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보험의 성공 조건

2008.06.23 17:56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

미국산 쇠고기 논쟁 과정에서 일반에게 친숙해진 전문용어가 있다. ‘위험심리학’은 위험노출의 자발성 여부에 따라 개인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위험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선택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생 흡연을 한 사람은 폐암에 대해 스스로는 예외라 믿으면서도 “그래도 걸린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리면 받는 충격은 한층 크다.

위험심리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위험 발생 확률의 높고 낮음보다 그 위험의 존재 자체가 결과하는 패닉 현상 때문이다. 사회제도에 따른 위험의 확률이 극히 낮더라도 사회구성원의 선택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험일 경우에는 필요 이상의 사전 준비가 요구됨을 시사한다.

‘노인성 질환’에도 위험심리학이 작동한다.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치매·중풍에 대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가끔 비싼 건강진단 프로그램을 사거나 겉만 번지르르한 민간보험회사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노인성 질환은 당사자뿐 아니라 수발하는 가족에게도 큰 희생을 요구한다. 한번 발병되면 완치가 어렵고, 수발기간이 장기화된다. 경제활동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수치심과 사회단절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등 사회적 비용이 이만저만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비율은 10%를 넘어선다. 노인성 질환은 쉬쉬하던 개인의 고통에서 심각한 사회적 질환으로 이미 바뀌어 있다.

다행히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된다. 건강보험이 질병에 대한 치료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라면, 노인요양보험제도는 치매·중풍 등 혼자서 일상생활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신체활동과 가사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고령 인구에 대한 수발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위험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치매·중풍이 온다 해도 나를 보살펴 줄 사람과 제도가 있다”는 인식은 심리적 안정을 상당히 줄 것이다.

처음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추가적 보험료 부담, 시설 부족, 혜택 노인의 규모 등 사회적 스트레스는 분출되게 되어 있다. 일본은 개호보험을 위해 국민이 소득의 1% 정도를 보험료로 부담하고 노인들도 연금의 일부를 낸다. 독일은 1.7%를 부담한다. 하지만 우리의 보험료는 소득의 0.2%에 불과하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사회적 부담은 낮은데 서비스만 풍부하게 할 마술의 방정식은 없다. 그렇지만 취약 노인의 절실한 수요는 작은 재원으로라도 사회가 나서서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을 돌이켜볼 때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안별로 장단점을 파악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최대 다수를 만족시키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지혜와 노력이다. 노인성 질환은 ‘골프장에서 골프 치다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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