을 통해 세대와 정치, 기술, 교육, 부, 글로벌 시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했는데 여기에는 부동산 분야가 빠져 있다. 이 의원은 “한국은 자산이 부유층에 쏠리는 자산 불평등 현상이 심각하다. 상위 1%에 부자들이 국민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한다. 소수의 사람이 자산을 독식해 다수의 사람이 고통받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서술은 지역 균형발전의 당위와 혁신도시 2.0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노무현 부동산’의 핵심인 보유세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의원은 보유세 완화론자다. 지난 4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1% 안에 매겼던 세금이 종부세”라며 “(과세기준)을 현재 9억원에서 대폭 상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상위 1%에 한정된 세금이니 현행 종부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의원의 1% 종부세 발언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고 사실도 아니다”라며 “앞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을 부정할 수 있나. 종부세 과세 대상이 전체 부동산 소유자의 4%에 달한 시기도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2004년 12월 과세기준 9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통과한 종부세 대상을 다음해 8·31 대책을 통해 6억원으로 강화한 바 있다. 2005년 8·31 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8·31 대책의 대상은 ‘국민의 2%’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참여정부에서 언급한 ‘1%’는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서 제시한 보유세 실효세율 달성 목표(2017년)뿐이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도 보유세 완화 요구

보유세 완화를 주장하는 이 의원의 견해는 당내 소수의견이 아니다. 서울시 민주당 소속 7개구(강남·강동·노원·송파·양천·영등포·은평) 구청장들도 보유세를 낮출 것을 당에 요구하고 있다. 조세 저항과 민심 이반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보유세 완화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회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성남 분당을)은 지난달 종합부동산세 공제액 기준을 공시가격 합산 현행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1가구 1주택은 종부세 적용 기준을 공시가격 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과 재산세율을 낮추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을 비롯해 노웅래, 정청래, 안규백, 김영주 의원 등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보유세 완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친노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마포을)도 1주택자 보유세, 2주택자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지방세·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표 부동산정책의 다른 한 축인 ‘공공임대주택’도 비슷한 처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장기공공임대주택 보급 확대를 추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참여정부에서 공급한 국민임대는 47만호(사업 승인 기준)에 달한다.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임대주택 개발을 추진한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서울시는 ‘서울권역 등 수도권에 대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등 공공부지에 13만2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규 아파트 물량의 상당 부분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할당했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김진표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김진표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공공임대주택도 반대에 부딪쳐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은 즉각 반대 성명을 내고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김 시장은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청사 유휴지에 또다시 4000여호의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과천시민과 과천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도시발전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서부면허시험장이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즉각 반발했다. 정 의원은 SNS를 통해 “제가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반대할 리 있겠냐”면서도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인데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느냐.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전협의 없이 추진하는 방식은 찬성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의 발언을 두고 임대주택 거주자를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언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 의원의 언행은 노무현 정신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공공임대 주거권보다 표를 중시한 발언이다.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라면 공공임대주택 공급 소식을 듣고 ‘우리 지역에는 반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부동산정책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지우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비문’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규제 완화론자’ 김진표 민주당 의원을 내정했을 때부터 예견된 흐름이다. 송 대표는 5월 26일 집중 민심 경청 주간으로 마련된 ‘찾아가는 민주당’ 행사에서 “집값 상승 우려에 그렇게 마음 놓고 하진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규제) 완화하려고 논의하고 있다”며 “집값의 1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산세 감면과 대출규제를 확정지은 민주당 부동산 특위는 다음 단계로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를 놓고 고심 중이다.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시민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일련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퇴행적인 주거 부동산정책’으로 규정하고 민주당의 규제 완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1주택자 기준으로 전국에 종합부동산세 대상 주택이 3.7%에 불과하다. 종부세 완화는 부자 감세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출 규제 완화는 집값을 낮추라는 국민적 요구에 전혀 맞지 않는 ‘빚내서 집 사라’식의 엉뚱한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전강수 교수는 “민주당 정책에서 ‘개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개혁 정당을 표방해온 정당인데 이제는 개혁 어젠다도 사라진 것”이라며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 부동산인데 지금 민주당은 말로만 노무현을 말하고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펼쳤던 정책을 살리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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