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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GMO 표시제

2014.02.23 21:10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국내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표시제도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다시 한 번 무산됐다. 2월 임시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는 GMO 표시제도의 확대 시행을 위해 발의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다. 전문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찬반양론 진영 간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한다. 찬성 측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소비자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반대 측은 표시 범위를 확대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게 지불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월 국회에서는 소비자의 권리가 경제논리에 밀리는 양상이다.

[과학 오디세이]표류하는 GMO 표시제

소비자는 왜 GMO 표시제도에 관심을 가질까. 표시가 없으면 식품에 GMO가 포함돼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대부분의 GMO는 콩과 옥수수이다. 수입 콩 가운데 GMO는 75%, 옥수수는 50%를 차지한다. 콩의 식량자급률이 약 10%, 옥수수는 약 1%이므로 한국인은 상당량의 GMO를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식품에서 GMO의 존재를 감지하기 어렵다. 현행 표시제도의 면제조항 때문이다.

식용 GMO의 대부분은 가공식품 원료로 사용된다. 면제조항이 여기에 적용된다. 콩의 99%는 콩기름 제조에 사용된다. 옥수수 전분과 감미료는 수많은 식품에 포함된다. 그런데 이들 가공식품에서 외래 유전자나 단백질이 남아있지 않으면 표시가 면제된다. 콩기름과 감미료가 그 대상이다. 원료 함량 5순위 내에 GMO가 포함되지 않은 식품 역시 표시가 면제된다. 그래서 빵, 과자, 음료수 등 전분 함유식품, 그리고 두유, 이유식, 소시지 등 콩 단백질 함유식품에 GMO 표시가 없을 수 있다.

현행 표시제도의 확대 시행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바로 이 면제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GMO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면 굳이 이런 요구가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GMO의 안전문제는 여전히 논란 중인 사안이다.

2012년 9월 프랑스 연구팀은 GMO의 일종인 옥수수(NK603)를 쥐에게 일생(2년) 동안 먹였더니 종양과 장기손상이 보통 쥐보다 많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학술지 ‘식품화학독성학’에 발표했다. 통상 GMO의 동물실험은 90일간 진행된다. 해당 옥수수는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에서 이미 섭취되고 있었기에 논문의 사회적 여파가 상당했다.

논문을 둘러싼 서구 과학계의 논쟁은 치열했다. 실험의 오류를 지적한 비판 글과 이에 대한 반박 글이 13편이나 학술지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반인으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학술지 측이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논문의 철회를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연구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과학계에서 전례가 없는 사유를 들어 판정을 내렸다. 당연히 반박이 잇따랐다. 이달 초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가 발행하는 학술지 ‘환경보건전망’은 사설을 통해 논문의 철회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학계에서 안전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GMO가 위험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 한 가지는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완전표시제도이다.

2008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표시제도 확대 시행안을 마련해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지만 결정은 계속 미뤄졌다. 그래서 지난해 국회의원들이 법률개정안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소비자단체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8월 한 달간 완전표시제도를 요구하는 시민 1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현재 식약처는 소비자단체, 산업계, 학계 등이 참여하는 GMO 표시제도 검토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달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 같은 협의체에서 충분히 의견수렴을 거쳐 합의가 이뤄지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찬반입장은 그만 확인하고 합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5년을 넘긴 판단 유보가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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