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지킨 사람’ 죽이는 두 가지 말

2012.07.06 21:29 입력 2012.07.06 23:40 수정
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뿐이라 배웠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킨다는 건 중심을 갈무리하고 의지의 곁가지를 실천의 힘으로 키워나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념의 강자는 주변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천리를 갑니다. 신념의 강자는 신념을 키우는 강자입니다. 사색과 공부를 늦추는 법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겉귀로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하는 데 진지하고 실천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학습목표에 철저한 사람은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옳고 정당한 일을 한다는 자기긍정과 헌신과 실천으로 세상을 떠밀고 간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가족들의 고생과 생활능력이 없다는 주변의 비아냥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로]‘신념을 지킨 사람’ 죽이는 두 가지 말

신념의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너는 나쁜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쁜 놈은 뭘 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이익보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언제나 꼼수를 쓰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자기 편의 이해에 충실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은 이것이었습니다. 선거가 총체적 부실·부정이었고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다 사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 나쁜 놈들입니다. 대의는 없고 출세만 있는, 목표를 위해서는 부정을 가리지 않는 집단과 사람으로 낙인되었습니다.

‘내 정녕 서서 죽더라도 무릎 꿇고 구걸하지 않겠다’는 기개와 의지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짧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단칼에 허공에 사라졌습니다. 맞아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로 살았던 인생의 신념이 한순간 부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나도 이런 잘못을 했다, 선거시스템이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투표의 근본적 한계는 이런 것이다라고.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당 체제를 개선할 것을 논의했으면, 그 과정에서 책임이 나오고 그 방법이 사퇴였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부정이 없는데 사퇴한다, 너는 총체적 부정의 당사자인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 이렇게 접근한 겁니다. 흔히 당권파라는 이름으로 한 물의 한 고기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팔았습니다. 신념을 밥처럼 먹고사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습니다. 박영재 당원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두 번째 참기 힘든 비판은 너는 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며 자신의 몸으로 노동합니다. 나라가 사대를 하면 식민지가 되고 개인이 사대를 하면 머저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큰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기대고 이전에 고루한 이론과 논리를 비판 없이 따라하는 것을 사대와 교조라고 합니다. 종북이라는 말은 사대와 교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꼭두각시처럼 종처럼 산다는 겁니다. 나쁜 것도 북한이 시키면 해야 되고 좋은 것도 북한이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종북은 무뇌아의 다른 표현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종북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종북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6·15 선언을 준수하라고 말하면 종북입니다. 북한의 인권, 핵무기 개발, 권력승계에 대해 일본의 산케이신문이나 한국의 조선일보처럼 말하지 않으면 종북입니다.

종북이라는 말의 폭력성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듦과 동시에 그 반대편의 줄에 서지 않으면, 내가 당신 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 척결대상이 되는 집단 이성의 마비에 있습니다. 농협 비료창고에 가서 남들이 한 배미에 비료를 몇 포대 뿌리느냐고 직원에게 묻고 그것대로 사가서 그것대로 뿌리는 농부는 바보입니다. 모내기한 시기가 다르고 흙의 성질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밑거름이 다른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거리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들도 다 애국자입니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도 남도 끝자락 강진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도 애국자입니다. 강진 성전면 청년회에서는 월례회의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성전면 농민회에서 영농발대식을 할 때는 ‘농민들의 영원한 애국가’ 농민가를 부릅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장차관들이 국무회의때 부르는 애국가는 애국이고 공무원 노동자가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는 게 반국가적 행위라고 헌법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나라사랑하는 방법까지 내 방식과 관점이 아니면 다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입니다. ‘이 글을 보니 당신도 당권파군’, 누군가 말하면 저는 당권파임을 자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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