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치에 밀린 문화

2012.03.23 21:05
유인화 논설위원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앙드레 말로(1901~76)는 ‘강력한 문화국가’를 표방한 드골 정권에서 1959년부터 10년 동안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프랑스의 문화정책 인프라를 마련했다. ‘국력은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 그는 유럽 다른 나라의 도시들이 윤택해지는 동안 쇠퇴해가는 파리를 보면서 “프랑스의 경제적 미래는 문화적 영향력과 문화유산에 달려 있다”고 주창했다. 1962년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미국 국립박물관 나들이를 성사시켜 두 달 동안 170만명의 관람객에게 ‘문화강국 프랑스’를 알렸다. 화가 샤갈이 그린 파리오페라하우스 천장화도 말로 장관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프랑스 문화의 힘을 키운 말로는 1996년 자신의 20주기를 맞아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이장되면서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도 이어령, 김한길, 이창동, 김명곤, 유인촌 등 문화인들이 문화부 장관에 올랐다. 문화의 21세기에 문화계를 보듬고 문화현장의 소리를 되새김질하라는 취지의 인사였다. 공과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 경쟁력은 문화에서 시작된다’는 슬로건이 반영됐다.

이번에 발표된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보면 문화를 홀대했다는 느낌이 든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후보 46명 중 문화계 후보는 두 명이다. 그 중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근무한 관료 출신이다. 통합민주당의 후보 40명 중 문화계 인사는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뿐이다. 통합진보당의 후보 20명 중에는 문화예술인이 없고, 자유선진당 후보 20명 중에는 송아영 충남교향악단 운영위원이 속해 있다. 제19대 국회 비례대표 54석 가운데 문화계 몫은 빤하다. 국가 간 문화전쟁의 전략적 대응이 다급한 시점에 정당들은 정치·사회적 이슈의 인물을 선택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문화를 밀어냈다.

각 당의 공약을 봐도 문화정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한류 열풍의 뿌리가 문화임을 인정하면서도 문화가 경제살리기의 원천임을 잊었다. 올해 한류효과 추정액이 7조~10조원이고, 걸그룹 ‘소녀시대’가 3년간 번 돈이 217억원임을 들먹이지 않아도 문화산업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 명단은 ‘문화대국이 강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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