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욕설 NO! ‘슬기로운 초등 유튜브 생활’,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

2021.06.05 06:00

지난 1일 서울 잠실종합복지관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한 초등학생 8명은 유튜버들과 함께 ‘좋은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을 익혔다. 유튜버 ‘빨간토마토’(뒷줄 왼쪽 세번째)와 ‘주노준호’(네번째)가 강사로 나서 학생들이 영상 주제를 정하고, 촬영 계획을 잡는 과정을 도왔다. 김기남 기자

지난 1일 서울 잠실종합복지관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한 초등학생 8명은 유튜버들과 함께 ‘좋은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을 익혔다. 유튜버 ‘빨간토마토’(뒷줄 왼쪽 세번째)와 ‘주노준호’(네번째)가 강사로 나서 학생들이 영상 주제를 정하고, 촬영 계획을 잡는 과정을 도왔다. 김기남 기자

■혐오·가짜정보 NO! 새싹 유튜버 키워요

“300만 구독자를 둔 유튜버 되기와 서울대 가기 중 하나를 고른다면?”

지난달 25일 유튜브 크리에이터(유튜버) ‘빨간토마토’ 이승재씨의 질문에 초등학생 7명이 앞다퉈 외쳤다. “300만이요!” “대학은 아예 안 갈 거예요” “유튜버요. 돈도 많이 벌고, (구독자가 일정 수를 넘으면 주는) 골드버튼, 실버버튼 다 얻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론 ‘유튜버 되기’를 택한 학생이 적었지만, 유튜버는 초등학생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2021년 한국 초등학생의 시간은 유튜브를 타고 흐른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일상의 한 축이 됐다. ‘초등 ○학년 ○학기’를 검색해 학습 영상을 보고, 실험 과제를 유튜브에서 미리 살핀다. 게임이나 음악, 애니메이션 등 좋아하는 영상을 찾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초등학생들은 “이제 그만보고 숙제하자”고 말하는 보호자도 유튜브 영상을 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유튜브 시청을 무작정 막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영상언어 세대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학교 안팎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주목받는다. 미디어의 정보에 적절히 접근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아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국립국어원에선 ‘매체 이해력’으로 용어를 순화했다. “다양한 매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초기에 신문과 방송 등에 집중됐던 것이, 지금은 ‘디지털 리터러시’ ‘유튜브 리터러시’ 등으로 확장·분화하고 있다.

‘유튜브 리터러시’ 교육에는 혐오, 차별, 가짜정보 등이 없는 ‘좋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과정이 자주 동반된다. 유튜브라는 문을 잘 여는 법, 문 안의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법, 그리고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는 법을 알아야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이 유튜버의 도움을 받아 직접 좋은 영상 만들기에 도전하는 현장을 찾았다. 이와 함께 ‘혐오·차별 없는 유튜브 방송 만들기’ 수업 등을 하는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커버스토리]혐오·욕설 NO! ‘슬기로운 초등 유튜브 생활’,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

“욕하면 싫어요” 나쁜 영상 구분법 알아야 좋은 유튜버도 돼

초등학교 6학년 수빈이는 지난 1일 유튜브를 보다 밤늦게 잠이 들었다. 보통 하루에 5시간 이상 유튜브를 본다. 부모님과는 공부 영상을 빼고 ‘2시간 시청’을 약속했는데, 지키기가 쉽지 않다. 너무 많이 사용하면 ‘폰압’(스마트폰 압수)을 당했다가 다음날 돌려받는다.

유튜브를 ‘노는 데만’ 쓴다고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는 속이 상한다. 사용시간의 절반 이상은 과제와 공부 관련 영상을 본다. 남은 시간에 좋아하는 게임 유튜버와 K팝 영상을 찾는다. “스마트폰이 제 인생의 ‘절반’쯤을 차지하고, 유튜브는 ‘절반의 절반’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유튜브는 재미있는데 좀 위험하기도 한 ‘스릴있는’ 놀이터 같아요. 궁금한 것, 과제할 때 필요한 것, 즐길 수 있는 것 다 나오잖아요. 가끔 너무 많이 하나 싶을 때가 있긴 해요.”

