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이사람]“맹목적 反日도 위험하다”

2000.08.16 18:20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펴낸 박유하 교수-

“1985년 2월 한 교수가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풍수침략’의 대표적 사례인 일제의 ‘쇠말뚝’을 발견해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쇠말뚝 제거 운동이 언론의 부추김과 공무원의 협조 아래 범국민운동으로 번져나갔지요. 당시 독립기념관에 기증된 쇠말뚝을 보러 갔는데 담당자가 ‘고증이 되지 않아 지금은 전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종대 박유하 교수(43·여·일본문학)가 세기말과 뉴밀레니엄 한국에 대한 정신분석서인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사회평론)를 펴냈다.

박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이 일제에 대한 피해의식 탓에 맹목적인 민족주의·국가주의에 빠져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의 감정적·비약적인 반일 담론은 오히려 피해·열등의식을 공고히 하며 폭력주의·군국주의적 성향을 부추긴다는 진단이다.

박교수에 따르면 93년은 ‘세기말 한국의 민족주의 융성의 원년’이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고대시가집 ‘만요슈’(萬葉集)를 죄다 한국어로 풀이한 이영희씨의 ‘노래하는 역사’를 연재했다. 일본을 핵폭탄으로 응징하는 김진명씨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 등은 밀리언셀러가 됐다.

박교수는 ‘노래하는 역사’의 경우 학문적 근거가 희박한 ‘소설’로서 친일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던 일선동조론을 한국의 우월감을 보장하는 반일 이데올로기로 역이용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내친다. ‘일본은 없다’는 일부 일본·일본인에 대한 오해·왜곡을 일반화시킨 데다 이같은 ‘타자(他者)의 부정’을 ‘자신의 긍정’으로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고원정씨의 소설 ‘대한제국 일본침략사’ 등도 “우리도 기회만 된다면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싶어하는 ‘침략적 폭력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한다.

신용하 교수(사회학)는 ‘경직된 일본관을 지닌 서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신교수의 논법은 처음부터 일본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한·일어업협정이나 독도 문제 등을 두고 ‘감정’에 호소할 뿐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토지’의 작가 박경리,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민속학자 주강현,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김경일 제씨의 논리를 실명으로 비판하고 있다.

-실명 비판인데.

“겁난다. 하지만 내 말에 책임을 지겠다. 특정 인물·국가를 비판·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방해하는 요소를 파헤쳤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지배·피지배의 경험이 있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잊고 은폐하자는 게 아니다. 일본은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도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이성적 판단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을 맹목적으로 만드는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박교수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호의적인 일본인들을 친한파라 한다면 그런 맥락에서 나는 친일파”라면서 “맹목적 반일·반한이 아니라 제대로 된 비판을 가차없이 하는 친일·친한파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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