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2012.04.23 21:24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외국인노동자 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상 속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다. 공식통계만 보더라도 중국동포 47만명을 포함해 외국인체류자 142만, 장기체류자 100만, 외국인노동자 55만명에 이른다. 그 규모는 계속,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과의 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다문화주의’ 담론이 넘쳐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외국인노동자 문제의 실상은 어떠한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봐야 할까?

[최장집칼럼]외국인 노동자,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가지고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용수리에 있는 한 비닐하우스 농장이었다. 로즈마리, 제라늄, 페퍼민트 등 300여종의 허브식물을 재배해 가까이 위치한 송파지역 화원들과 양재동 꽃시장에 공급하는 이 농장의 작업은 베트남과 중국에서 온 대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전담했다. 베트남 중부 니얀시가 고향인 30대 후반의 하이는 거의 5년간 이곳에서만 일했다고 한다. 그는 농장 내 비닐하우스 가건물 숙소에 살면서 하루 열 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 쉰다. 이제는 상당한 기술자가 돼서 월 18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의 노동조건을 만족스러워하는 그에게 가장 바라는 것을 묻자, “한국에 법적으로 더 체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트남의 같은 지방에서 온 화라는 이름의 여성노동자는 체류한 지 3년째가 됐고 120만원을 받는데, 그녀의 바람도 같았다. 외국인노동자에게 허용된 법적 체류기간은 5년이고 이제 하이는 두 달이 남았다. 송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기에 그는 이 두 달 안에 불법체류자로 일을 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귀국하느냐 하는 진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같은 용수리에서 휴대폰과 카메라 부품제조 및 광택내는 일로 3차 하청공장을 운영하는 최길동 사장은 나를 안내해주면서, 엄격한 체류기간의 제한은 이 지역 외국인노동자들이 직면한 최대 문제라고 말한다. 중국동포 노동자들의 사정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옌지 화전시에서 왔다는 70대초반의 김영조 할머니는 12년 전 한국에 와 미나리공장에서 일했고, 이 농장에 온 지는 9년이 됐다고 하는데, 여권 체류기간이 십년이어서 다시 십년을 갱신했다고 한다. 농장이 식당보다 훨씬 일하기 좋다고 하는 김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 모두 중국에 살고 있지만, 형편이 허용하면 자신은 한국에 남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날 인터뷰에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보통 한국 국적이 없는 모든 노동자를 외국인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합법적 취업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법적지위의 차이로 인해 중국동포 노동자와 그 밖에 외국인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동포 노동자가 아닌 외국인노동자들은 5년 노동시한이라는 장벽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는, 법의 취지가 그것을 의도했든 안 했든, 이들을 법의 보호 밖으로 내모는 효과를 갖는다. 근로기준법 6조는 ‘국적’이 다르다고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국적의 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법 조항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적용될 리 만무하다. 이러한 환경은 억압적인 고용관계와 더불어 임금체불, 산업재해, 구타, 차별, 성폭행과 같은 인권침해 문제를 불러왔다. 법의 영역 밖에서 고립무원에 처한 그들은 인권침해행위에 항의하는 권리주장이나 단체행동은 고사하고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될까 두려워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활동 공간을 좁게 한정한다. 이때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생살여탈권을 쥔 이 제도의 집행자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다면, 상황은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 최 사장은 출입국관리소 사복경찰관들의 부정부패 사례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경우는 한 사람이 한 번에 500만원씩 3, 4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뜯어가기도 했단다. 이러한 공직자비리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몸 바쳐 일한 고통스러운 노동의 대가를 빼앗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방문한 또 다른 곳은 가리봉동에 위치한 ‘지구촌사랑나눔’센터였다. 미취업 노동자와 숙소가 없는 남녀노동자들이 100명 넘게 먹고 자는 대규모 식당과 쉼터, 병든 노동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이들이 갈 수 있는 교회, 아이들 학습실, 노동상담과 취업소개 등 외국인노동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진짜 종합센터였다. 헤이룽장성 영안에서 온 계인숙 할머니는 김포에 있는 가방공장과 대전에서 식당일을 한 경력이 있고, 지린성 연길에서 온 김용철씨는 건설공사의 바닥미장일이 전문으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인천공항 확장공사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온 이들은, 한때 불법노동자였으나 2004년 이후 재외동포법 개정, 방문취업제 도입 등의 제도변화에 힘입어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센터 내에 있는 중국동포교회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인 미샤는, 외국인 불법노동자의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사마르칸트에 가까운 가르시가 고향이고, 결혼해서 두 아들을 둔 그는 지금은 40대 후반이지만 13년 전 젊은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원단공장, 미싱회사, 가축농장 등 여러 종류의 직장에서 월 20만~30만원밖에 못 받고 일했다고 한다. 그 사이 그는 불법노동자가 됐고, 어느 날 건설공사판 목수 일을 하던 중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고관절을 다쳐 일을 못한 지 벌써 4년이 됐다고 한다. 결국 이곳 센터에 의탁해 기약 없이 살고 있는 신세가 됐다. 미샤는 서툰 한국말이지만 “외국인들은 너무 힘들어. 불법 무서워. 중국동포들은 지금 합법화됐어요”라며 탄식한다. 왜 수술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돈도 많이 들고,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큰 수술이어서 무섭다고 말한다. 돈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불심검문 때문에 건물 밖을 멀리 벗어나는 것도 무섭다고 한다. 목발을 짚고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 센터를 운영하는 김해성 목사는 지난 20여년 동안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과 지위향상을 위해 헌신해 온 진정한 의미의 인권운동가였다. 한때는 외국인노동자의 90%가 불법이었고, 인권침해가 다반사여서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하더라도 김 목사를 필두로 여러 인권운동가들이 정부당국에 수없이 항의하고 탄원하고 이슈를 만들면서 경찰에 맞고, 구속 수감되는 희생이 있었다. 최소한의 인간애를 배워 나가는 데 이들 선각자들에게 빚진 바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과 사회보호 확대라는 면에서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는 게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최근 출간된 이세기 시인의 <이주, 그 먼 길>(후마니타스) 역시 외국인노동자들의 꿈과 현실 속에서 그걸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먼 길도 필요하다면 재촉해서 가야 할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복지체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외국인노동자도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사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그것은 사용자단체와 노조가 나설 일이다. 외국인노동자 보호입법도 필요하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피해서는 안된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노동자 유입을 개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일정한 제한이 없을 수 없겠지만, 고용주의 신원보증을 통해 고용허가를 연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수는 있다. 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외국인노동자 청원을 전담 처리하는 지역노동위원회나 노동법원을 설치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부문이나 3D업종에서는 외국인노동자의 공급을 더 원하는 반면, 건설업에서는 내국인노동자의 고용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업종별 고용쿼터제를 두거나 노조와 사용자단체 간의 협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 뭐든 안되는 것은 없다. 외국인노동자의 합법화를 위한 제도개선은 중요하다. 이 문제가 정책적 필요에서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도덕적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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