요즘 가장 즐겨보는 콘텐츠는 게임 전문 유튜버 채널이다. 게임 소개를 재미있게 해주고,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게임을 선정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가끔 게임 유튜버 채널에 들어갔다가 폭력적 게임이나 욕설을 볼 때도 있다. “유튜버가 된다면, 게임 유튜버를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임이나 새로운 게임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거죠. 처음에는 어린이 게임 하다가, 점점 무섭고 폭력적인 게임 선택해서 소개하는 유튜버들이 있거든요. 그런 게 자극적이니까요. 저는 어린이도 볼 수 있고, 욕설도 없는 유튜브를 하고 싶어요.”

집 근처 서울 잠실종합복지관에서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신청했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를 가리고, 직접 영상을 제작하며 활용법을 익히는 수업이다. 수빈이는 “처음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도 어렵기만 했는데, 좋은 유튜브 구별하는 법과 나쁜 정보에 대처하는 법,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살면서 필요한 정보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실종합복지관은 지난 3월 ‘조인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연말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 대상이다. 앞서 한미경 강사가 7차례 ‘미디어 리터러시’ 강의를 했고, 지난달 25일부터는 학생들에게 친숙한 유튜버인 ‘빨간토마토’ 이승재씨, ‘주노준호’ 임준호씨가 공동으로 수업한다. 두 사람은 각각 애니메이션과 반려동물을 다루는 채널을 운영하면서, 여러 기관에서 좋은 유튜브 만들기 관련 강연활동도 하고 있다.

꿈, 취미 달라도 ‘유튜브’로 통해요

초등생 최장 사용 미디어 ‘유튜브’
좋은 콘텐츠 골라 보고 만들어보는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참여 학생들
“나쁜 영상 대처법 등 실생활에 유용”

프로그램에는 지역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8명이 참여한다. 수빈이를 비롯해 작곡을 좋아하는 연서, 야구게임을 즐기는 산희,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은 영상) 운영자가 되고 싶은 예주, 코딩을 배우는 재준, BTS 팬인 민성, 슬라임을 좋아하는 연아,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슬찬 등이다. 이 중 두 명은 직접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올려봤다. 대부분은 스마트폰 이용시간을 보호자가 제한한다. 취미도, 장래희망도, 나이도, 보호자와의 스마트폰 이용약속도 다르다. 그래도 ‘유튜브’는 모두의 공통 관심사다.

지난달 25일 강의에서 “왜 유튜브를 보느냐”고 강사가 묻자, 동시다발로 답변이 쏟아졌다. “재미있어요” “보고 싶은 걸 원하는 때 봐요” “과제하려고요” “게임 하는 데 도움이 돼요” “요리하려고요”….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엔 수십 명의 유튜버 이름을 외쳤다. “내가 보고 싶은 걸 해줘서” “나에게 없는 캐릭터로 게임을 해서” “그냥 재미있으니까” 좋아한다고 했다.

참여 학생들의 하루 평균 미디어 노출 시간은 5시간 정도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TV 등 모든 미디어를 포함한 수치다. 모두는 거의 매일 유튜브 영상을 접한다. 연서는 하루 2시간 유튜브를 이용한다. 일정시간 이상 보면 부모가 앱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을 정지시킨다. 재준이는 하루 1시간, 연아와 산희는 하루 3시간, 예주와 수빈이는 하루 5시간 이상 유튜브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학습영상을 빼면 게임 콘텐츠를 제일 많이 즐긴다. 애니메이션, ‘먹방’,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뮤직비디오 등도 즐긴다.

지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청소년 미디어 이용 실태 및 대상별 정책대응방안 연구Ⅰ:초등학생’ 보고서에는 지난해 초등학교 4~6학년에 재학 중인 전국 청소년 2723명의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다. 응답한 학생의 87.7%는 스마트폰을 보유했다. 다섯 명 중 세 명꼴로 하루 2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하루평균 4시간 이상을 쓴다고 답했다. 유튜브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오랜 시간 이용하는 미디어였다. 응답자의 90.3%가 유튜브를 이용했고, 43.5%는 매일 이용한다고 했다. 유튜브 콘텐츠 중에서는 게임 콘텐츠(31%) 이용이 제일 높았다.

