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견, ‘네 발의 전우’서 ‘네 발의 반려’로

2015.02.27 21:09 입력 2015.02.27 21:22 수정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안락사시켰던 퇴역 군견, 민간에 무상 양도… ‘토사구팽’ 흑역사 ‘이젠 끝’

강원 춘천의 육군 군견교육대에는 최근 이메일이나 전화 등을 통해 은퇴 군견을 분양받고 싶다는 일반인들의 문의가 300여통 쌓여 있다. 지난달 12일 국방부가 군수품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앞으로는 작전수행 능력이 없는 은퇴(퇴역) 군견을 민간에 무상 양도한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부터다.

군견병이 임무를 마친 군견을 칭찬하며 격려하고 있다. | 육군 제공

군견병이 임무를 마친 군견을 칭찬하며 격려하고 있다. | 육군 제공

군에서 ‘제3의 군인’ 또는 ‘네 발의 전우’로 불리는 군견은 군수품 중 장비류로 분류된다. 당연히 계급은 없다. 군에서 ‘복무’ 중인 군견은 1300여마리 정도다. 육군·해군·해병대 소속 군견들은 육군 군견교육대에서, 공군 소속 군견은 경남 진주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 내 군견훈육중대에서 길러진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중요한 군사작전에는 군견이 등장하는 것이 다반사다. 잘 훈련된 군견은 사람에 비해 후각은 1만배, 청각과 야간 시각은 각각 40배와 1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1개 대대가 6시간 걸릴 수색작전을 군견은 2시간에 끝낼 정도다. 미군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투입된 군견 ‘카이로’의 경우 그 가치가 4만~5만달러에 달했다.

사람들은 군견 하면 대부분 셰퍼드종을 떠올리지만 군견 종류는 여러가지다. 군에는 셰퍼드(80%), 마리노이즈(18%), 레트리버(2%) 세 가지 종이 주로 보급돼 있다.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파병만 5차례 넘게 했던 폭발물 탐지견 ‘대덕산’은 마리노이즈종 수컷이었다. 마리노이즈종은 매우 빠르고 주인 명령에 잘 따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벨기에에서는 양치기 견종으로 유명하다.

‘대덕산’처럼 폭발물 탐지에 능했던 군견 ‘베이지’는 레트리버종 암컷이었다. 베이지 역시 해외 파병 단골손님이었다. 레트리버종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군견병이 전역하면 통제가 쉽지 않아 군견 후보견으로 선발하지 않는다. 게다가 진돗개는 사람보다 짐승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수색,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군견교육대 관계자 설명이다.

군견학교에는 ‘번식 소대’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군견 번식을 전담하는 소대급 부대다. ‘번식 소대’의 주요 업무는 ‘종견’과 ‘모견’을 관리해 군견 자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군견 훈련은 ‘작전 소대’가 담당한다.

군견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게 일상적인 일이라 일반 개보다 빨리 체력이 고갈된다. 그래서 8살 정도 되면 은퇴 대상이 된다. 대부분 오랜 훈련과 군 작전 스트레스로 후각이 둔해지거나 체력이 약해져 더 이상 임무 수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이 돈 주고 군견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군견 ‘베이지’

한국의 군견 ‘베이지’

2013년 1월 동물보호법 개정 이전에는 은퇴 군견을 의학 실습용으로 기증하거나 안락사시켰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이었다.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 군은 2013년 4월15일 육군 규정 325 ‘군견업무규정’을 부분 개정해 은퇴 군견을 유상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민간인 신청자가 전혀 없어 퇴역 군견 관리가 부담이었다. 적부 심의를 거쳐 현역에서 물러난 군견은 2013년 116마리, 2014년 214마리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비작전견으로 분류돼 은퇴한 군견들의 관리에 들어간 비용은 1억6500여만원. 1마리당 77만원꼴이었다. 감사원은 이 비용이 아깝다며 국방부에 은퇴견을 빨리 처리할 것을 지시했고, 군 당국은 은퇴 군견의 유상 양도 방침을 바꿔 무상 양도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다음달까지 무상 양도 신청 및 심의 절차를 세부적으로 마련해 은퇴 군견을 분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양도 심의절차를 세세하게 만드는 이유는 은퇴 군견을 번식이나 식용 거래 등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신청자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군은 번식용으로 이용되는 걸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양도되는 군견에 대해 아예 중성화 수술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군견교육대에는 27일 현재 30마리의 은퇴견이 8년 안팎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진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분양 문의가 300여건에 달해 분양경쟁률은 어림잡아 10 대 1은 될 것으로 보인다.

