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사고’의 핵심은 부실시공

2014.10.21 20:49 입력 2014.10.21 20:58 수정
이희봉 | 중앙대 건축학부 명예교수

일순간에 죄 없는 많은 생명들이 스러져갔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사고의 직접 원인은 국과수에서 감정하여 나온다 하니 지켜볼 일이지만 그간 나온 사진을 판독해 보니 부실한 구조물이 결정적 원인으로 보인다. 환풍구 덮개를 받치는, 콘크리트에 부착한 고정용 철물이 흔적만 남기고 뜯겨 나갔다. 부서지지 않은 나머지 한 개와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시론]‘판교 사고’의 핵심은 부실시공

언론에 전문가들이 나와서 갖가지 주장을 쏟아놓는다. 무엇보다, 환풍구는 점검을 위해 사람이 한 두 명 올라가라는 지붕 구조물로 설계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간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환풍구를 어른 키 높이 이상 적어도 땅바닥에서 2m 이상 높이로 만들었다면 그 주장이 맞다. 그런데 사고가 난 판교 환풍구를 보니 어른 배꼽 높이에 불과하여, 누구나 올라갈 수 있고, 더구나 화단 쪽에서는 더 낮아서 얼마든지 힘들이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이다. 시내 대부분의 버스정류장 인근 지하철 환풍구는 여러 사람이 걸어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일단 땅바닥에 환풍구를 만들었으면 사람이 가득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야 맞다. 그게 싫으면 아주 높이 만들어 말 그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지붕처럼 만들던가. 땅에다 만들고서는 지붕이라고 우기면 안 될 일이다. 눈가림 덮개로 말 그대로 사람 잡는 함정을 만든 꼴이다. 이것이 판교 환풍구 사고의 핵심이다.

즉, 아예 못 올라가게 높이 만들거나, 일단 땅에 낮게 만들었으면 튼튼하게 만들거나 양자택일했어야 맞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원가 절감, 결국 돈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았지만 시민을 위협하는 돈 우선 천민자본주의는 이제 그만 막아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안전의식이다. 그런데, 올라간 시민의 안전의식을 탓하는 주장이 난무한다. 세상에, 미리 알았다면 누가 목숨 걸고 위험한 구조물에 올라가려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선량한 시민들은 당연히 전문가들이 튼튼하게 구조물을 만들었을 것이라 믿고 살아간다. 한편 행사 주최자를 때리는 주장이 난무한다. 제대로 구경을 잘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곳에 높이 올라가 발돋움하고서라도 보려는 것은 사람이면 당연하다.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못 올라가게 말렸어야 한다? 위험 표지판을 세웠어야 한다? 제아무리 안전요원 수십명이 있었다 한들 사회통념상 위험시설이 아닌 환풍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릴 것인가? 만약 그게 위험하다면 당장 서울시내 보도 폭 절반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지하철 환풍구 위는 지금이라도 통행을 전면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땅바닥에 만든 환풍구가 위험 구조물로 설계되거나 시공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고층 사무소로 둘러싸인 테크노밸리의 삭막한 단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음악 행사를 마련한 주최자는 아무 죄 없다. 주관자에 시·도의 이름을 허락받고 넣었느니 여부의 면피성 논쟁은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주관한 공무원은 의욕적으로 무얼 좀 잘해보려고 하였는데, 엉뚱하게 책임만 물으니 결국은 좌절해 복지부동, 아무 일 안하는 것이 자리보전에 도움이 된다는 진리를 또다시 이번 사고를 통하여 터득하게 된다. 자살한 공무원은 정말 억울하다. 이번 사고는 주최자가 아무리 귀신같이 대비했더라도 그들의 영역 밖에서 일어난 것이다.

건설업자를 편드는 공무원과 전문가 교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산·학 마피아를 보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서 안전의식을 한 단계 높이자는 주장은 옳다고 보지만, 언론을 뒤덮고 있듯이 막연히 우리 모두의 안전의식을 강조하면 책임을 흐리는 물타기가 될 것이다.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는 건설 전문가들의 안전의식이 문제이지 시민들의 안전의식에는 문제가 없다. 안전 후진국에서 책임 소재를 명백히 가리는 것이 혹 다음에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를 방지하는 길이지, 그저 뭉뚱그리면 아무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