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빌려준다더니 장기 팔게 만드는 방글라데시 소액대출

2013.10.29 22:18

20% 넘는 고금리에 연대보증

체납자 집에 눌러앉아 협박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쪽으로 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칼라일은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주민 무함마드 아크흐타르 알람(33)은 몇 해 전 소액대출사업을 하는 시민단체 8곳으로부터 10만타카(약 153만원)를 빌렸다. 화물차를 운전해 돈을 벌지만 20%가 넘는 고리의 대출금을 갚기 어려웠다. 대출을 대출로 갚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결국 중개업자에게 40만타카를 받고 장기 매매를 했다. 알람은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어 신장을 팔기로 동의했다”며 “가난하고 도움받을 곳이 없어서 이런 일에 내몰렸다”고 28일 BBC에 말했다. 그는 수술 후 17일 만에 다카의 한 병원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왔지만 받은 돈은 약속한 금액에 못 미쳤다. 수술 후유증으로 부분 마비와 함께 한쪽 시력을 상실해 일조차 구하기 어려워졌다.

빈민과 여성 자활을 위해 무담보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대출자들을 장기 매매로 내몰고 있다. 상업 은행보다 훨씬 높은 20~27%에 이르는 고금리 상환 구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장기 매매 실태를 12년 넘게 조사해온 모니르 모니루자만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인류학과 교수는 “소액대출의 문제점이 통제 불능 상태에 다다랐다”며 “빈민들이 대출금을 갚을 수 없어 장기를 파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73)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과 방글라데시 농촌발전위원회(BRAC)를 비롯한 소액대출기관 직원들이 종일 체납자의 집에 눌러앉아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다고 전했다.

소액대출기관이 ‘풀뿌리 착취 기관’으로 변질되면서 대출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의 부채 위기도 심각하다. 그라민 은행을 비롯한 소액대출기관은 대개 대출자를 5명씩 짝지어 연대보증을 서게 하는데, 대출을 갚지 못하면 이들이 대신 갚아야 한다. 당연히 빚을 갚지 못하면 이웃의 비난을 받게 된다. 대면 사회인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을 모욕하는 것은 가족 전체를 욕보이는 것으로 여겨져 여성들은 이를 피하려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이 때문에 대출자 대부분은 자산을 증가시키지 못했으며, 약 3분의 1은 오히려 감소했다.

방글라데시에선 그라민 은행을 비롯해 약 700곳의 시민단체들이 소액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말로는 농민들이 농사를 시작할 초기 자금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대출 규모가 너무 작아(평균 114달러) 또 다른 대출을 받게 유도해 ‘대출의 덫’에 빠뜨리고 있다. 실제 1997년 이후 2011년 12월까지 약 3400만명이 이를 이용했지만 여전히 2600만명이 하루 생활비 1.25달러 이하의 빈곤선에 머물러 있다. 반면 소액대출의 자본수익률은 20%를 상회하면서 월가 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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