■ 군견 ‘카파’의 일생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파병만 5차례 넘게 했던 폭발물 탐지견 ‘대덕산’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파병만 5차례 넘게 했던 폭발물 탐지견 ‘대덕산’

셰퍼드종 ‘카파’는 지난 연말부터 강원 춘천군견교육대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카파는 지난해 11월 군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군의 각종 작전에 나서 맹활약한 군견이었다.

카파는 2006년 12월5일 태어났다. 카파는 생후 9개월이 되면서 지구력·근력 테스트 등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군견 후보견이 됐다. 이후 6개월간 강도 높은 기본교육도 받았다. 사회성과 운동성 테스트를 통과한 후 카파는 적성 테스트에서 추적견으로 분류됐다. 군견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수색·추적·경계·탐지 등 4가지 주특기 가운데 하나를 부여받는데 카파는 추적 업무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군견, ‘네 발의 전우’서 ‘네 발의 반려’로


카파는 추적견으로서 다시 7개월 동안 맹훈련을 했다. 훈련소에서 가장 먼저 받은 훈련은 군견병 명령을 즉시 이행하는 복종훈련이었다. 또 매일 오전 8시부터 장애물 통과를 비롯해 폭탄 탐지, 헬기 레펠(헬리콥터에서 줄 타고 내려오기) 등 현역 군인 못지않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처음 헬기 레펠 훈련을 받을 때는 헬기 굉음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정찰 임무를 침착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갔다. 매복 훈련 때는 거동 수상자를 발견하면 군견병 무릎에 발을 얹어 보고하는 요령도 익혔다.

카파는 1년이 넘는 강훈련을 통해 정식 군견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이 군견후보견이 됐던 ‘친구’들 가운데 마지막 적격 테스트까지 통과해 정식 작전견이 된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탈락한 ‘동료견’들 상당수는 육군 군견업무규정이 바뀌기 전이라서 안락사 조치되거나 수의과대학에 임상시험용으로 기증됐다. 그 당시에는 탈락견을 사회로 배출하면 군견으로 둔갑해 ‘견(犬)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사기 등 부작용을 빚을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폐기처분했던 탓이었다. 일부 운 좋은 녀석들은 경비 보조견으로 나갔다.

군견훈련병이 어린 군견 후보견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군견훈련병이 어린 군견 후보견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군견 훈련병이 군견에게 장애물 뛰어넘기 훈련을 시키고 있다.

군견 훈련병이 군견에게 장애물 뛰어넘기 훈련을 시키고 있다.

군견교육대 진료반에서 군견이 진료를 받고 있다.

군견교육대 진료반에서 군견이 진료를 받고 있다.

군견교육대 수색훈련장에서 소대장이 군견과 함께 수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군견교육대 수색훈련장에서 소대장이 군견과 함께 수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카파는 군견으로 있으면서 과자류를 맛본 적이 없다. 군견 관리조항을 보면 과자류와 잔반은 일절 금지되고 전용 사료만 아침과 저녁 하루 2끼를 먹도록 돼 있다. 동료 군견 외에 일반 다른 개들도 만나기 힘들었다. 군견병이 ‘군견 막사 주위에 잡견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에 투입됐다. 북한의 국지도발 때마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군견병과 함께 현장을 누볐다. 대침투작전과 각종 훈련에도 동원됐다. 정찰견이지만 GPS부착 목걸이를 차고 경계·수색·정찰 임무를 복합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탈영병을 추적하는 임무에도 나섰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초부터 오랜 군 작전 스트레스로 후각과 체력이 약해졌다. 사람 나이로는 약 48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젊어서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군견교육대는 지난해 11월 카파를 적부심의위원회에 넘겼다. 여기서 그는 비작전견으로 분류돼 은퇴견이 됐다. 이후 국방부가 작전수행 능력이 없는 은퇴 군견을 민간에 무상 양도하기로 함에 따라 새로운 민간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 육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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