이날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은 좋은 유튜브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를 나름대로 가리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콘텐츠로는 욕설이 들어간 영상을 주로 꼽았다. “욕하는 유튜버들은 싫어요”(연아), “그런데 그런 영상들은 재미있고 자극적이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민성). 학생들은 이어 ‘나만의 나쁜 영상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뒷광고(유튜버가 특정업체에서 대가를 받고 제작한 영상을 유료광고 표기 없이 올리는 행위), 진짜처럼 꾸미는 가짜정보, 다른 사람을 사칭하거나 콘텐츠를 표절했는지 여부를 따진다고 말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유튜브에서 ‘나쁜 영상’을 차단·신고해 추천 알고리즘을 제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유튜브는 2017년 ‘엘사 게이트’를 계기로 모니터링과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기도 했다. 엘사 게이트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를 내세운 선정적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에게 노출된 사건이다. 수많은 이용자가 콘텐츠를 등록·시청하는 장이다보니, 모니터링을 강화해도 한계는 있다. 유튜버들은 이에 더해 추천 영상 알고리즘을 연령별로 더 세분화하고, 나쁜 댓글 정화시스템 등 ‘크리에이터 보호장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스템에만 기댈 수는 없다고 본다. 영상들을 비판적으로 보고, 직접 참여해보는 활동이 그래서 중요하다. “자꾸 나쁜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신고가 누적되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게 되고, 계정이 차단돼요. 그 유튜버를 차단해서 추천 알고리즘에 안 뜨게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에 더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해봤으면 좋겠어요. 유튜브를 시청만 하지 말고, 좋은 영상들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좋은 영상을 만들어서 올려보면 어때요.”(이승재씨)

‘좋은 영상’,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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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제작해보는 것도 판단에 도움
채널 프로필, 개인정보는 쓰지 말고
나만의 개성 담긴 흔하지 않은 걸로
‘생산자’가 돼보면 이해도 높아져

학생들은 앞서 간단한 영상을 만들어봤다. 두 조로 나뉘어 머리를 맞대고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주제를 정했다. 한 조는 ‘게임 중독’, 다른 한 조는 ‘미디어 과소비’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각자 짧은 영상을 만들면서 ‘미디어 과소비 멈춰!’ ‘게임에 중독되면 당신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제부턴 유튜버들과 함께 본격적인 영상 제작을 배운다. 우선 각자 채널 프로필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주의사항부터 배운다.

이씨는 학생들에게 ‘개인정보 넣지 않기’를 강조했다. “내 채널 이름은 나만의 것으로 특별해야 해요. 그렇다고 본명이나 학교 등은 넣지 마세요. 온라인, 특히 유튜브상에서 자기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별명, 하고 싶은 콘텐츠와 관련된 걸로 지어보세요. 아, ○○TV 같은 건 요즘에 너무 많으니까 피해보면 좋겠네요.”

반려동물인 도마뱀과 함께 사는 산희는 ‘동물을 아는 인간’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파충류와 곤충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서는 ‘피아노 치는 아리’라는 채널로 악기로 작곡하는 영상을, 슬찬이는 별명인 ‘졸찬’을 이용한 채널을 만들어 ‘게임 상황극’을 해보고 싶다.

이런 영상들을 욕설 없고 폭력적이지 않게, 재미있는 정보를 담아 직접 만들어보는 게 프로그램 목표다. “저는 피아니스트나 작곡가가 되는 게 꿈이어서,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을 배워 작곡하는 영상을 올리고 싶어요. 유튜브에서 작곡하는 영상들 많이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아이들과 가족 모두가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상이면 좋겠어요.”(연서)

게임개발자가 꿈인 재준이는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 영상’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유튜브에 가끔 ‘스틱파이터’라고 불리는 게임을 올려요. 애니메이션 유튜버를 하면서 게임 콘텐츠도 올리고 싶어요. 폭력적이지 않은 초능력을 쓰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게임이요. SF(과학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도 다 봤거든요. 코딩도 공부하고 있어요.”

“보지 말라”가 아니라 “함께 보자”…‘즐기는 법’ 먼저 알려주자

유튜브 등 미디어에는 한국사회의 고정관념과 차별·혐오 등이 녹아있다. 초등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들은 학생들이 미디어 콘텐츠의 줄거리만 듣고 주인공을 그려보면서 자기 안의 ‘성 고정관념’을 돌아볼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 황고운 교사 제공

유튜브 등 미디어에는 한국사회의 고정관념과 차별·혐오 등이 녹아있다. 초등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들은 학생들이 미디어 콘텐츠의 줄거리만 듣고 주인공을 그려보면서 자기 안의 ‘성 고정관념’을 돌아볼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 황고운 교사 제공

지난 2일 강의에선 영상 주제에 맞춰 촬영계획을 잡아봤다. 앞으로 몇 달간 유튜버 두 명에게 영상 기획과 제작, 촬영, 편집을 배운다. 직접 만든 영상을 학교와 지역사회에 공유하면서 캠페인도 벌일 예정이다.

