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공정위 직원 가로막고 증거인멸

2012.03.18 21:34
김다슬 기자

조사방해 첩보작전 방불… 역대 최고 4억원 과태료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역대 최고 액수인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삼성전자의 조사방해는 고위임원부터 용역업체 직원까지 다수가 가담해 미리 마련해둔 시나리오에 따라 조사원들의 출입을 막고 자료를 폐기하는 등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공정위는 18일 “삼성전자에 조사방해와 관련한 역대 최고 액수인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공개한 삼성전자의 조사활동 방해 실태는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증거인멸 노력은 내부 보고문서, 폐쇄회로(CC)TV, 임원 간 e메일 등을 통해 드러났다.

지난해 3월24일 오후 2시20분, 공정위 직원들은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유통과 관련해 가격을 부풀린 혐의를 잡고 수원사업장에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보안담당 용역업체 직원 11명에게 가로막혔다. 신분을 밝혔지만 50분간 몸싸움까지 벌였다. 결국 조사요원들은 오후 3시10분이 돼서야 조사 대상 사무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핵심 자료가 들어 있던 컴퓨터(PC) 3대는 오후 2시40분에서 3시 사이에 텅빈 PC로 교체된 상태였다. 출입이 지연되는 동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박모 전무의 지시에 따라 증거인멸이 이뤄진 것이다.

공정위가 입수한 삼성전자 내부보고 e메일에서도 ‘지원팀장 지시로 공 PC로 교체했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오후 2시51분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직원들이 서류를 폐기하고 책상 서랍장을 이동하는 장면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이 사건 이후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보안규정을 강화하기까지 했다. ‘사전연락이 없으면 정문에서부터 진입을 막고’ ‘바리케이드 설치’ ‘주요 파일에 대해 대외비 지정 및 영구삭제’ ‘자료는 서버로 집중할 것’ 등이다.

무선사업부 부서장인 김모 상무는 사건 당시 수원사업장에 있었음에도 ‘서울 본사에 출장 중이다’라며 조사를 거부했다.

내부 보고 문서에는 ‘사전 시나리오대로 김 상무는 서울 출장 중인 것으로 응대하고 조사관의 의도를 명확히 확인한 후 다음날에 조사에 응하라’라는 지시가 있었다. 김 상무가 부사장에게 보고한 e메일에도 이 내용이 담겨 김 상무 윗선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상무는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되자 갤럭시 탭의 가격정책, SK텔레콤 관련 파일을 삭제했음을 시인했다.

공정위가 조사방해 정황 파악에 나서자 삼성전자는 허위자료 제출로 또 한번 눈속임을 시도했다.

삼성그룹의 조사방해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1998년부터 작년까지 공정위가 주요 조사방해 행위와 관련해 과태료를 부과한 15건 중 5건이 삼성계열사에서 일어났다.

공정위는 “불공정행위의 적발·시정을 어렵게 하는 기업에는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현장진입 지연 등에는 형사처벌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폭언, 폭행, 현장진입 지연·저지 등 조사방해에 형벌(3년 이하 징역, 2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