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명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

2012.08.10 21:22

외교 역시 국내정치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외교행위든 국익의 엄밀한 잣대에서 벗어난다면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돌아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를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나라가 문제삼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독도 방문을 하지 않았다. 한·일관계의 급속한 악화 등 국익에 적잖은 손상을 입힐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 방문을 단행했다면 그것이 가져올 국가적 손익에 대한 숙고와 무거운 고민 끝에 내려진 결단이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내놓은 배경설명을 보면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그동안 일본의 과거사 억지 때문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노다 요시히코 일본 내각은 지난달 말 채택한 올해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거듭 명시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일본의 주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방위백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시 2005년 이후 8년째 한 구절도 바뀌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이 사상 처음 독도를 방문해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불과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국민적 반발을 무릅쓰고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으려 할 정도로 한·일관계를 중시했다가 느닷없이 일본이 가장 꺼리는 독도 방문 카드를 꺼냈다. 냉·온탕을 오가는 듯한 반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양국관계가 상당기간 겉돌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폐해를 남길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오히려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세계에 널리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더욱 관심을 갖게 될 독도의 분쟁지역화는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우익이 가장 고대하고 있을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어제 독도 방문길에 “취임 초부터 오려고 했는데 안됐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의구심이 든다. 이 대통령은 되레 취임 초기부터 ‘(한·일 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을 줄곧 강조해왔다. 첫 3·1절 기념사에선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주목받지 못하는 임기말 대통령에게 독도를 둘러싼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것만큼 효율적인 카드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20%에도 못미치는 지지를 받던 청와대의 주목도를 일거에 높였다. 하지만 ‘역사적 독도 방문’의 흥분이 가라앉고 난 뒤 냉엄하게 내려질 평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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