강사로 나선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생산자가 돼보는 경험’이 영상 세대인 초등학생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튜브는 아이들이 잘 활용하는 법만 알면 좋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 장이 돼요. 남녀노소 모두 열광하는 곳이니 ‘산업’ 성격도 강해서 돈이 된다 싶으면 자극적 콘텐츠도 많이 올라오죠. 영상 중심의 시대이니까 접촉을 막기보다 아이들이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여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영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려고 해요.”(이씨)

임씨도 “학생들이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돼보면 영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좋은 영상을 구분하는 분별력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어떤 영상을 만드는 게 좋고, 어떤 것이 어려운지 스스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혐오·차별, 위험 거르는 눈 밝혀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와 이모지(이모티콘과 이미지의 합성어)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다 담아내지 않는다. 학생들은 캐릭터로 잘 등장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모습으로 포스터를 직접 그리면서 다양성의 의미를 배운다. 황고운 교사 제공

미디어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와 이모지(이모티콘과 이미지의 합성어)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다 담아내지 않는다. 학생들은 캐릭터로 잘 등장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모습으로 포스터를 직접 그리면서 다양성의 의미를 배운다. 황고운 교사 제공

‘미디어 리터러시’ 가장 필요한 영역
혐오·차별 골라내는 눈 길러줘야
성 고정관념·불법영상 폐해 공유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 목표

학교 안에서도 영상 미디어를 바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소속 교사들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평등, 인권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연계한 수업을 진행한다. ‘아웃박스’는 2016년 작은 모임에서 시작해 2017년 정식연구회로 발족한 단체로, 현재 교사 25명이 활동한다.

전체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튜브를 주의깊게 다룬다. 국어 등 과목의 관련 주제와 연계해 한 달에 한두 차례 수업을 한다. 아웃박스 소속 황고운 교사는 “학생들이 유튜브밖에 안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에 뭐했는지 물으면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유튜브를 했다고 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그래서 유튜브를 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일부 영상을 수업자료로 활용할 때도 있다. 대체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가 많이 나오는 영상들이라 활용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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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사는 주기적으로 ‘혐오·차별 없는 유튜브 방송 만들기’ 수업을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콘텐츠에 녹아있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골라내는 눈을 기르는 교육이다. 유튜브 영상이나 광고, 웹툰 등에서 들어본 혐오표현을 학생들이 찾은 뒤 문제점을 스스로 적게 한다. 학생들이 적어낸 혐오표현의 대상은 어린이, 장애인, 인종, 성소수자, 동물, 노인 등 다양했다. 이어 좋은 유튜브 방송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마친 뒤 “준비대로 되진 않았지만 욕설이나 혐오 등이 없는 방송이었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긴장했던 것, 존대말을 잘 쓰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 “좋은 영상과 나쁜 영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등의 소감을 나누며 좋은 영상을 배워나갔다.

“한국 사회의 혐오표현과 차별은 사실 모든 미디어에 녹아있어요. 일부 유튜브 방송에서 ○○충, 어린이를 비하하는 ‘잼민이’, 성차별적 혐오표현이 은연중에 등장하니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수업을 통해 직접 ‘좋은 영상’을 만들어보면서, 혐오와 차별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하려 합니다.”(황 교사)

미디어 속 성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하는 수업도 이뤄진다. 성별이 모호하게 표현된 영상을 보고 성별 유추하기, 미디어 콘텐츠의 줄거리만 듣고 주인공 모습 그려보기 등의 활동이다. 학생들 스스로 성 고정관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줄거리를 듣고 주인공을 상상해서 적을 때 내가 ‘성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놀랐다” “남자든 여자든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고, 핑크색 안경이든 뭐든 ‘남자다운 특징’ ‘여자다운 특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인데 ‘남자 같다’, 남자인데 ‘여자 같다’고 말하거나 차별하면 안 되겠다” 등의 수업 후기를 남겼다.

