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집행정지, ‘힘센 악인’에게 주는 특별사면?

2013.04.24 21:49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지난 일요일 밤 MBCTV <시사매거진 2580>이 방송한 ‘무기수 윤 여인의 이상한 형집행정지’의 고발 내용은 충격적이다. 부산지역에 거점을 둔 재벌 제분기업 회장 부인인 윤씨는 2002년 3월 발생한 ‘법대 여학생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이다. 윤씨는 자신의 판사 사위가 사촌 여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엉뚱한 오해를 한 끝에 두 명의 남자에게 거액을 주고 살인을 교사했다. 그것도 얼굴과 머리 부위에 공기총을 6발 쏴 마치 처형하듯 처참하게 살해하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윤씨는 피살된 여학생의 아버지도 납치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이 밝혀졌고, 두 명의 살인범을 중국으로 도피시킨 뒤 북한으로 월북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국제 수사공조로 도피한 살인범들이 붙잡힌 뒤 모든 진상이 밝혀졌는데도 윤씨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던 끝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윤씨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감된 2명의 살인범과 그 가족을 압박해 ‘윤씨가 살인청부를 했다는 법정진술은 거짓, 위증이었다’고 허위 자백을 하게 만든 뒤 이들을 고발했다. 이들이 ‘위증죄’의 유죄판결을 받으면 자신의 살인교사 혐의가 벗겨져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인범들의 ‘위증’ 자백은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무위로 돌아가고 윤씨는 교도소에 무기한 머물게 되었다.

[표창원의 단도직입]형집행정지, ‘힘센 악인’에게 주는 특별사면?

그랬던 ‘악인 중의 악인’ 윤씨가 교도소에 없다. 대신 하루에 수백만원의 입원비를 내는 초호화 병실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2007년부터 거의 대부분 수감생활을 최고급 건강관리와 안락한 휴양을 하며 ‘벌 대신 상’을 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의들마저 윤씨의 형집행정지 사유가 된 의사의 소견서 내용과 그녀의 행동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며 고개를 젓는다.

‘형집행정지’는 수감자가 ‘심신의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을 때, 혹은 수감생활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때, 검사의 지휘에 의해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제도로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다. 의사의 소견서 등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 판단과 결정은 ‘검사 마음대로’다. 엄연히 3권이 분립된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확정판결로 수감된 범죄자들을 행정부 공무원이 일시적이나마 ‘풀어주는’ 대단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결정이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최시중, 천신일 등을 석방 혹은 복권한 ‘특별사면’ 못지않은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알려진 형집행정지 사례를 보면 유독 권력자와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기간도 ‘무기한’인 예가 많아 ‘법치주의’가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5공 비리의 핵심’,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태광그룹 이선애 상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이다.

전경환의 경우 2010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현재까지 ‘3년여 동안 지속적 형집행정지’ 상태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 소재조차 불분명하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지난해 8월에는 변호사가 ‘잘 아는 검사를 통해 형집행정지를 받게 해주겠다’며 수감자로부터 8600만원을 가로채 사기죄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검찰은 수년간 부당하게 초호화 요양을 즐기고 있는 전경환과 악질 청부살인범 윤씨를 당장 교도소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들의 ‘무기한 형집행정지’ 과정에 개입한 검사와 검찰 관계자, 의사와 병원들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해 불법사실이 발견되면 처벌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연상케 하는 검사의 ‘형집행정지’ 결정권한에 대한 사법적 혹은 민주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법 앞의 평등’이 보장되는 법치국가임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국가와 정부, 국민에게 큰 손실을 안기는 ‘신뢰의 위기’는 ‘사법 정의의 훼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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