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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호갱님

2014.12.04 20:48 입력 2014.12.04 21:12 수정

한때 한글날만 되면 두들겨 맞던 우리 언어 습관이 있었다. 식당에서 ‘시보리, 오봉’을 쓴다는 지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전설적인 코미디언 서영춘의 만담에서나 여전히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라는 일본식 말이 살아 있을 뿐이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고객님, 호갱님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우리 말과 글을 ‘정화’하려는 움직임이 길었다. 여전히 몇몇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본식 용어가 쓰이고 있지만 우리말이 오랜 관습을 대체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 업종에서 흔하게 쓰는 말인 ‘고객님’이다. ‘호갱님’이라는 풍자적인 용어도 바로 ‘고객님’에서 온 것이다. 일본어 잔재가 기세등등하던 시절에도 고객님이라는 말은 잘 안 썼다.

오랫동안 정겹게 써오던 ‘손님’이 있었다. “손님, 무엇을 찾으십니까”라고 했지, 고객님이라고는 안 했다.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서비스 현장에 들어왔다. 단언하건대, 백화점이 ‘범인’일 것이다. 일본에서 백화점에 가면 너무도 한국과 똑같아 깜짝 놀라게 된다. 층별 구성과 구색이 거의 판박이다.

그것까지는 좋다. 백화점이란 용어와 업태 자체가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니까. 그런데 그 좋은 말 손님까지 밀어낸 건 분하기까지 하다. 손님, 입에서 굴려보면 덥석 손을 붙들어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은 말이다. 고객이란 한자어는 물건을 사주는 건조한 대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손님을 버리고 고객을 쓴다. 갓 스물이 되었을 어린 학생이 커피숍에서 “고객님, 어떤 커피를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고객이라고 쓰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님자를 붙인다. 틀림없이 일본어 ‘오갸쿠사마’에서 온 것이다. 여러 회사의 고객센터(이 말도 고객이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할 때가 있다. 그네들은 하나같이 하이톤으로 ‘고객님’을 외친다. 그 성조조차 일본식이다. 그들은 과장된 높은 톤에 ‘고객님’을 말해야 한다고 배운다. 일본인들이 흔하게 쓰는 그런 말투를 그대로 빼닮았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고객님, 호갱님

또 있다. 툭하면 “가능하십니다”라고 한다. 이것도 일본어 말투일 것이다. 우리 말법에 이런 말투는 없다. 살면서 안 그래도 피곤한데 불가능과 가능을 들어야 한다. 값이라는 좋은 말을 잘 써오던 중에 이제는 언제부터인가 ‘가격’이 값을 밀어내 버렸다.

일본은 분명히 우리보다 근대를 빨리 받아들였으며, 신문물의 전달 통로 노릇을 했다. 그러나 해방되고 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일본식 말투로 대화해야 하는 우리가 한심하지 않은가. 한 가지 덧붙인다면,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직원들이 무릎을 꿇다시피 테이블에 턱을 붙이고 주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건 도대체 어디 관습인가. 그 눈을 마주치기 민망할 지경이다. 누가 그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강요하며 고객님과 가능하십니다와 가격을 외치도록 하는가. 말은 정신을 규정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내용이 만들어진다. 고객님이라고 쓰면 언젠가는 고객사마 아니 오갸쿠사마라고 말할 때가 온다. 그것이 말의 무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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