불법촬영물 문제를 생각해보고 예방 서약서를 직접 쓰는 활동도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우는 교육에 포함된다. 5학년 한 학급은 예방 서약서에 불법촬영물을 촬영·시청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을 동등히 생각하고 디지털 성범죄가 없어지는 날까지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황고운 교사 제공

불법촬영물 문제를 생각해보고 예방 서약서를 직접 쓰는 활동도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우는 교육에 포함된다. 5학년 한 학급은 예방 서약서에 불법촬영물을 촬영·시청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을 동등히 생각하고 디지털 성범죄가 없어지는 날까지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황고운 교사 제공

변화한 환경은 새로운 위험도 가져왔다. 온라인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여 성을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디지털 성폭력이나 불법촬영 등의 위험에서 아동·청소년도 자유롭지 않다. ‘아웃박스’ 소속 교사들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정보교류와 소통이 늘어나는 만큼, 이런 위험을 알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젠더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접목돼서 이뤄지는 수업이다.

온라인 그루밍은 가상의 사례를 함께 들여다본 뒤, 그 친구에게 학생들이 편지를 쓰는 것으로 맺는다.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바탕에 깔고, 최소한의 방어법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불법촬영물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고, 예방 서약서를 직접 만들어보는 활동도 있다. 5학년 한 학급은 서약서에 “불법촬영을 하는 사람을 목격할 시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절대 불법촬영을 하지 않겠습니다. 불법촬영물을 보지 않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겠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을 동등히 생각하고 디지털 성범죄가 없어지는 날까지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초등학생에게 이 교육이 아직 이른가 우려도 했는데, 수업 뒤에 ‘실제로 접근해오는 아저씨가 있었다’는 온라인 그루밍 제보를 받기도 했어요. 초등학생들과 동떨어진 일이 아닌 것이죠. 불법촬영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부분은 교육이 안 됐을 때 부작용이 커요. 교육의 영역 안에 확실히 있는데도 많이 교육되지는 않는 부분입니다.”

‘보지 마’ 대신 이렇게 해보세요

스마트폰 늦게 사주기·이용 제한
정답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아
‘보상’으로 활용하는 것도 자제해야
몰래 보게 되는 것이 가장 나쁘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최대한 늦게 사주기’ ‘스마트폰 이용 제한하기’ 등의 방법은 ‘정답’이 될 수 없고,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유튜버들과 황 교사는 학생들이 유튜브를 슬기롭게 이용하는 데 보호자 등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몇 가지 조언을 전했다.

임준호씨는 보호자가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 유튜브 시청을 ‘보상’으로 활용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와 숙제를 마치면 보상으로 ‘스마트폰 해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곧 ‘유희’로 굳어집니다. 공부의 보상으로 얻은 시간이니, 게임이나 놀이영상에 쏟게 되죠. 유튜브에는 유용한 정보가 많고, 학업과 취미, 관심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영상도 많아요. 다양하게 활용하는 길을 열어줬으면 합니다.”

황 교사는 보호자들이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는지 점검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보고 듣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데, 교사도, 보호자도 채널 3개도 말하지 못하는 때가 많죠. ‘보지 말라’고 할 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겁니다. 함께 보면서 어떤 영향을 줄지 같이 점검해야 해요. ‘이 채널은 나쁘다’라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시청 기회를 열어주고, 좋은 채널을 보호자가 소개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함께 본 채널을 평가할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유튜버에 대한 ‘비난’이 되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황 교사는 “무조건 안 좋다고 하면 몰래 보게 된다”면서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숨기지 않도록, 문제 있는 부분과 좋은 부분을 분리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흥미에서부터 시작되는 대화는 그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며 자주 곱씹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가 학생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심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오만한 거죠. 학생들이 훨씬 빠르고, 유연하거든요. 유튜브 관련 수업을 할 때도 학생들 관점과 흥미에서 시작해서 풍성하게 대화를 나누는 쪽으로 하려고 해요. 모든 교육이 그렇지만, 특히 이 교육은 학생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씨는 유튜브를 ‘놀이터’에 빗대 설명했다. “유튜브는 아이들이 작품도 만들고, 다양한 세상을 만나는 ‘놀이터’예요. 그런데 완벽하게 안전한 놀이터는 없잖아요. 모래사장에 가끔 철사나 가시가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무조건 놀이터에 가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위험한 것을 피해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려줘야죠. 마찬가지로 유튜브에서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오늘은 이거 같이 보자’라면서 같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고, 좋은 걸 가려내는 눈을 길러준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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