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인가 기생인가

2013.11.11 21:16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진보당 해체하려는 박근혜가 무서워!”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 장난기를 섞어 답한다. “주사파가 위험하다 생각하는 걸까 이정희에 대한 순수한 응징일까.” “순수한 응징! ㅎㅎ” “나름엔 얼마나 힘들겠어. 아버지 같았으면 간단하게 처리했을 텐데 민주화가 되어놔선 명분 만들어야지 여론 살펴야지. 공화정에서 살아가는 공주의 애환이랄까.” “얼씨구.” “농담을 늘어놓은 건 이명박을 통해 박근혜를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우리의 습성이 못마땅해서야. 남 욕으로 우릴 정당화하는 것 그만하고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전망을 이야기하자고.”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싸움인가 기생인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좌파가 ‘진보’의 이름으로 반이명박 운동에 참여하게 된 건 대략 이런 정조였을 게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보면서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구나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을 보니까 정권에 따라선 세상이 완전히 망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이명박은 충분한 악(惡)이었지만 동시에 추(醜)였기에 그의 말과 행태는 좌파들을 그야말로 환장하게 만들었다. ‘이명박이 한국 사회를 30년 전으로 만들었다’는 식의 말은 과장이었지만(물론 이명박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그러나 사회를 30년 전으로 만들려면 ‘30년 전 수준의 국민’이 필요했다.) 그의 추악한 행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거개의 좌파가 반이명박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명박에 치를 떨고 이명박 욕하기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거듭되면서 반이명박 운동은 자기 내용을 잃고 ‘이명박 욕하기 누가누가 잘하나’ 잔치가 되어갔고 운동의 주도권은 이명박에게 넘어갔다. 반이명박 운동의 열기는 전적으로 이명박이 얼마나 문제를 제공해주는가에 달리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명박이 반이명박 운동의 실질적 리더가 된 것이다. ‘모든 건 가카덕’이라는 김어준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복종은 존경의 태도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경멸의 태도로도, 오히려 더 공고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반이명박 운동으로서 진보는 대략 세 단계로 무너졌다. 첫째, ‘이명박이 왜 당선되었는가’를 화두로 하는 사회적 성찰이 사라졌다.(누구든 이명박만 욕하면 손쉽게 정의와 진보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왜 성찰이 필요한가.) 둘째, 모든 사회 문제, 심지어 이전 자유주의 정권에서 그대로 이어져온 문제까지도 이명박 탓이 되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분석이 사라졌다. 또한 모든 토론과 담론이 이명박 욕하기로 귀결하면서 모든 토론과 담론은 이명박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했다.(고작 이명박을 욕하는 데 무슨 진지한 토론과 담론이 필요한가.) 셋째, 그런 당연한 귀결로 진보의 다양하고 진지한 대안과 전망들이 사라졌다.(‘닥치고 정권교체’ 외엔 다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소리로 치부되었으니.)

그런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긴 어려웠다.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 투표한 대중에게 실망을 토로했지만 관점을 바꾸어, 대중은 왜 진보에 투표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10년 집권 역시 실망스럽긴 매한가지였던,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오로지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반감만 이용하여 도덕적 우위와 희망을 말하는, ‘이명박 욕하기’를 ‘박근혜 욕하기’로 바꾸는 것 말곤 달라진 것도 전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중은 왜 투표했어야 할까. ‘이명박도 싫고 이명박 욕만 하는 놈들도 싫은’ 대중의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싸움인가 기생인가

▲ ‘욕과 조롱의 잔치’에 빠진 진보는
지배체제가 그리도 바라던
‘진보의 이상적 죽음’ 문턱에 다다라

결국 오늘 진보에 남은 건 한 개의 앙상한 구호뿐이다.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상식이 위협받을 때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식을 말한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 말곤 내세울 게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오늘 진보는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 말곤 내세울 게 없다. 그런 진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적이 최소한의 상식을 파괴해주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진보는 지배체제가 바라는 ‘민주화 이후 진보의 이상적인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진보당, 전교조, 전공노… 다들 말하듯 박근혜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가 심상치 않다. 여론을 살펴가며 계획한 바를 실행해나가는 치밀함과 과단성이 이명박과는 격이 다르다. 진보에 성찰과 자기 내용과 전망이 없다면, 이명박을 ‘쥐’라고 욕한다고 달라진 게 없었듯 박근혜를 ‘댓통령’이라 조롱하고 ‘독재자’라 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반이명박 운동이 ‘이미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에 머물렀듯 반박근혜 운동은 ‘이미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에 머물 것이다. 반이명박 운동의 실제 리더가 이명박이었듯 반박근혜 운동의 리더는 박근혜일 것이다. 욕하고 조롱하기야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욕하고 조롱하기 전에 차분한 질문이 필요하다. 진보는 박근혜와 싸우고 있는가 박근혜에 기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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